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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lair Jan 02. 2022

새해는 다를 줄 알았지


저녁을 먹은 후 양치를 하는 중이었다. 아이가 자꾸만 귀를 만진다. 아이에게 왜 그러냐고 물어보니 "엄마 귀가 아파요" "언제부터 아픈데...?" "조금 전부터 아팠어요"  망했다. 아이의 중이염이 도졌다.



아이는 지난주 눈이 펑펑 온 날 강아지처럼 뛰어놀았다. 눈싸움, 썰매 타기, 눈사람 만들기. 오랜만에 만난 눈에 어른도, 아이도 신이 났었다. 한참을 놀고 난 후 집에 들어왔는데 아이가 기침을 한다. 기침을 몇 번 하더니 목이 아프다고 했다. 저녁이 되자 아이는 맑은 콧물을 흘렸다. 그다음 날... 아이는 또 눈을 가지고 놀았다. 어제 이미 기침, 콧물을 봤던 후라 '어차피 감기에 걸렸으니까' 놀아도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야속하게도 하늘에선 눈비가 내렸다. 이건 눈이야 비야... 그 속에서 아이는 눈사람을 만들고 썰매도 탔다. 그 후 집에 들어온 아이의 상태가 엄청나게 나빠졌다. 너무도 당연한 결과였다. 그날 밤 콧물이 심해져서 잠도 제대로 잘 수 없었다. 가지고 있던 비상약을 먹기는 했는데 전혀 차도가 없었다.





아빠가 끌어주는 눈썰매




우리는 다음 날 눈이 녹은 것을 확인하자마자 병원으로 갔다. 원래 같았으면 기침을 하던 첫날 병원을 갔어야 하나 우린 눈에 갇혀 밖에 나갈 수가 없었다. (정말이다) 원래 제주에 오자마자 다녔던 소아과가 있었는데... 약을 너무 세게 처방해 주셔서 이번에는 다른 소아과로 가보기로 했다. 평일 오전이었는데 손님들이 정말 많았다. 하지만 사흘 후 다시 갔을 땐 그것은 많은 것도 아니었다. 이날 나는 소아과를 한 시간 반을 기다려서 진료를 봤다.



아무튼 새로운 소아과에 갔던 첫날. 아이는 약을 처방받아왔고 콧물이 약간 멈춘 듯한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기침은 여전했고 그다음 날은 콧물은 보이지 않고 가래가 무시무시하게 나오기 시작했다. 감기는 역시 일주일은 가겠지 하고 생각했다. 그리고 사흘 후에 우린 다시 진료를 보러 갔다. 딱히 나아진 것도 아니지만 낫지 않은 것도 아닌 그런 애매한 상태로 진료를 보고 약을 바꿔 처방받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나는 두 번째로 소아과를 가던 날 아이에게 '중이염'이 올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5살까지도 중이염이 없던 아이인데 딱 한번 중이염을 앓고 난 후.. 그때부터는 그냥 콧물만 흘렸다 하면 중이염이 온다. 이 글을 읽는 엄마들은 내가 무슨 소리인지 알 것이다. 지긋지긋한 중이염. 그래서 난 그날 선생님께 한번 더 귀를 확인해 달라고 말씀드렸다. 분명 아이의 귀가 깨끗하다 하셨는데... 다음 날인 오늘 저녁부터 아이는 귀가 아프다고 말한다. 휴... 이미 예상했던 결과였다. 그러나 처방받은 중이염 약이 없는 것이 문제였다.



오늘은 1월 1일. 오늘로 감기가 걸린 지 딱 일주일이다. 그런데 어제 병원에 다녀오면서부터 되려 콧물은 더 심해졌고 오늘은 종일 코가 아닌 입으로만 숨을 쉬는 것을 보았다. 아.. 감기면 이제 조금 괜찮아져야 하는데 왜 점점 심해지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그나마 가장 다행인 것은 열이 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늘 밤 아이는 코가 꽉 막힌 채로 잠들었다. 마치 오늘 밤이 고비인 느낌이다. 하는 수 없이 아이의 머리맡에 양파를 잘라 놓아 두었다. 일주일 동안 병원 외에는 외출하지 않은 결과가 이것이라니 조금 허무하긴 했다.



지난번 감기가 걸렸을 때에는 일주일 내내, 하루 세 번 항생제를 먹고 난 후에도 중이염이 잠시 사라졌다가 다시 왔었다. 이번에도 비슷한 상황이다. 꼬박 일주일을 감기에 당하고 곧 나을 것만 같았는데 중이염이 왔다. 당장 내일이 일요일인데 문을 여는 소아과를 찾아 병원에 가야 한다. 제주도에 소아과가 몇 개나 된다고... 그래도 다행히도 제주시에 일요일에 문을 여는 소아가 두 군데나 있다. 정말 다행이다.





