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찾기까지
고등학생 시절, 패션 디자인 전공을 택하고 특성화 고등학교에 진학한 걸 난 꽤 잘한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어릴 적부터 예체능에 관심이 많았고, 부모님께선 내 진로 선택에 크게 관여하지 않으셨다. 당시에는 부모님의 무관심이 조금 서운하기도 했지만, 되돌아보면 오히려 나 스스로 결정을 내릴 수 있는 기회였던 것 같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진로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주변에는 조언을 해줄 사람도 없었고, 나는 마치 항상 정답지를 찾아야 하는 상황에 갇혀 있었다. 결국 대학 진학도 대충 결정하게 되었고, 학점에 매달리면서 또 다른 집착에 빠졌다. 그렇게 취업을 준비하면서 현실을 직면하게 되었다. 의류 패션 산업에서 다양한 인턴 경험을 쌓았지만, 구조는 늘 같았고, 월급의 현실을 깨달은 순간 나는 생각했다. “이래서 서울에서는 집을 못 사는 거구나.”
지방에서 올라온 친구들과 서울 출신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태어난 곳이 큰 영향을 미친다는 걸 절감했다. 지방 친구들은 돈을 모아야 하는 현실적인 문제에 맞닥뜨렸고, 서울 친구들은 이미 더 큰 목표를 꿈꾸고 있었다. 이때 깨달았다. 태어난 곳이 곧 스펙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서울에서의 취업과 생활에 지쳐 고향으로 내려왔고, 처음에는 하고 싶었던 미술 공방을 열었다. 그림을 그리는 시간은 행복했지만, 현실적인 문제는 피할 수 없었다. 공방 운영이 쉽지 않다는 걸 깨닫고 접었으며, 이어서 의류 사업에 뛰어들었다. 그러나 유통의 세계는 만만치 않았다. 사입 문제부터 지방 시장의 독점 문제까지, 사업은 계속해서 예상치 못한 리스크로 가득했다. 그 와중에 중국 사입까지 시도했지만, 유통만이 아니라 물류, 인건비 등 관리할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그러던 중, 프리랜서로 간간이 해오던 그래픽 디자인이 떠올랐다. 큰 자본 없이 시작할 수 있었고, 필요로 하는 수요도 많았다. 그렇게 디자인 사업으로 전환하게 되었고, 이제는 관공서부터 기업체까지 다양한 고객과 일하며, 마침내 내가 좋아하는 일을 통해 수익을 얻고 있다.
결국, 나는 ‘재미’가 돈이 되는 일을 찾아냈다. 의류 사업에서는 물류 작업의 한 부분일 거라곤 생각지 못했지만, 디자인 작업은 시작부터 끝까지 내가 좋아하는 과정이었다. 이 경험은 나에게 중요한 깨달음을 주었다. 우리가 흔히 성공의 기준이라 생각하는 것들, 예를 들어 학력이나 첫 직장 경력 같은 것들은 사실 전부 주변의 시선일 뿐이었다.
결국 나에게 남은 건, 내가 좋아하고 즐길 수 있는 일이었다. 그리고 그 일이 결국 나의 수입원이 되었다. 재미가 돈이 될까? 라는 질문에, 나는 이제 확신할 수 있다. 재미는 돈이 될 수 있고, 때로는 그보다 더 큰 가치를 줄 수도 있다고
“하고 싶은 게 왜 이렇게 많냐고 묻는다. 나는 그저 재미있어 보이면 다 해보고 싶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