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은 늦게 마신 커피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시간 맞춰 출근해야 하기 때문일까 좀처럼 잠들기가 쉽지 않았다. 블라인드 사이로 해아 뜬걸 보니 분명 아침이 되었는데 설마 알람이 안 울린 걸 수도 있겠다 싶어서 눈을 뜨자마자 시간을 확인했다. 휴, 다행이다 한 시간이 남았다. 보통 때 같으면 한 시간이면 아니 20분만 있어도 다시 잠깐이라도 꿀잠을 자고 일어날 텐데 지각할까 봐 무서워 쉽사리 깊게 잠이 들지 않는다. 자는 둥마는 둥 한 시간을 보내고 첫 번째 알람이 울리자 일어섰다. 오늘도 부지런히 나서보자!
역시나 가벼운 발걸음, 오늘도 기분이 참 좋다. 이렇게나 신나는 것이 출근이라면 왜 진작에 하지 않았을까!
고백하건대 출근이 무서웠다. 스무 살 이후 처음 취직한 이후로 몇 년간 일을 하긴 했지만 그 후로 한참 허송세월로 보낸 기간도 참 길었고, 이제야 다시 일하려고 보니 제대로 된경력이나 실력도 갖춰지지 않은 나를 어떤 누가 써줄까 겁이 났던 것도 사실이다. 과연 내가 다시 사회로 나갈 수 있을까 생각만 해도 겁이 났다. 분명 막상 일을 시작하면 몸이 기억하는 대로, 언제 무서워했냐는 듯이 할 테지만 막상 또 이렇게 뭘 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겁부터 나는 것이 어쩔 수가 없었다.
두 번째 출근날이다.
오늘은 내 책상과 컴퓨터가 생겼다. 거진 10년 만에 제대로 된 내 자리와 컴퓨터가 생긴 것 같다. 내 소유는 아니지만 이 일을 하는 동안은 온전히 내 것인 제공된 컴퓨터를 사용해 보며 일에 대한 열정이 다시 타오를 수 있었다. 물론 금세 사적으로 사용하거나, 마음껏 인터넷 검색을 하지 못하리라는 것을 깨닫고는 아쉬웠지만말이다. 그래도 널찍한 컴퓨터 화면도 마음에 들고 소리도 나지 않는 키보드와 마우스도 딱 좋다.
그리고 컴퓨터가 놓여있는 책상이 정말 내 자리가 맞나 한참을 설레어했다. 컴퓨터를 조금 해보다 탕비실에 가서 텀블러에 커피를 한 잔 타왔다. 커피를 들고 책상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의자에 앉아본다. 그제야 커피를 한 모금을 마셔본다. 분명 같은 커피 맛인데 내 자리가 새로 생겨서 그런지 더 맛있는 기분이 든다.
나의 공간, 나의 것, 나에게 제공된 물품들...
집에서도 식탁에서 글 쓰는 것을 생각하면, 나에게 굉장히 그럴듯한 공간이 새로 생긴 것이다. 사실 우리 집에 글 쓰는 작업실이 먼저 생길 줄 알았는데 되려 밖에 먼저 그런 공간이 생겼다.
뭐가 좋은 걸까. 밖과 안. 아무렴 대수일까... 어디든 그런 공간이 생긴 것만으로도 기쁠 때이다.
참 좋다. 이제야 드디어 스스로를 대우해 주는 그런 날이 온 것만 같아서...
물론 이 정도로 멋진 공간은 아니지만, 충분합니다
월, 화. 수, 목. 이번주 4일을 내내 출근을 했다.
여전히 출근길은 설렌다. 내 자리, 내 공간, 내 컴퓨터, 새로운 내 것이 생겼다는 기쁨이 쉽고 빠르게 두려움을 이겨낼 수 있었다.
아직은 매일이 신나고 즐겁다. 앞으로의 출근길이 절대 무섭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든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예전처럼 책을 읽는 일에, 글을 쓰는 일에 쓰는 시간이 현저히 줄었다는 점이다. 원래 멀티플레이를 못하는 성격이라 더한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결국 2월은 면접과 취직으로 글을 제대로 못 올리는 상황이 되었다.어쩔 수가 없다. 하나를 포기해야 다른 하나를 얻을 수 있는 것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