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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을연필 Oct 27. 2023

해피 투게더



  통신사를 바꿨다. 집에 인터넷이 끊기면서 무제한 요금제로 바꿔야 했고 그중 가장 저렴한 통신사를 선택했다. 넷플릭스를 무료로 볼 수 있는 건 덤이다. 오랜만에 넷플릭스를 뒤져보니 보고 싶은 영화도 보고 싶은 다큐도 많다. 하지만 선뜻 손이 가는 작품이 없다. 유튜브에 익숙한 나는 한 시간 이상 같은 영상에 집중할 자신이 없었다. 먼저 찜 한 목록 중 버닝을 클릭. 두 시간 반을 버틸 자신이 없어서 8분 후 포기. 화양연화를 클릭. 방금 스쳤던 해피투게더가 생각나서 5분 후 포기. ‘해피 투게더’ 클릭. 이미 수십 년 전에 보다 포기한 작품이다. 남자 둘이 엉켜있는 게 거북해서 보다 포기했었다.


 ​영화는 요휘(양조위)와 보영(장국영)의 여권에 이미그레이션 도장이 찍히면서 시작한다. 그들의 나이가 궁금해 생년월일을 보고 싶었지만 숫자와 알파벳이 뒤엉켜 한눈에 들어오지 않았고 British라는 글자만 보였다. 그랬지 그때 홍콩은 영국령이었지. ”여요휘, 우리 다시 시작하자 “라고 보영이 말한다. 그리고 그들은 새로운 시작을 위해 아르헨티나까지 왔다. 이과수로 가던 중 그들은 길을 잃고 다시 보영은 이별을 고한다. 요휘와 보영은 오랜 연인이다. 이미 몇 번의 이별과 만남을 반복해 왔다.


 ​이 영화는 장국영 사망 20주년에 맞춰 리마스터링 되어 올해 재개봉되었다. 당시 그의 미스터리한 죽음이 뉴스에서 종일 보도됐고 내 뇌도 종일 먹먹했다. 아니다. 사실 내 기억이 흐릿하다. 그다음 해엔가 홍콩 여행을 갔고 그가 투신한 만다린 오리엔탈 호텔에도 갔다.


​ 이별 후 탱고바에서 안내를 하던 요휘는 연인과 함께 놀러 온 보영을 보고 괴로워한다. 둘의 감정은 다시 얽히기 시작하고 어느 날 보영이 연인에게 맞아 만신창이가 돼서 요휘를 찾아온다. 그렇게 그 둘은 또 새로운 시작을 했다. 영화 내내 요휘는 헌신적이고 장국영은 이기적으로 보인다. 탱고바에서 일하던 어느 날 보영의 옛 연인을 본 요휘는 술병으로 그의 뒤통수를 내려친다. 새로 취직한 중국 식당에는 ‘잘 듣는’ 장완(장첸)이 있다. 그는 사람들은 거짓으로 행복해 보일 수는 있지만 목소리를 감출 수는 없다고 한다. 요휘의 통화 소리만 듣고도 그가 행복한지 불행한지 알아본다. 식당 사람들과 축구를 할 때는 햇살이 다른 세상의 빛 같다. 요휘가 사는 세상에는 없는 빛이다.


