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oj Nov 11. 2024

핑크 공주

네이버 웹

손녀딸을 자주 돌봐주는 친한 언니가 있다. 주말에 결혼식 가는 날 손녀딸을 데리고 왔다. 머리는 예쁘게 양갈래로 묶어주고 핑크 치마와 구두를 신었다. 너무 귀여워서 핑크 공주님으로 불렀더니 활짝 웃었다.

핑크 구두는 신데렐라가 신고 온 유리구두처럼 예뻤다. 딸을 키웠다면 저런 기분을 느꼈으려나.


아들만 둘을 키워보니 핑크색을 살 일이 없었다. 원래도 카키. 그레이. 다크 블루 등 어두운 색을 선호하던 나였기에 아들만 키워서 다행이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빨강. 분홍. 주황 등 원색을 이상하게 꺼렸다. 옷을 고를 때 나에겐 이미 생각에서 배제된 색깔이다. 독특한 디자인도 튀는 색도 싫어하는 난 사람들에게 주목받는 걸 싫어해서 시선을 끄는 것이라면 거부 반응이 일어나는 것 같다. 남들이 입은 걸 보면 화사하고 예쁜 데도 정작 난 입지 않는다. 화려한 걸 즐기고 분홍을 좋아하는 패리스 힐튼 같은 배우를 보며 그저 대리만족을 할 뿐이다.


아들은 내가 좋아하는 색의 옷을 마음껏 입힐 수 있으니 키우면서 편했다. 남편은 달랐다. 아들이라도 밝게 입히라고 했지만 옷을 고르다 보면 어느새 내가 선호하는 색에만 시선이 갔다. 남편이 딸을 키웠다면 아마도 나보다 더 정성을 들였을 지도 모른다.


만약 딸을 키웠다면 달랐을까. 가끔 상상한다. 원피스에 핑크 구두를 신기고 예쁜 핀을 꽂아 머리를 예쁘게 묶어줄 수 있었을까. 아마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딸이라고 해서 밝은 원색의 옷을 입혔을 리 만무하고 내 맘에 드는 색의 옷과 심플한 옷들을 골랐을 게 분명하다.


형님과 큰언니는 각각 딸만 둘이다. 가까이에서 지켜보니 다양한 색깔에 다양한 디자인의 옷과 악세사리. 신발이 즐비하다. 아들은 겨울엔 운동화와 부츠. 여름엔 샌들만 있으면 되지만 딸들은 액세사리도 예쁜 구두도 많이 필요하다. 게다가 호불호가 강하고 입고 싶은 옷이나 갖고 싶은 것들에 대한 주장도 확고하다. 안 사주고는 못 배길 만큼 말이다.


좋아하던 유튜브 채널에선 한 부부가 구여운 딸을 키우면서 일상의 일과 여행기 영상으로 큰 인기를 끌었다. 태어나서 자라는 과정을 생생히 담은 소중한 영상이었다. 유난히 표현력이 풍부한 사랑스런 아이에게 한동안 빠졌다. 그 뒤에는 긍정적이고 너그러우며 대화를 많이 해주는 부모가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아이의 양육에 지장을 줄까봐 유튜브 활동을 중단한다고 해서 아쉬웠는데 마인드가 참 좋은 부모라고 생각했다.


오래간만에 근황을 전한 걸 보니 몰라보게 많이 컸고 여전히 말을 잘 하고 사랑스러웠다. 요즘 옷입는 문제로 아이와 많이 다툰다는 엄마는 딸이 러블리하고 공주같은 옷만 입으려고 해서 평상시엔 딸이 원하는 대로, 주말엔 엄마가 입혀주는 대로 타협했다고 한다.


엄마에게 화장을 시켜주고 머리를 단장해 주고 차를 마시라고 갖다준다. 장난감으로 하는 일이라도 한번도 경험해보지 않은 일이라서 딸은 참 틀리구나 싶었다. 아들들이라고 다 같진 않겠지만 옷이나 신발 등으로 투정을 부린 일이 없었다. 딸들은 역시 개성도 자기주장도 강하다. 개인간의 성향 차이도 있지만 딸과 아들의 차이는 극명하다.


핑크 공주님 같은 딸을 키워보지도 아기자기하게 꾸며준 일도 없지만 왠지 내 쿨한 성격은 아들을 키우는데 최적화된 성향 같다. 이제껏 큰 불만은 없었지만 나이들어 딸은 친구 같고 엄마 마음을 더 잘 헤아린다는 데 그게 좀 아쉬울 뿐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