내일은 소아과 오픈런이다



 








사실 더 큰 문제는 이것이다. 아이만 감기에 걸렸으면 되었으련만... 아이는 자꾸만 내 얼굴에 대고 기침을 했다. 내가 이 이야기를 친구에게 말했더니 '아이가 감기에 걸리면 당연히 엄마도 걸리더라고' 이렇게 대답했다.  아! 그 얘길 들을 때만 해도 나는 설마... 설마... 했었다. 정확히 이틀 후, 잠을 자는데 목이 조금 아파왔다. 그리고 아침에 일어났는데 침을 삼킬 때마다 목이 아팠다. 어째 슬픈 예감은 틀리지 않는 걸까. 일단 가지고 있던 비상약을 입에 털어 넣었다. 물을 따뜻하게 데워서 계속 마시니 조금 나아진 것 같았다. 그러나 여전히 목이 아프다. 비상약이 거의 떨어졌다. 할 수 없이 이제는 내가 병원에 야할 때인가 보다.



병원을 가면서 가지고 있던 카페 음료 쿠폰의 기한이 마지막이라, 커피를 테이크 아웃해서 마셨다. 따뜻한 커피를 마시니 목이 아픈 것이 가라앉는 것 같고, 달달하니 너무 좋았다. 역시 카페인 충전이 최고라고 생각하며 기분이 잠시 좋았다. (감기에 카페인은 최악이다)



먼저 5층의 소아과에 가서 진료대기를 걸어놓고 같은 건물 2층에 있는 이비인후과에 진료대기를 걸었다. 소아과의 대기는 16번째였고, 이비인후과는 10번째였다. 내가 진료를 보다가 아이의 진료를 놓칠까 걱정이 앞섰다. 이비인후과는 진료보다 코로나 백신 맞는 사람들로 문정성시였다. 코로나 백신보다 내 감기가 먼저라고... 외치고 싶었다. 요즘은 병원들이 거의 코로나 백신을 맞는 곳이 많아서 이곳이 진료를 보는 병원인지, 예방접종을 위한 병원인지 모르겠다. 아무튼 아주 친절한 의사 선생님을 만나 진료를 보았다. 밀려드는 손님들 때문에 바쁘실 텐데 친절하셨다.  역시나 나의 병명은 목감기이었다. 편도가 부어있었다. 그리고 목 깊숙이 성대까지 봐주셨는데 성대 부분에도 염증이 있어서 더 쓰다가는 성대 결절이 있을 수도 있다고 하셨다. "네? 성대 결절이요?" 나는 종일 거의 말을 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어제 잠깐 친구랑 전화한다는 게 한 시간을 훌쩍 넘었고, 요즘 방학이라 집에 있던 아이의 질문에 쉬지 않고 대답해주고 있으니 생각보다 말하는 시간이 길어졌었나 보다. 생각해보니 초보 교사 시절, 3월이 되면 목이 쉬어서, 혹은 목감기가 걸려서 목소리가 나오지 않던 때가 떠올랐다. 이제는 겨우 아이 한 명을 돌보는데 이것이 나의 목 상태를 좌지우지하다니 그것 참 당황스럽다.



"의사 선생님! 커피를 마셔도 될까요?" 사실 감기에 걸린 것도, 항생제가 들어간 약이 먹는 것도 괜찮다. 그런데 걱정되는 것은 감기에 걸려 약을 먹을 때는 커피도 술도 못 먹는다는 사실이다. 내가 가장 행복한 순간은 커피를 마실 때인데, 그리고 종종 마시는 맥주 한잔은 인생의 시름도 잃게 하는데 그것을 못 마시는 것이 너무도 서럽다.  그게 감기가 진짜 싫은 이유다. 그래서 나는 감기가 하루빨리 나았으면 좋겠다.





우리에게 남은 것은 약뿐이다.



아이도 나도 감기를 앓으며 호되게 새해를 맞이했다. 다행히도 비상약으로 낫지 않던 나의 목감기는 병원 방문 한 번에, 그리고 제조약 한 봉지에 급속도로 호전되고 있다. 이렇게 아프고 나면 우린 더 건강해질 테지. 아이는 크려고 아프다고 했다. 대체 새해에는 얼마나 크려고 그러는지 기대가 되기도 하다.



 어쨌든 새해에도 안녕이다! 언제나 건강이 가장 중요한 것을 잊지 말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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