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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을연필 May 09. 2023

좋은 어른


1시 차가 없어져서 오후 세시 반 차를 예약했다. 코로나 이후 배차간격이 멀어져서다. 다행이다. 집에 오면 빈둥거리다 밥만 먹고 간다. 그래도 떠나올 땐 먹먹하다. 가족의 생계는 어머님 몫이셨다. 아버지는 젊어서부터 노동을 멀리하셨다. 그래도 집에 오면 아침마다 아버지의 신음 소리를 듣는다. 물이 찬 튜브 하나를 끼워놓은 듯한 배의 무게를 이쑤시개 같은 다리가 견뎌내기 쉽지 않으실 테다. 말도 잘 섞지 않은 아들이 아버지의 다리에 손을 얹었다. 몇 분 되지 않아 그만두라며 몸을 뒤척이신다. 항상 그러셨다. 새끼들 고생하는 걸 못 보셨다. 엄마의 설움이 커서 아빠의 사랑을 외면했다. 내 눈이 희미해지는 만큼 경계도 희미해진다. 나에게 아버지는 좋은 어른이시다. 괜찮은 남편은 아니었을지 모르겠다. 대단한 가르침을 주신 적도 없다. 그저 그분의 고요한 사랑을 느끼며 자랐다. 두시 반. 미리 얼려두신 떡과 생선을 가방에 담아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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