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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lair Jan 25. 2022

오늘은 내 생일입니다.



오늘은 내 생일입니다. 제주에서 맞아보는 첫 생일이자 어쩌면 마지막 생일일지도 모르죠. 아침부터 제가 좋아하는 비가 내립니다. 오늘 같은 날은 집에 있어야 하는데 말이죠. 그래도 생일이니 밖을 나가봐야습니다.



오늘 미역국을 먹을 수 있을지 없을지는 모릅니다. 우리 집엔 미역국을 끓일 수 있는 사람이 없기 때문입니다. 남편이 말했습니다. '제주도에 맛있는 미역국 가게가 있나 찾아볼까' 미역국을 못 먹게 되더라도 너무 서운해 말아야겠습니다. 올해만 미역국을 못 먹은 것은 아니니까요. 요즘의 나는 미역국을 너무도 많이 끓여봐서 눈을 감고도 끓일 정도의 달인의 경지에 올랐지만 내 생일에 내 손으로 미역국을 끓이고 싶지 않습니다. 거기에 아이는 어제부터 '삼계탕'타령을 하더니 엄마 생일엔 '삼계탕'을 먹자고 공표했습니다. 생일에 아직 미역국을 먹는 것인지 모르는 나이기도 하고, 아이는 워낙 입이 짧아 새해가 되어 처음으로 '무엇인가 먹고 싶다'라고 이야기한 것이 삼계탕이기 때문에 아마도 오늘 저녁 메뉴는 삼계탕일 것입니다. 제주에서 생일 저녁 집에서 삼계탕을 끓이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저입니다.



그래도 생일 케이크는 아마도 먹을 수 있을 것입니다. 매년 케이크를 보내주는 친구가 있기 때문입니다. ㅋ톡으로 받은 생일 케이크 쿠폰을 시내에 나가 케이크와 바꿔오면 되기 때문이 전혀 어렵지 않습니다. 작년에 받은 케이크 쿠폰으로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티라미수' 케이크가 먹고 싶었는데 하필 티라미수 케이크만 솔드아웃이라 아이가 좋아하는 초콜릿 케이크로 바꾸었습니다. 초콜릿 케이크를 좋아한다고 생각했는데 그날 이후로 초콜릿 케이크가 다시 먹고 싶지 않은 것을 보면 아마도 내 생일마저 아이가 좋아하는 초콜릿 케이크를 먹어야 한다니 기분이 상한 모양이기도 합니다. 아흑.







지난 주말, 가장 친한 친구에게 생일 축하한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아마도 평일에 너무도 바쁜 워킹맘 친구는 조금이라도 여유 있는 주말, 나에게 미리 연락을 한 것입니다. 친구의 선물도 고맙지만 잊지 않고 매년 생일 축하해주는 마음이 더 고맙습니다. 평생 서로의 생일을 챙겨줄 수 있는 가장 가까운 친구로 남고 싶습니다.



오늘 12시가 되자마자 카톡이 울렸습니다. 매년 남편보다도 먼저 생일 축하해주는 내 친척동생은 나와 정말 각별합니다. 유일하게 시시 껄껄한 톡을 거의 매일 같이 주고받는 사이입니다. 매년 12시가 지나자마자 가장 먼저 생일을 챙겨주는 동생 덕분에 매년 생일을 웃으며 맞이할 수 있습니다. 동생은 제주도에서 택배로 생일 선물을 받으려면 시간이 오래 걸릴 수도 있다고(택배가 이틀이면 오는데?) 2주 전에 미리 생일 선물을 보내주었습니다. 어느 날 집 앞에 놓인 동생 이름이 적힌 택배를 받아 열어보니 잠옷이 들어있었습니다. 오래전부터 꼭 한번 입어보고 싶었으나 끝내 사게 되지 않아 여태 입어보지 못했던 잠옷. 넉넉한 사이즈와 부드러운 옷감이 너무도 내 마음에 쏙 들었습니다. 매일 잠옷을 입고 자는 나에게 가장 필요한 선물이었습니다.






올해도 ㅋㅋㅇ 에서 생일 축하 알람이 왔습니다. 아마도 이것 덕분에 곧 친구들이 하나둘씩 연락을 해올 것입니다. 다들 바쁘게 사는 일상, 이 생일 알람이 없더라면 아마 친구들의 생일조차 챙기는 것은 어려울지도 모릅니다. 올해도 내가 친구들의 생일을 잊지 않고, 친구들도 나의 생일을 잊지 않고 지낼 수 있게 알려줘서 고마웠습니다.










오늘 아침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서 감사하다고 말했습니다. 내가 아빠 엄마에게서 태어난 것이 내가 받은 가장 큰 복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지금껏 내가 잘 지내게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신 부모님께, 어버이날 외에 감사의 마음을 표현하는 하루입니다. 나는 올해는 선물을 받는 대신 엄마에게 선물을 해드리기로 했습니다. 아무래도 엄마가 가장 아프고 고되었을 그러나 가슴 벅찬 하루였을 테니까요.




작년의 생일은 너무도 슬픈 상황 중에 있었던 터라, 울면서 맞이하고 울면서 끝이 났습니다. 2021년 1월 나는 평생 쏟을 눈물을 거의 다 쏟았던 것 같습니다. 평생의 생일 중에 최악의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던 중이라 이깟 생일 따위 뭐가 중요하냐고 생각이 하기도 했습니다. 그 가장 힘들었던 순간, 남편의 생일 카드는 정말 큰 힘이 되었습니다. 값비싼 선물보다 나에겐 그 한마디가 가장 필요했으니까요.




2021, 남편의 생일카드


2022, 남편의 생일카드






다행히도 시간은 흘러 올해 생일은 평범하게 맞이했습니다. 이제 더 이상 그렇게 많이 울 필요도 없고 나는 제주에서 평화롭게 지냅니다. 고요 속에 생일을 보내고 있습니다. 오늘은 제주에서 가장 행복한 하루를 보내고 오겠습니다.  Happy Birth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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