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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lair Apr 03. 2024

먹고 산다는 것은 대체 뭘까...

아이가 저녁으로 스파게티를 만들어 달라고 했다. 그런데 하필 오늘따라 특별한 재료가 없어서 토마토소스만 넣은 스파게티를 만들어 주기로 했다.



속으로 생각했다. '저녁 만들기 귀찮았는데 심플한 메뉴로 정해져서 다행이다' 암튼 그렇게 저녁 메뉴를 정한 후에 아이와 나는 침대에 누워 각자의 책을 읽었다. 그러다 문득 그날이 생각났다. 아무런 재료 들어가지 않은 소스만 비벼진 토마토 스파게티를 먹었던 날이 말이다.



보통 때의 스파게티엔 베이컨, 해산물 등등 여러 가지의 재료가 골고루 들어가서 파스타의 맛을 살려준다. 그러나 그날은 재료가 없어서가 아니라 다른 이유로 아무것도 들어가지 않은 파스타를 먹었었다.



그 이유인즉슨 그때의 나는 임신초기였다. 그런데 임신을 확인하고 며칠 안 된 사이에 피가 비쳤다. 임신 중에 피가 비치면 좋지 않은 신호라 무서웠다. 바로 병원에 전화하니 해줄 수 있는 것이 없다며 최대한 안정을 취하라고 했다. 그날 이후로 다음 진료를 보기 전까지 침대에 누워만 있었다.



아는 사람도 거의 없는 머나먼 타지에서 우리는 둘 뿐이었다. 그런데 하필 그 시기에 학생이던 남편은 더 먼 곳으로 비행기를 타고 학회를 떠났고, 누워있던 나는 며칠간을 누구의 도움도 받지 못한 채 그냥 방치되어 있어야 했다. 서러웠다.



서러운 것도 잠시 배가 끊임없이 고팠다. 게다가 임산부니 먹고 싶은 것들이 얼마나 많던지! 그날은 하필 스파게티가 먹고 싶었다. 어차피 요알못(요리를 알지 못하는) 남편이라 임신한 아내가 먹고 싶다면 분명 가까운 곳에서 테이크아웃이라고 해다 줬을 텐데 그마저도 멀리 있었다. 



할 수 없이 아주 조심스럽게 몸을 일으켰다 분명 누워만 있어야겠지만, 배가 고픈 것도 태아에게는 좋지 않을 것이 뻔했기 때문이었다.



스파게티 면을 삶고, 익은 면에 파스타소스를 넣고 비볐다. 아무것도 넣지 않은 파스타! 파스타 소스만 넣고 다른 재료는 아무것도 안 넣은 스파게티를 먹어본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어쩔 도리가 없었다. 배는 고프고 스파게티는 먹고 싶었다.



그릇 채 가져와 침대 앉아서 후루룩후루룩 먹었다. 맛이 없었다. 내가 먹고 싶었던 그 맛이 아니었다. 배를 채우자마자 다시 침대에 누웠다.  우리 아기는 괜찮은 건가... 남편은 언제 올까... 서글펐다.









그때 뱃속에서 태아이던 아이는 (고작 6주가 조금 넘었으려나) 벌써 8살이 되었다. 그때의 스파게티는 간단했지만 그날 나에게도, 태아에게도 한 끼의 영양분을 주었을 테다. 아무 재료가 들어가지 않은 파스타를 먹은 아이는 그날을 견디고 무럭무럭 자라주었다.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그리고 오늘 다시 아무것도 넣지 않고 소스만 넣은 스파게티를 먹었다. 그때의 맛은 짜고 시었던 기억뿐인데, 오늘의 파스타 맛은 생각보다 맛있었다. 진한 토마토의 향이 나는 것이 괜찮았다. 다른 재료 들어가지 않아도 괜찮았다.




꽤나 먹음직스럽다!






스파게티 만들 재료의 부족... 매일 요리를 하니 요리 재료를 충분히 사놓는 편인데, 최근에 마트 가는 것이 귀찮아서 온라인 쇼핑으로만 장을 봤더니 냉장고 속 재료가 부족한 느낌이다.



매일 먹어야만 살 수 있는 우리... 사는 것은 정말 먹는 것의 문제인 것일까!!! 



요리를 시작한 지 10년이 넘은 것 같다. 겨우 라면이나 김치볶음밥 그것도 아니면 엄마가 미리 해놓은 음식을 데우거나 계란밥만 해 먹던 내가 10년째 직접 만들어 먹는다. 메뉴 선정은 물론 재료 구매, 손질까지 모두 내 몫이다. 때때로 요알못인 남편이 괜스레 화가 나기도 하지만(?) 그래도 적어도 매끼 군말 없이 먹고 있는 남편이 다행이기도 하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제주의 우리 집은 배달이 쉽사리 되는 곳이 아니라 외식 아니면 집밥이다. 특별히 먹고 싶은 음식은 외식을 하고 거의 집밥을 먹는다.  



매일 최소 두 끼를 집에서 먹는다. 때로는 세끼를 먹을 때도 있다. 아침 점심 메뉴는 간단히 생각하고, 저녁 메뉴에는 조금 신경 쓴다. 지난주 저녁에는 스테이크, 오징어볶음, 하이라이스, 된장국 이런 것들을 해 먹었다. 이번주는 닭갈비, 삼겹살, 생선구이를 해 먹을 예정이다.



다양한 메뉴를 선정해서 열심히 집밥을 해 먹으며 지내고 있다. 코로나 시기에 유명했던 단어인 돌밥... 사실 우리가 힘든 것은 밥을 짓는 행위보다 메뉴 선정이 더 힘들지 않았을까?



차라리 남편이나 아이에게 뭐 먹고 싶냐 물어보고, 무엇을 먹겠냐 물어보고 대답이 나오는 게 속편 하다. "아무거나 좋아요" 그 말이 제일 어렵고, 제일 화가 난다.



'나는 밥 좀 그만 먹고살고 싶다고... '









왠지 집에서 먹는 가정식의 재료는 풍부해야 할 것만 같다. 양식인 파스타를 해 먹어도 최소 새우, 오징어, 베이컨 정도는 들어가야 할 것 같고 그 옆에 샐러드는 필수인 데다가... 게다가 한식을 먹어도 집밥이라는 명목으로 한 상 가득 차려놓고 먹어야 할 것 같은 느낌. 어휴,,, 그래서 그런지 요리 생각만 해도 벅찰 때가 있다.  




맞다! 사실 나는 사실 요리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도 10년 정도 요리를 했더니 어쩔 수 없이 요리 실력이 엄청나게 늘었다. 요리를 하면 할수록 만드는 과정은 매우 쉬워진다. 이제 재료만 봐도 무엇을 만들어야겠다 바로바로 떠오르는 경지이다. 그렇다고 눈감고 요리가 가능할 정도는 아니다




매일 이런 소박한 고민을 하며 살아간다. 매일 무엇을 먹을까 고민하는 일이 누군가에게는 얼마나 중요할 같긴 하지만... 우리에게는 앞으로도 여전히 중요할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삼시세끼 밥을 제공하는 아파트로 이사 가고 싶다는 마음이 점점 커지는 마음은 어쩔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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