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소비

행복의 기준은 나한테서

by 리인

학창 시절부터 나는 친구들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사람이었다. 고민 상담은 물론이고 문제를 해결해 주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곤 했다. 누군가는 내게 “너도 참 참견이 많다”라며 장난스레 말했지만, 내겐 그게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마치 누군가의 마음속 매듭을 풀어주지 않으면 나도 편할 수 없는 것처럼 느껴졌으니까.


시간이 흘러 성인이 되면서, 단순히 들어주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논리적으로 설명하고 정리해 주는 데까지 역할이 커졌다. 하지만 그 과정이 항상 순탄했던 것은 아니다. 누군가는 고맙다고 했지만, 누군가는 “굳이 왜 그러냐”며 불편함을 표현하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이건 내 진심이야, 너를 위한 거야”라고 변명 아닌 변명을 덧붙였다. 하지만 정작 나 자신에게 솔직하지 못했던 순간이 얼마나 많았는지 깨닫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왜 그토록 많은 에너지를 감정소비에 쏟았을까?

그 답은 나의 불안에서 출발했던 것 같다. 상대방이 내 이야기를 수용하지 않으면 내가 틀린 사람이 되는 것 같았고, 나의 진심이 거절당하는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어떻게든 설득하고자 했고, 옳고 그름을 가려내는 데 집착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나는 달라졌다. 설명조차 하고 싶지 않은 날들이 찾아왔다. 아니, 설명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마음이 생긴 것이다.


어느 날 친구와의 대화 속에서 깨달은 것이 있었다. 상대방이 어떤 잘못된 결정을 내리려 할 때, 내가 아무리 설명하고 말려도 그가 받아들이지 않으면 결국 의미가 없다는 사실이었다. 결국 상대가 스스로 깨닫는 순간까지 기다리는 것이 가장 현명한 방법임을 알게 되었다.


이후로 나는 대화 속에서 한 발짝 물러서는 연습을 시작했다. “이건 나의 기준일 뿐, 그들의 행복은 내가 결정할 수 없는 문제야.” 내말이 다 옳은 것도 아니니깐 말이다.


감정소비를 줄이는 가장 간단한 방법은 바로 이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다. 상대방의 선택을 존중하고, 그들의 삶을 관망하는 여유를 가지는 것이다. 대신 내가 느끼는 불안이나 초조함은 나 자신을 돌아보는 데 쓰기로 했다. 지금 이 순간 나는 행복한가? 내가 정말 원하는 삶을 살고 있는가?


어느 날 나는 용기를 내어 친구에게 말했다.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 네 선택이 맞다고 믿어.” 처음은 도움을 주지 못하는 무책임한 사람이 된 것 같아 미안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 친구는 내게 말했다. “고마워. 너 덕분에 스스로 생각해 보고 확신을 가질 수 있었어.”


결국, 상대방이 깨닫고 변화하는 것은 나의 개입이 아닌 그들 자신의 여정에서 나온다. 그리고 나는 그 여정을 존중할 준비가 되어 있다. 감정소비로 지쳐있던 내가 이제 조금 더 행복에 가까워진 것 같다. 그 행복의 기준은 다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으로부터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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