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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리아 Nov 10. 2024

세상의 마지막 첫사랑 4

첫눈에 반하다

 평일이어도 저녁 시간 때의 신촌 오거리는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젊음의 거리 신촌, 그 명성답게 주로 대학생들로 보이는 20대와 퇴근길에 오른 직장인들이 다수였다. 쉴 새 없이 도로를 지나다니는 차들과 빵빵 거리는 경적소리, 10분 간격으로 지하철역에서 쏟아져 나오는 인파들로 길거리는 매우 혼잡스러웠다.

 '차라리 어디 식당이나 백화점에서 바로 만나자고 할 걸 그랬나?'



 10분 일찍 약속 장소인 신촌역 2,3번 출구 사잇길에 도착한 나는 살짝 후회하였다. 소개팅 장소를 나의 구역에서 보자고 했으니 책임감을 가지고 먼저 나오긴 했지만 너무 붐비는 주변 상황이 매우 번잡스러워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게다가 아무리 남녀평등 시대라지만 그래도 여자 자존심이 있는데.. 내가 먼저 이렇게 얼굴도 본 적 없는 남자를 길거리에 서서 기다리고 있다니.. 체면이 말이 아니었다. 게다가 손목시계를 보는데 약속 시간이 이미 몇 분 지나가고 있는데 상대방에게는 연락도 없었다.



 "띠링!"

 '아니, 자기가 잘 생기면 다야! 막 이렇게 첫 만남에 늦어도 되는 거냐고!'

 짜증은 이미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했는데 마침 그때 문자가 왔다.

 '다음 역에서 내리는데 5분 정도 늦겠습니다. 미안해요.'



 사실은 나도 약속 시간을 정확히 지키지 못하는 편에 속한다. 그러나 내로남불, 내가 5분-10분 늦을 땐 코리 타임을 외치면서 상대방(특히 소개팅 남)이 5분 늦는 건 인색하게 굴게 된다. 동율 선배가 그 사람이 인물이 좋다고 해서 웬만하면 잘해보려고 했는데 처음부터 지각이라니.. 아무래도 세 번째 소개팅 남, 너도 안 되겠다! 대체 나의 연애 사업은 언제쯤 볕이 들 예정인 거냐고!!



 혼자 별별 생각을 다 해본다. 서서 기다리니 15분이 1시간 같이 길게 느껴진다. 아직 3월 중순이라 꽃샘추위까지 더해져 몸도 마음도 싸늘하게 식어져만 간다.

 '밥만 먹고 헤어져야겠다..'

 아직 만나지도 못한 사람과 나는 그렇게 이미 이별을 결심하고 있었다.



 

 그런데 바로 그때, 지하철역 2번과 3번 출구에서 퇴근하는 사람들이 한참 쏟아져 나왔다. 막 열차가 도착했나 보다. 이번엔 내렸겠지 싶어 눈을 크게 뜨고 양쪽 출구를 번갈아 쳐다보는데 2번 출구에서 어떤 남자가 내가 서 있는 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와아!!!'


 그러니까 그 남자가 내게 걸어오던 그 순간은... 눈이 부시다는 표현으로는 부족하다. 후광이 비쳤다는 표현으로도 완벽하지 못하다. 키는 178센티 정도-내가 큰 편이라 키 너무 큰 남자는 이상형이 아니었다-에 머리는 포마드 왁스로 올백으로 넘겼고 피부는 하얗지도 누렇지도 않은 적당한 중간색, 눈은 무쌍-내가 쌍꺼풀이 있으니 평소에 무쌍 눈이 그렇게 매력적으로 느껴졌음-에 어깨가 어쩜 저리 넓을까.. 태평양 같은 어깨를 가진 그런 남자였다.



 본능적으로 이 사람이 바로 내가 만날 소개팅 남이란 걸 알았다.

 "쿵쿵 쿵쿵"

 이것은 내 심장이 뛰는 소리였다. 빠르게 뛰다 못해 몸 밖으로 심장이 튀어나올 지경이었다. 세상에.. 이렇게 완벽하게 생긴 사람도 있구나. 물론, 남의 눈에는 그 사람이 완벽하지 않을 수도 있겠지. 그러나 나는 그 사람을 보자마자 그만 넋이 나가버렸다. 너무나 매력적인 천상계의 남자였다.



 '하늘에서 내려온 사람도 핸드폰이 있구나...' 

 그 남자가 핸드폰을 들더니 전화를 한다. 너무나 당연하게도 내 전화벨이 울린다.

 "여보세요." 하며 응답을 하는데 나도 모르게 목소리도 떨리고 휴대폰을 쥔 손도 떨고 있었다.



 "이은수 씨? 민지훈입니다. 어디 계세...? 아, 지금 봤어요. 맞네요. "

 그 사람이 전화기를 들고 있는 나를 확인하더니 나를 향해 막 뛰어온다. 1초, 2초, 3초.. 정확히 3초 만에 나는 사랑에 빠져버리고 말았다. 불과 몇 분 전까지 생각했던 수많은 상상과 가정과 예상들은 순식간에 무의미해져 버렸다.

 


 첫눈에 반한다는 건 그런 거였다. 그 순간 숨조차 쉴 수 없고 머리는 하얗게 백지상태가 되어버리는... 그 사람 이외의 주변 모든 배경은 모두 동작 그만 상태로 멈춰버리는... 이 세상에 마치 우리 둘만 존재하는 것 같았다. 그래, 그건 분명 교통사고 같은 거였다. 사랑의 교통사고. 내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이 그 자리에서 꼼짝달싹 움직일 수도 없고 마치 뇌가 마비된 것 같은 그런 순간. 그런 경험. 난 사랑의 번갯불을 맞아 그 자리에서 머리가 다 타버린 여자가 되어 그렇게 서 있었다.



 23살 이은수와 24살 민지훈의 첫 만남이었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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