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민준이고 싶은 나

by oj


민준이는 부모의 무한 애정과 사랑을 받아 똑똑할 뿐만 아니라 유전자도 우월하다. 대기업에 다니시는 이모부와 사범대학을 나와 국어 교사 자격증이 있는 이모의 좋은 머리를 물려받은 것이 분명하다. 반면 나는 열등한 유전자만 물려받았다. 아빠도 머리가 좋으시고 엄마는 회계에 능한데 도무지 나만 잘 하는 게 없다.

네 자매 중 막내로 두 분 이모만 대학을 나오셨다. 할아버지께서 딸들만 낳으시고 속상해 하셨다가 학창 시절부터 공부 잘 하고 모범생에 수학경시대회상. 글쓰기상. 미술상. 모범상 등 많은 상을 받고 그걸 스크랩해둔 할아버지의 자랑인데다 대학에 합격한 이모 덕분에 그나마 위안이 되셨다고 했다.

국어 교사가 되실 줄 알았던 이모가 임용에 한 번 실패하시고 일찍 결혼하시는 바람에 임용을 포기하셨을 때 할아버지의 실망은 여간 크지 않으셨다. 첫아이 육아에 이어 둘째 형준이까지 낳고 나신 뒤 다시 일을 시작하신 것도 할아버지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선인지도 모른다. 새롭게 학교 일을 시작하시면서 할아버지의 기대에 미치지 못한 죄송한 마음 때문인지 지금까지 한 번도 쉬지 않고 열의를 다하셨다. 가르치는 일도 적성에 잘 맞는다고 하시면서 공부방에서 수학 학원. 방과 후 교사로 논술을 가르치시고 지금은 돌봄 교사로 일하시면서 한시도 가만히 계시지를 않는다. 오전에는 중학교로 상담교사 자원봉사 일까지 하며 늘 바쁘게 일하면서도 세밀하게 식구들을 챙기는 자상한 분도 민준이 이모였다.


세 분 이모가 있지만 성격들이 다 다르다. 하긴 나와 여동생만 봐도 민준이와 형준이만 봐도 너무 다르니까 당연한 일이다. 맏이여서 그런지 힘든 일을 척척 도맡아하면서도 손 빠르고 부지런해서 살림의 여왕으로 인정받는 큰이모이다. 첫딸은 살림 밑천이라고 한 옛말이 맞는 것 같다고 할머니께서 말씀하신 적이 있었다. A형 자매 중 유일하게 O형인데다 괄괄한 성격에 성미까지 급한 둘째인 우리 엄마는 분위기를 재밌게 만드는 재주가 있으시다. 하지만 성격이 불같아서 어린 사촌들에겐 무서운 이모로 통한다. 나에게도 역시 부드럽고 자상한 엄마라기 보단 신경질적인 엄마에 가깝다. 도저히 종잡을 수 없고 기분 내키는 대로이신 그런... 셋째인 민준이 이모는 이해심 많고 차분하고 부드러우면서도 지혜로운 분이다. 나는 그런 이모가 참 좋고 어릴 때부터 민준이와 같이 자라서 민준이 이모는 나를 가장 많이 챙겨주시고 아들처럼 생각하신다. 막내 이모는 막내라서 그런지 밝고 유쾌하며 매사에 긍정적이시다. 유치원 선생님으로 오랫동안 일하셔서 자주 보기 힘든 이모였다. 암튼 그렇게 네 자매인 이모들은 가깝게 살기도 하지만 똘똘 뭉쳐 의좋게 지내신다. 할아버지께서 암수술 하실 때도 병간하시는 할머니 대신 돌아가면서 간호하고 여행을 보내드릴 때도 의기투합을 어디든 잘 모시고 다닌다. 이번 할아버지 칠순 때는 제주도에 모시고 간다고 했다. 아들이 없는 것을 평생 서러워하셨는데 지금은 아들 몫 하는 딸들이 넷이나 있다고 나가시면 늘 자랑하고 다니신다. 예전에는 아들선호사상으로 아들 아들했지만 지금은 딸들이 대세이인 분위기로 완전 바뀌었다. 아들만 있는 엄마들은 이다음에 외롭다고 오히려 안타깝게 생각한다. 우리 집만 해도 나보다 여동생인 지인이만 사랑을 독차지 하고 있다. 이모들 중 유일하게 딸이 하나도 없이 아들만 둘인 민준이 이모는

“누군 딸 낳기 싫었을까? 내가 골라서 낳을 수 있는 것도 아닌데 주시는 대로 낳아서 잘 키우면 되는 거지! 난 아들이랑 더 잘 맞아 괜찮아.”