 그 빛이 장완과 함께 있을 때 비친다. 영화 속 장완은 희망(새로운 시작)을 상징하는 듯하다. 장완이 가고자 하는 곳이 ‘세상의 끝’, 아르헨티나 최 남단인 것은 우연이 아니다. 끝은 새로운 시작으로 이어진다. 영화를 보며 조금 어색해 보이던 그의 등장이 ‘새로운 시작’으로 해석하니 어느 정도 납득이 간다. 새로운 것은 원래 어색하고 잘 섞이지 않는다. (나중에 찾아보니 장국영이 촬영 일정에 맞지 않아 장완의 비중이 커진 것이라고 한다. ) 요휘와 보영의 관계는 서서히 좋아지는가 싶더니 보영의 손이 회복되고 나서부터 다시 망가진다. 외로운 요휘는 집착한다. 보영이 담배를 사러 나가는 것조차 불안한 요휘는 담배를 왕창 사두지만 보영을 붙잡아 둘 수는 없다. 요휘는 오히려 보영의 손이 낳지 않길 바랐다. 보영은 사랑이 불같고 요휘는 사랑이 차갑다. 서로 사랑하지만 서로가 달라서 끝을 내고 새로 시작하기를 반복한다. ‘해피 투게더’라는 영화 제목과 다르게 둘은 함께 있으면 더 외롭다. 우리 모두 그렇다. 서로의 방식으로 살아가고 사랑한다. 그 삶과 사랑이 상대를 힘들게 하기도, 외롭게 하기도 한다. 보영이 떠난 후 요휘는 연애(섹스)를 하기 위해 화장실을 찾고 극장을 찾는다. 고독해 보니 자신도 보영과 다르지 않음을 안다. 불같은 사랑을 한 보영이 조금 더 고독했을 뿐인지 모르겠다. 요휘는 아르헨티나를 떠나기 전 이과수에 들른다. 그곳엔 보영이 없다. 혼자 온 이과수는 꿈꾸던 장소가 아니었다. 모든 것을 씻어낼 장소였다.


 ​나도 연인과 이과수를 갔다. 비가 억수같이 퍼부은 다음날이었고 아름답지 않았다. 빗물에 크고 작은 나무들이 떠 내려왔다. 홍수로 늘어난 물로 폭포는 더욱 웅장하다 못해 무서웠다. 모든 게 씻겨나갈 듯한 폭포가 쏟아졌다. 그리고 그녀는 떠나갔고 나는 남겨졌다. 요휘는 떠나왔고 남겨진 보영은 울었다.


 ​요휘는 아르헨티나를 떠나 홍콩에 가기 전 대만에 들른다. 장완의 부모님이 하는 가게에서 완탕을 먹고 새로운 시작으로 걸어간다. 마지막 엔딩곡 ‘해피 투게더’가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듯하다.


 ​동성애자 둘이 새로운 시작을 위해 반대편으로 온 설정. 중국 반환을 앞두고 당시 홍콩 사람들이 ‘해피 투게더’할 수 있을지 불안해하던 사회적 상황 등 해석의 여지가 너무 많은 영화이다. 흑백과 컬러는 과거와 현재를 보여주고, 흔들리는 앵글은 불안을 느끼게도 한다.


 ​지금은 나도 한국에 돌아와서 새로운 시작을 했다. 그리고 또 다른 시작을 앞두고 있다. 일하다 만나는 홍콩 사람들은 여전히 친절하다. 한국에 체류하는 홍콩 사람들은 홍콩의 집값이 너무 비싸 돌아가기 싫어한다. 한국이 너무 좋다고 한다. 원래도 비싸던 홍콩의 집값은 대륙 사람들의 투자로 더욱 비싸졌고 홍콩 사람들을 밀리고 밀려서 변두리 지역으로 밀려났다. 일부는 홍콩 밖의 심천지역까지 밀렸고 일부는 한국이 살기 좋다 한다. 홍콩은 그 시절처럼 부유하지 않다. GDP 이만 불을 바라보던 한국은 삼만 불을 훌쩍 넘는 세계 10대 경제 강국이 되었다. 다 변한다. 다 끝이 있다. 그리고 우리는 항상 새로운 시작을 한다. (누구와 함께할지 선택을 하기도 하고 선택을 강요받기도 선택당하기도 한다.) 사람도 국가도 마친가 지다. 그 끝은 아무도 모른다. 내가 선택한 통신사를 통해 넷플릭스와의 새로운 시작이 열렸고 이 끝이 어떨지는 나도 모르겠다. 해피 투게더. 같이 있어 행복한? 같이 있으면 행복하기도 하고 외로워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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