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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을연필 May 15. 2023

같은 꿈


 그녀는 부엌에서 밥을 푸고 있었다. 스테인리스 그릇 8개가 다 담기자 다시 옆에 있는 솥뚜껑을 여니 멀건 국에서 김이 모락모락 난다. 다시 그릇에 국을 담는다. 아이는 어색한 듯 가만히 보고 있다가 천천히 옆에 서본다. 돌아보지 않는다. 벌써 몇 년째다. 아이는 잊을 만하면 한 번씩 같은 꿈을 꾼다. 너무 생생해서 꿈인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 그날도 울면서 꿈을 깼다. 꿈은 깼지만 계속 눈을 감고 울었다. 울고 싶었다. 사랑해서 잊히지 않았고. 그리워서 꿈에 나오고. 미안해서 눈물이 나왔다. 꿈에서 가끔 그녀는 아이를 덤덤하게 쳐다보았고 아이는 아직 그녀가 떠나지 않음에 감사해하며 손을 잡았다. 아이는 어릴 적에도 자주 같은 꿈을 꾸었다. 지금과 다르게 그때는 그녀가 사라지는 꿈을 꾸었다. 그때마다 꿈이 현실이 될까 봐 무서워서 울며 깨었다. 그리고 일어나서 또 같은 일상을 살았다. 자주 그녀를 무시하고 가끔은 투정을 부리고 때로는 다투었다. 사랑에 서툰 아이는 꿈을 꾸며 운다. 곁에 있을 땐 사라지는 꿈에 두려워 울었고, 떠난 후에는 곁에 있는 꿈에 그리워서 운다.​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에 나갈 용기기 없었다. 여행을 핑계 삼아 밖으로 나가고 싶었고 우연히 첫 직장이 해외취업이었다. 낯선 타국 생활은 자극적이었고 정신이 없었다. 생각지 않게 돈이 벌렸고 의도치 않게 망해갔다. 정신을 차리지 못하다 보니 감당하지 못하는 일들이 생겼다. 눈을 떠보니 한국이었다. 몇 해 전에 돌아온 고향이 낯설다. 십수 년을 떠돌다 왔으니 당연하다. 추억을 찾는 듯 동네 한 바퀴를 돌아본다. 아는 사람보다 모르는 사람이 더 많고 그나마 아는 얼굴은 나를 몰라본다. 고향이 변한 만큼 나도 많이 변했나 보다. 목욕을 하고 옷을 차려입고 절을 올린다. 밥상엔 8개의 스테인리스 그릇이 놓여있다. 서울로 올라오는 버스 안에서 오랜만에 꿈을 꾼다. 그녀는 또 무표정한 얼굴로 서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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