하셨다. 솔직히 나는 민준이가 부러웠다. 가끔은 이모 아들이 되어 이모가 우리 엄마이고 내가 민준이였으면 하는 부끄럽지만 철없는 생각을 해본 적도 있다. 유독 나만 열등한 유전자를 물려받은 것 같이 억울한 마음이 생길 때면

‘아니야. 유전자 탓이 아니고, 이건 내 노력이 부족한 탓이야!’

라며 스스로 생각을 돌이켰지만 환경이나 가정 분위기는 내가 어쩔 수 없는 전적으로 부모 탓이다.


할머니 할아버지와 살기 전까지도 우리 부모님은 나에게 크게 관심을 주지 않으셨다. 사업에 늘 바빠 새벽같이 나가시고 늦게 들어오셔서 주무시기에 바쁜 아빠와 나를 인격적으로 대해주지 않는 엄마에게 난 늘 불만이었으니까... 아이 때는 어땠는지 몰라도 엄마 아빠의 무한 사랑을 살갑게 받으며 자란 기억이 나에게는 안타깝지만 없다. 일에만 바쁘시고 무뚝뚝하신 아빠와 냉정하신 엄마가 계속 내가 느끼는 부모님 상이다.


얼마 전 일이었다. 엄마가 저녁을 먹고 있는 나에게 안내문을 보여 달라고 하셨다. 내가

“무슨 안내문?”

하며 의아해 하자 엄마는

“오늘 체육대회 안내문 나왔다면서?”

“아, 맞다. 깜박했다!”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벌써 등짝에선 불이 나고 어느 새 엄마 손은 내 귓불을 잡아당기며 소리를 지르셨다. 귓불 잡아당기기, 볼 꼬집기, 등짝 스매싱은 엄마의 3종 주특기이다. 하루 이틀 일도 아니라지만 화가 치밀어 오르고 아직도 귓불이 얼얼했다. 안내문 안 가져온 일이 이렇게 귀를 꼬집힐 일인지 속에서 부글부글 거렸다. 4학년이나 됐는데도 유치원생 다루듯 하지를 않나, 윽박지르며 주눅 들게 하지를 않나, 소리 지르는 건 기본이니 내가 자존감 낮고 참을성 없는 아이로 자란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고 전적으로 엄마 탓이다. 그날따라 화가 안 가라앉고 심란하고 우울했다. 민준이와 전화 통화로 하소연을 하자 민준이는

“이모가 또 시작했군. 에휴!, 그러게 잘 챙기지 왜 두고 갔어? 이모 성격 알면서...”

“평소에 관심도 없다가 느닷없이 왜 관심 있는 척하냐구? 언제는 내 학교생활에 관심이나 있구? 진짜 짜증 나. 내가 나이가 몇 살인데 아직도 때리고 볼을 꼬집냐구? 진짜 짜증나 죽겠어.”

“화 풀고 진정해. 이모가 뒤끝은 없잖아.”

“그게 더 싫어. 실컷 상처주고 언제 그랬냐는 듯이 아무렇지도 않게 대하면서 웃을 땐 진짜 어이가 없다니까. 그게 더 싫어! 에휴!”

“그래도 이모가 네 걱정 얼마나 하는데.”

“말로만 하지 말고 행동으로 보여줘야 알지. 난 주워온 아들 같다니까. 에휴! 넌 좋겠다. 이모는 때린 적도 소리 지른 적도 없지? 한 번도 못 본 것 같아. 이모랑 반반 섞였으면 좋겠다. 진짜.”

