정해진 예산은 늘 부족하지만

by Blair

여행을 다녀왔다. 여행을 떠난 다음날부터 제주에 장마가 시작된다는 얘기를 었다. 비가 새는 집이라 조금 걱정하면서 여행을 떠났다. 구더기 무서워 장을 못 담글 수는 없어서 무슨 수를 써서라도 떠났을 것이다. 다행히도 여행지 또한 장마기간이었는데 용케도 비를 잘 피해서 잘 다녀올 수 있었다.



여행을 다녀와서 집에 들어가 제일 먼저 확인한 것은, 비가 새고 있는 창고에 놓인 대야에 비의 양이었다. 다행히도 받아진 빗물이 거의 없었다. '비가 별로 오지 않았나?' 분명 제주에는 며칠간 계속 비가 왔다던데 대야에 받아진 빗물이 없다니 의아했다. 이유를 짐작해 보건대 아마도 바람이 많이 불어 빗물이 고일 수 없었던 것 같기도 하다.



비가 많이 새지 않아 다행이었지만(?) 집안을 돌아다녀보니 온몸으로 장마철임이 느껴졌다. 특히 집 바닥이 축축했다. 걸을 때마다 마치 발을 금방 물로 씻고 나와 바닥을 내딛는 것처럼 느껴졌고, 마치. 금방 걸레질을 마친 바닥 같았다. 물기를 잔뜩 머금고 있는 바닥... '으... 이게 바로 제주도 장마의 위엄인가?' 작년보다 더한 느낌이 들었다.



며칠 비워둔 집의 창문을 다 열고 환기를 시켰다. 바깥바람이 머금은 습기가 집으로 들어와 더 축축해지는 느낌이었다. 순간 '작년에 그냥 제습기 사둘걸 그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방과 거실 온도계, 장마철 습도는 87까지 치솟았다.








우리가 제주에 살러간다 하니 사람들이 거긴 엄청 습할 거라고 했다. 그래서 습한 것을 기본 조건으로 생각했다. 사방이 바다니까 당연히 습하겠지 각오도 했다. 그래도 그렇지 상상초월로 습하다. 우리 집 평균습도가 70도이다. 이전 아파트의 평균 습도보다 두 배를 훌쩍 넘는 수준이다. 실은 작년 여름이 끝날 무렵에 특히 습해서 제습기를 살까 말까 엄청난 고민을 했었다. 그러나 곧 여름도 다 끝나가는 마당에 조금 더 버텨보자 라는 마음으로 참아냈다. 그런데 올해 장마가 시작인 이 시점에 이렇게 습한 것을 몸소 느끼게 되고 올해 여름에는 비가 더 많이 온다는 소문을 듣다 보니, 결국제습기를 구매해야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게 되었다.



인터넷에 제습기를 검색하니 브랜드도, 종류도, 사이즈가 제각각이라 선택지가 참 많았다. 그 후에도 한참을 보고 또 보다 보니 사야 하는 제습기 사이즈가 감이 잡혔고, 다음은 어떤 브랜드를 살까 고민이 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같은 용량이라도 브랜드가 달라지면 가격차이가 확연히 달라졌기 때문이다.



제습기에 공기청정기 기능까진 필요 없고 그냥 기본에 충실하면 되는데 또 막상 사려고 보니 고민이기도 했다. 물론 가장 큰 고민은 가격차이이다. 브랜드와 넉넉한 사이즈 조금 비싼 가격, 적당한 브랜드와 작은 사이즈 저렴한 가격 둘 중에 고민되는 것이었다.



한참 제습기를 보는데 순간 '아. 맞다 이번달 돈을 이미 너무 많이 썼는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랜만에 여행을 다녀오다 보니 이번달은 평소보다 지출이 훨씬 많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여행을 다녀온 것은 문제 되지 않았다. 3년 반만의 해외여행은 인정되어야만 했다. 그런데 문제는 이번 여행에서 선글라스를 구매한 것이 화근이었다. 그것은 분명 예산 초과였기 때문에 그 이유로 제습기 구매 결정에 영향을 줄 수밖에 없었다.




장마철 제습기 필수템일까?







10년 동안 선글라스를 구매하지 않았다. 그 말인즉슨 10년 동안 한 개의 선글라스를 매우 잘 사용했다는 것이다. 물론 때때로 선글라스를 쓸 때도 있었고 쓰지 않을 때도 있었긴 한데, 선글라스를 구매한 지 10년이나 지났을 줄은 몰랐다. 최근 여름에 접어들며 선글라스를 쓰려고 보니 렌즈의 가장자리 부분이 조금 벗겨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이제 선글라스를 바꿔야 할 때가 온 것 같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왜냐하면 선글라스의 렌즈 부분은 시력을 보호해야 하는 기능이 주요하므로 스크래치가 생길 경우 빛 산란과 자외선 침투 코팅 손상 시 반사, 산란, 자외선 침투등 선글라스의 수명에 영향을 미친다고 하니, 무려 10년 동안 사용했다면 분명 시력을 위해서라도 새것을 구매해야 했기 때문이다. 너무 이유가 거창한가?



견물생심. 여행을 하다가 시간이 남아 잠시 백화점에 들어갔는데 눈앞에 선글라스가 보였다. '한번 써볼까? 오! 마음에 드네, 예쁘다. 마음에 드는데 살까?' 순식간에 구매할뻔했으나 이제 나는 과거의 내가 아니기 때문에 이틀정도를 고민했다(여행 중에 이틀은 마치 스무날과도 같다). 그러나 결국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 새로운 선글라스를 사고야 말았다.



아이코, 또 사고야 말았군!







여행 중에 산 선글라스, 집에 오니 바로 필요하게 된 제습기. 문제는 제습기를 사려고 보니 가격대가 선글라스와 비슷했다는 것이다. 여행을 가지 않을 수는 없지만 선글라스를 구매하지 않았더라면, 제습기 구매를 덜 고민하고, 게다가 더 성능 좋은 것으로 살 수 있었을 텐데 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선글라스와 제습기라니! 이 소비를 과연 고민해도 되는 걸까? 분명 이 둘은 전혀 다른 쓰임새의 물건이다. 여름에 필요한 물건이라는 공통점이 있긴 하지만 그것은 마치 억지로 꿰맞춘 느낌이 들기도 하다. 게다가 둘 다 어떤 면에서는 필요하고 어떤 면에서는 필수품은 아닌 것 같기도 하다. 둘 다 없어도 되긴 하지만 있으면 분명 유용하달까? 살아가는데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있으면 훨씬 유용한 물건들일 것이다.



시력을 보호하기 위한 선글라스, 방의 습도를 낮추기 위한 제습기. 둘 중에 뭐를 사야만 할까? 이런 고민은 나도 처음이다. 둘 중에 꼭 필요한 것이 있다면 차라리 둘 중에 그것을 구매하면 좋겠지만... 이 두 가지 중에 반드시 선택해서 구매해야 하는 물건은 없는 것 같다.



선글라스를 산 것을 후회하지는 않는다. 그런데 제습기까지 사려고 보니 정해진 예산안에 살아가야 하는 것이 현실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므로 둘 중에 하나만 골라 구매해야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이미 선글라스를 구매하고야 말았으니 제습기는 나중에 구매하는 것을 선택해야 할 것이다. 이번에는 고민도 못해보고 결과가 결정되었지만, 앞으로는 더욱 신중한 소비를 통해 예산 내에서 똑똑한 소비를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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