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Blair Jan 04. 2022

설렁탕을 사다 놓았는데 왜 먹질 못하니

운수 좋은 날


지금 내 눈앞에는 브로콜리 하나가 놓인 그릇이 치워지지 않은 채 내 앞에 놓여있다. '브로콜리?' 이것은 아이의 저녁식사 메뉴였다. 나는 브로콜리가 그저 그렇고(초장이 있어야 먹을 맛이 난다.) 남편은 싫어하고 아이는 좋아한다. 우리 집엔 겨우 세 명이 함께 사는데, 같이 저녁을 먹는데 3명이 다르게 먹을 때가 많다. 아이를 위한 메뉴, 보통은 나랑 남편을 위한 메인 메뉴, 거기에 나는 김치가 꼭 있어야 하고 남편은 반찬이 여러 종류가 있어야 한다. 맵지 않은 메뉴로 먹을 때에는 셋이 메인 메뉴 정도는 같은 것을 먹는데 어른들이 맵고 짠 것을 먹을 때는 아이의 저녁 메뉴가 달라진다. 그래서 셋의 저녁 메뉴가 완전히 달라지는 것이다.



특히 오늘은 내가 감기에 걸린 환자이므로 저녁 할 기운이 없었다. 집에 있던 밥과 반찬으로 저녁상이 차려졌다. 아이는 소고기 뭇국에 김치 그리고 브로콜리와 콩나물이, 남편은 인스턴트 강된장 밥과 콩나물과 샐러드로 저녁을 먹었다. 나는 저녁 먹기 전에 잠시 자고 일어났을 때 ㅅ라면 볶음면과 아이가 오후에 먹고 남은 숭늉으로 저녁을 대신했다.








일요일 오전에는 전날 귀가 아프다는 아이를 데리고 병원 진료를 보러 갔다. 정말 9시에 딱 맞춰, 아니 5분 미리 오픈런을 했는데 웬걸 갔더니 적어도 30명 정도가 앉아있었다. 대기자 명단에 내 이름을 쓰고 옆에 번호를 보니 무려 55번이다. 내가 알고 있는 일요일에 오픈하는 제주시의 소아과는 두 개, 오픈한 지 1시간이 채 안되어 진료 마감되었다.  아... 55번이라니 "얼마나 기다려야 할까요?" 하고 여쭤보니 "2시간 대기하셔야 해요"라고 말씀하셨다. 할 수 없이 우리는 아침을 먹으러 갔다.



이런 상황이 올 줄은 몰랐다. 나는 소아과에 9시에 도착해서 30분 내로 진료를 보고 약을 받은 후, 집으로 가는 길에 아침밥을 먹는 상상을 했다. 그런데 대기 걸고 밥을 먹으러 가야 할 줄이야. 다행히 전날 밤 아이와 남편 그리고 내가 먹을 수 있는 아침메뉴로 생각해 놓은 것은 설렁탕과 순두부 가게였다. 나는 딱히 둘 다 끌리지는 않지만 설렁탕을 먹으러 갔다. 남편은 설렁탕도 순두부도 좋아하는 메뉴이다. 마침 소아과 가까이에 24시 설렁탕 가게가 있었다.  



그런데 아이는 감기에 걸려있기도 하고, 그동안 방학이라 매일 아침 늦게 일어났다. 오늘 오랜만에 일찍 일어난 것이 너무도 피곤했는지 컨디션이 좋지 않아 보였다. 그래서 그랬는지 설렁탕을 3 숟갈 정도 먹고, 고기를 두 점인가 먹였는데 기침을 하다가 토를 했다. '아... 이거 먹어야 하는데... 먹어야 약도 먹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먹지 못하게 되어 아쉬웠다.  왜냐하면 설렁탕을 먹으러 간 가장 큰 이유는 감기에 걸린 아이에게 따뜻한 국물을 먹이고 싶었기 때문이다.





설렁탕을 사다 놓았는데 왜 먹질 못하니   feat: 운수 좋은 날





알고 보면 우린 일주일에 처음으로 외식을 하는 것인데, 내가 별로 내키지 않는 그 메뉴. 그러나 그냥 우리 모두가 적당히 먹을 수 있을 것 같은 음식, '설렁탕'을 앞에 두고 왜 한 명은 맛있게 먹고(아빠), 한 명은 마지못해 먹고(엄마), 왜 다른 한 명은 토까지 하는 것일까. (또 울고 싶다...)



이미 남편은 설렁탕 한 그릇을 뚝딱 한 후였고, 나는 먹는 중이었던 터라 서둘러 설렁탕을 먹었다. 24시 설렁탕의 맛은 역시 별로 임팩트 없는 맛이었다. 그저 아이가 따뜻한 국물을 좀 먹고 어서 감기가 뚝 떨어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선택한 메뉴였다. 밥을 먹고 병원 진료를 다시 받으러 갔는데 운 좋게도 금방 진료를 볼 수 있었다. 병원을 나와 약국으로 약을 지으러 갔다. 역시나 약사 선생님께서는 밥 먹고 약을 먹으라고 말씀하셨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너는 뭐가 먹고 싶어?" 물어보니 "숭늉이 먹고 싶어요" 대답한다. 나는 집에 돌아가자마자 숭늉을 끓여야 했다.











오늘 저녁도 모두 다른 메뉴로 먹어야 했다. 물론 아이는 소고기 뭇국이 먹고 싶지 않았을 테지만 반찬이라도 아이가 좋아하는 것을 꺼내놔야다. 아이는 브로콜리, 토마토, 고사리를 반찬으로 좋아한다. 요즘 갑자기 안 먹던 '연근'을 너무 좋다고 먹는데 왠지 모르게 속내가 의심스럽다. 그래서 아이의 그릇에 브로콜리와 콩나물 반찬이 놓인 것이다. 그런데 아이는 브로콜리를 한 개만 먹고 1개를 먹지 않았다. 저녁 상을 치운 지 벌써 5시간도 넘게 지났는데 여태 자리에 있다.



겨우 셋이 사는 이 집에 음식의 취향이 다르다. 그래도 남편은 골고루 잘 먹기는 하는데 다양한 음식을 좋아하고, 나는 같은 메뉴를 계속 먹어도 질리지 않고 먹을 정도로 좋아하는 몇 가지가 있고, 맵고 짠 음식을 선호한다. 아이는 아직 어리지만 또 자기만의 취향이 있다. 사실 여전히 음식에 관심이 별로 없다.



우리가 좋아하는 음식은 이렇게 다른데, 매일 어떻게 다른 취향대로 밥상을 차릴 수 있을까? 역시 음식을 매일 준비하는 나의 취향이 가장 중요한 것은 아닐까? 사실 때마다 다른 메뉴로 음식을 차리는 일은 너무 버거운 일이다. 역시 요리를 좋아하지 않는 내게 이번 일주일(방학)은 너무 힘들었다. 글을 쓰다 보니 요리가 싫다 2탄의 느낌이다. 그렇다, 아이가 집에 있던 방학은 나에겐 조금 힘들었다. 그래서 이런 글을 쓰게 되었나 보다. (엉엉...) 오늘부터 아이는 다시 등원을 시작했다. 다시 우리의 밥상은 조금 나아질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오늘은 내 생일입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