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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곽기영 Jan 08. 2024

29. 버스에서 인생을 보다

일상에서 떠올린 단상

손님이 별로 없는 버스에 홀로 앉아, 겨울바람 불어치는 차장 밖 풍경을 바라본다.


두꺼운 옷을 입고 한껏 웅크리며 어디론가 걸어가는 사람들과, 빨간 후미등을 점멸하며 줄지어 달려가는 차량들로 가득하다.


열 지어 흘러가는 인생의 시간들 중 지금 이 시간에 나는 버스 속에 앉아있고, 누구는 종종거리며 걷고 있으며, 누구는 색색의 자동차를 가지고 달리고 있다.


요즈음 버스를 타면서 고개를 돌려가며 이것저것 관찰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관찰하다 보면, 내가 살고 있는 세상에 참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음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된다. 땅 밑 지하철을 타도 사람이 한가득이고, 도로 위 버스를 타도 한가득, 자동차도 한가득이다. 이들이 버스, 지하철, 동차에서 내리면, 이동하여 땅 위에 세워진 건물을 다시 가득 채운다.


버스를 올라타는 사람들은 한참을 기다리다가 진이 다 빠져 버스에 오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버스가 막 출발하려 할 때 헐레벌떡 뛰어 올라타는 사람도 있으며, 버스를 놓쳐 망연자실하는 사람도 있다. 정류장에 도착하는 버스는 다양한 번호를 가슴에 새기고 잠시 멈췄다, 기다리는 사람 중 일부를 태우고 사라진다. 버스를 타지 못하고 자신의 목적지로 향하는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과 금방 버스를 타고 떠난 사람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목적지를 머릿속에 되뇌며 모여들어 장사진을 이룬다.


이러한 버스에 오름과 버스를 기다림 사람들의 더 풍요로운 삶을 위 몸부림과 겹쳐 보인다. 더 나은 직장, 더 전망 좋은 사업, 더 편안한 삶을 위해 기회를 기다리다 올라탄 사람도 있고, 실패하여 절망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아직도 다시 올 다른 번호의 기회를 위해 줄 서 있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다.


자신들의 풍요로운 삶을 위해 몸부림치는 인간들을 어느 누가 정죄할 수 있으랴. 도로에, 건물에 가득한 수많은 사람들이 인간의 본능에 충실하여 마치 인생에 끝이 없는 듯 쉼 없이 움직이며 웃고, 절규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일 것이다.


버스를 타고 가다 보면 먼저 탔는데 나중에 내리는 사람 있고, 늦게 탔지만 먼저 내리는 사람도 있다.


버스 승객의 승하차가 정해짐이 없듯이, 인생의 시작과 끝은 선후가 분명하지 않다. 우리가 언제 죽을지는 인간의 능력으로 예상할 수 없는 것이다. 그렇지만  안생의 마지막은 반드시 오고야 마는 것은 명확한 사실이다.


나의 마지막이 도로 위가 될지, 숲 속이 될지, 침대 위가 될지 모르지만, 언젠가는 버스가 멈추면 내릴 것이다. 우리 인생에 끝이 있다면, 쉼 없이 움직이며 내달리는 시간의 굴레 속에서 한 번은 발을 빼내어 시간이 멈춘 숲 속을 천천히 거닐어 보는 것도 괜찮겠다. 버스정류장의 기다란 줄에 서서 하염없이 기다리다, 한 번쯤은 뒤돌아 나와 대기의자에 앉아 휴식을 가져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조금 더 올바르고 느린 삶을 고민하면서.

출처: 네이버(뭉크, 죽음의 침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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