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당하고 어이없는 일이 있었다. 남편은 수영 강습이 있는 출근 날이면 7시 강습을 마치고 9시까지 출근을 한다. 난 9시 강습을 가는데 가끔씩 톡을 한다.
그 날도 수영가면서 출근 잘 했냐고 카톡을 했다. 보통 바로 바로 답을 하는데 한 동안 답이 없었다. 바쁜가 보다 하고 수영장에 들여가려다가 괜히 전화가 하고 싶어졌다.
전화도 안 받는 거였다. '바쁜가 보네.' 하고 말았으면 될 일을 그게 화근이 될 줄이야.
9시면 도착했을 테니 혹시나 해서 회사로 전화를 걸어봤다. 9시가 넘었는데 출근을 안 했다는 거였다. 회사에서도 전화를 했는데 받지 않는다고
"좀 늦으시나 보네요."
했다. 항상 일찍 도착하는 사람인데 이상했다. 출근하면 전화 부탁한다고 끊고 수영도 들어가지 못 하고 전화를 기다리는데 괜히 마음이 불안했다.
설비팀에서 일하는 남편 직장이 구파발인데 그 날 연신내쪽에서 오전에 지하철에서 작은 화재가 있어 운행을 멈춰 길이 막힌다는 뉴스를 들은 터라 그래서 늦나 싶었다. 핸드폰을 안 가져갔나 싶기도 했지만 그럼 회사에는 있겠지 했다. 조금 늦나보다 하며 '별일 아니겠지' 기다리는데 30분쯤 지났을까 회사에서 전화가 오길래 '도착했나 보네.' 하며 안심을 하고 전화를 받앐다.
웬걸. 오히려 나한테 연락 없었냐고 다시 전화가 온 거였다. 그러실 분이 아닌데 이상하다면서 회사에서도 걱정을 하기 시작했다. 그 때부터 가슴이 철렁 내려앉으며 정신이 아찔해지기 시작했다.
일단 옷을 갈아입고 수영장 안내 데스크에서 응급 상황이 없었는지 확인했다. 없었다고 했다. 관내 119에 전화 해서 응급 환자가 없었는지 확인하고 관내 경찰서에도 전화해서 교통 사고 접수는 없었는지 다 확인해도 없었다.
경찰서에서 확인을 위해 차량 번호를 물어보는데 갑자기 머리가 하얘졌다. 차 번호가 전혀 생각이 안났다. 급히 애들한테 연락하니 애들도 아빠 차 번호를 정확히 모른대서 아파트 관리실에 전화해 우리집으로 등록된 차량 번호를 확인했다.
당황하니 전혀 생각이 나지 않았다. 심장은 쿵쾅거리고 정신이 아찔했다. 일단 위치 추적을 부탁하러 경찰서로 갔다. 애들한테 확인 문자가 계속 오고 있었다. 아직 연락 없다고 하니 걱정하는 눈치였다.
핸드폰을 두고 갔나 생각 하면서도 그럼 출근은 했어야지 2시간이 넘도록 출근을 안 했다니 무슨 일이 일어난 게 분명하다고 확신할 수밖에 없었다. 생각이 복잡 하다보니 신호등 앞에서 급정거를 하며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침착하자고 스스로 되뇌였다.
무슨 정신으로 경찰서에 갔는지 모르게 사고 접수쪽으로 가서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위치 추적을 부탁했다. 전화 위치 추적은 실종 부서로 가야 한다며 안내를 받았다. 이것저것 질문하며 조서를 작성하던 중 전화가 울렸다. 회사였다. 다급히 전화를 받으니 남편이었다. 순간 다리에 힘이 풀리며 어떻게 된 거냐고 냅다 소리를 질렀다.
남편도 황당하다는 반응이었다. 핸드폰은 집에 두고 왔고 출근 잘 해서 점검 나갔다가 문제가 생긴 일을 처리하고 사무실로 들어오니 난리가 났다는 거였다. 회사에서건 집에서건 출근을 안 했다고 생각한 게 더 어이가 없다고 했다. 난 그렇다치고 회사에선 왜 당신이 출근한 걸 몰랐냐고 하니까 그 날따라 소장님이 지하철 화재로 출근이 늦어졌고 회사 동료는 남편이 옷을 걸어놓고 회사 근무복으로 갈아입고 자기 가방까지 두고 나갔는데도 내가 전화를 한데다가 남편까지 전화를 안 받으니 제대로 확인 안 하고 출근을 안 했다고 오해한 것이다.
내가 전화만 안 했어도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었나 후회스럽기도 하고 무슨 이런 황당한 일이 있나 싶기도 했다. 그 날 따라 핸드폰을 왜 안 가져간 건지 어이 없기도 하고 멀쩡히 출근한 사람을 확인도 안 해본 동료를 원망 하다가도 일단 별 일 없으면 된 거라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 마음을 가라앉혔다.
경찰서에서 확인해주셔서 감사하고 바쁜데 죄송하다며 민망해 하는 내게 웃으면서
"그런 일 많아요. 다행인 거죠!"
하셨다. 오전 내내 하루 에너지를 다 쏟은 건 같고 긴장이 풀리니 기진맥진해졌다.
두 시간 반이 이렇게 긴 시간이었나 싶었다.
낮에 핸드폰을 가지러 집에 잠깐 들른 남편을 보는데 괜히 울컥했다.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은 상황이 닥친 건 아닌지 별의별 추측을 다하면서 지옥과 천국을 왔다갔다한 그 날 황당무계한 일은 잊혀지지 않는다. 그만큼 내 곁에서 동반자로 함께 있음이 고맙고 소중한 사람이었다는 것을 확인한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