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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j Aug 26. 2024

가슴속의 멍


몸에 난 멍은 시간이 지나면 지워져도 마음속 멍은 사라지는데 많은 시간이 걸린다. 어쩌면 평생 지워지지 않기도 한다.

누구나 작은 멍쯤 하나는 갖고 있지 않을까.


가장 가까운 부모에게 받은 학대. 친구에게 당한 왕따. 사회에서의 소외감. 실패로 인한 계속된 좌절. 비교의식과 열등감. 사랑하던 이에게 당한 배반과 실연의 아픔. 소중한 이들을 떠나보낸 상실감 등. 크고 작은 멍이 가슴 깊숙이에 숨어 가끔 아프게도 하고 생채기가 되어 불쑥 나타나서 움츠러들게도 한다. 그 멍이 내 잘못으로 생긴 것이 아니라면 더욱 그럴 것이다.


최근 유명한 먹방 유튜버가 남자친구에게 지속적으로 협박을 받으며 많은 돈을 갈취 당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공분을 샀다. 몸에 여기저기 멍자국을 지닌 채 상처를 꾹 참고 웃으면서 먹방을 했다는 사실을 알고나니 마음이 짠했다. 겉으론 웃고 있지만 마음에선 울고 있었으리라. 어쩌면 고통을 잊기 위해 음식에 집착하고 과하게 먹었을 지도 모른다. 몸의 멍이 말해주듯 마음의 멍은 더했을 것이다.


예전에 읽은 은희경 소설의 <멍> 에서도 영규란 친구와 그의 아내 현정씨의 마음속 멍에 대해 이야기 한다. 현정은 임신으로 대학 졸업을 하지 못한 채 영규란 친구와 결혼을 했고 그 뒤 사는 모습이 궁색하다고 전해졌다. 남편 영규는 혼자 돌아다니며 가족을 돌보지 않는 생각없이 사는 사람. 사업을 벌일 거라며 허풍떠는 사람. 여기저기 기웃대며 술이나 얻어먹는 한심한 사람으로 치부하며 동창들은 그를 마음대로 폄하했다.


그도 나름대로 애쓰며 살면서 여기저기

멍투성이인데도 말이다. 자주 헛발을 딛으면서 몸에 생긴 멍뿐만 아니라 하는 일마다 잘 되지 않아 괴로워하며 마음의 멍도 같이 새겨졌다. 그는 틈틈이 딸에게 미안한 마음을 글로 써내려갔다. 그것이 유언이 되었다. 그가 도로로 뛰어들어 병원에 있다가 세상을 등질 때까지 그 마음의 고통이 어땠을지 짐작도 못할 것이다. 잘 하고 싶었지만 원하는 대로 되지 않는 세상에서 자신이 가족에게 해줄 수 있는 일이 아무 것도 없다는 생각으로 한 극단적 선택에 이르기까지 아무런 멍이 없었을까. 누군가는 나약한 사람이라고 동정하고 누군가는 죽을 힘을 다해 살아보지 그랬냐며 비난하겠지만 여기저기 부딪혀 멍들고 낫지 않은 채 또다시 부딪히고 곪아 터진 상처가 곳곳에 있었으리라.


그의 아내 현정만 그 마음을 알았다. 결혼해서 첫 아이를 유산하고 다시 낳은 딸을 키우면서 그를 이해하려고 애썼다

하지만 점점 좌절하고 망가지는 그를 보며 함께 멍들어 갔을 것이다. 그 마음을 <멍의 기억> 이란 소설로 풀어간 현정의 아픔은 누구에게도 이해받지 못했다. 소설을 읽는 내내 영규와 현정의 부부 모습이 안쓰러웠다. 치열하게 부딪히며 살아간 부부의 삶은 한낱 가십거리로 치부되어선 안 된다.


누구에게나 생길 수 있는 멍. 자신의 실수로 만들었던 타인에 의해 생겼던 그 멍이 낫기를 바라야 한다. 시간이 지나면 서서히 사라지겠지만 멍이 지워질 때까지 자신을 좀 더 보듬고 사랑해야 한다. 주변에선 동정이 아닌 따뜻한 시선. 그 처지를 이해하며 베푸는 작은 관심. 힘내라는 진심어린 말에 담긴 격려와 지지.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에 같이 아파하는 마음만으로도 멍은 치유될 수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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