“마음 풀어. 화난다고 또 게임 오래 하지 말구! 나도 맞은 적 있었어. 너도 알잖아. 내가 1학년 때 피아노학원에 1시간이나 늦어서 엄마가 찾으러 왔을 때 내가 길거리 게임기 앞에서 형들 게임 하는 거 봤을 때. 형들 게임하는 거 시간가는 줄 모르고 쳐다보고 있는 걸 보시고 어찌나 열 받으셨는지 구석으로 끌고가시더니 손이 올라 오시더라구. 몇 번 그런 일이 있어서 주의를 줬는데 또 약속 안 지켜서 화가 많이 나셨지. 연락도 안되고 내가 안 왔다니까 걱정 되고 놀라셨지. 꼭 회초리로만 때리셨는데 나도 깜짝 놀랐어!”

“그 때 한번이잖아. 기분이 어땠어?”

“엄마도 화를 내실 수 있는 분이구나 생각 했지.”

“거봐! 이모는 한 번뿐이었잖아. 난 셀 수도 없어!”

나는 아직도 화가 안 풀렸다. 저녁 먹으란 소리가 들렸지만 밥맛이 없었다. 또 폭풍 잔소리를 들을까봐 마지못해 식탁에 앉아 저녁을 먹었지만 엄마랑 눈도 안 마주치고 음식에서 아무 맛도 느끼지 못했다. 더 화나는 건 엄마는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여동생 지인이와 장난치며 하하 호호 하며 웃고 있었다. 동생 지인이는 딸이라는 이유로 다 용서되고 막내라는 이유로 엄마 아빠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어 평소에도 나만 소외된 기분이었다. 가슴이 답답했다. 스트레스를 풀어줄게 게임밖에 없었다. 게임에 한참 빠져있는데 밖에서 날카로운 엄마 목소리가 들렸다.

“숙제 했어? 또 게임 하니? 얼른 끄고 숙제해라!!”

“했다구요!”

나도 모르게 날카로운 목소리가 나왔다. 단답형 질문, 명령형 말투, 날카로운 목소리, 화나면 손부터 올라가는 그런 사람이 우리 엄마였다. 우울했다. 이모 반만이라도 엄마가 닮았으면 좋겠다.


요즘 들어 화초 키우기에 재미를 붙이신 엄마가 거실에 놓인 화초의 새싹을 볼 때마다

“어머머, 새순이 또 올라왔네. 색이 연한 게 너무 이쁘다. 어쩜...호호호.”

“얘들아, 사랑 한다 잘 자라라!”

하며 닦아주는 모습에 어이가 없었다.

‘치! 나한테나 잘 하시고 그런 말을 해보시죠. 감정도 못 느끼는 화초 따위에 말고요.’

엄마에게 불만이 많은 나는 매사 엄마 태도에 괜히 심술이 난다.

‘저 잎을 내가 다 뜯어놔야지.’

하다하다 화초에게 질투하고 퍼붓고 있는 내가 참 못나 보였다. 나도 엄마 피와 별반 다르지 않은가 보다.


언젠가 이모가 엄마에게 말하신 말씀을 들은 적이 있다. 부모가 응석받이로 키운 아이는 자기 고집이 강하고, 양보만 강요한 아이는 자기 것을 잘 못 지키고, 부모 주장대로만 키운 아이는 결단력이 약하고, 부모가 방관한 아이는 의지가 부족하고, 꾸중만 들은 아이는 자존감이 낮아진다고...문제 아이 뒤에는 문제 부모가 있다고...아이의 잘못을 탓하기 전에 부모 양육을 돌아보라고 하셨다. 관대한 부모 밑에 이해심 많고 배려하는 아이가 되고, 사랑을 많이 받은 아이는 남도 사랑할 줄 알고, 칭찬을 많이 받은 아이는 자신감이 생기니 나한테 마음을 더 써주라고 대놓고 말씀하셨지만 엄마는 그 말을 듣고도

“내가 알아서 해. 너나 잘 해!”

하셨다. 다른 사람 말에 귀 기울이는 엄마가 아니다. 진짜 말이 안통하는 고집불통에 못 말리는 엄마이다.

이호철 선생님의 ‘그림 이야기’라는 책에서 엄마를 떠올려 그림을 그려보라고 했을 때 내가 주저하지 않고 그린 그림은 마귀할멈이었다. 조금의 망설임도 죄책감도 없이... 만약 이모를 그리라고 했다면 고민을 좀 했을 거다.

‘뭐든 소원을 들어주는 지니로 그릴까? 미소 천사로 그릴까?’

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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