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합을 닮은 청초한 아름다움을 지닌 친구가 있었다. 먼저 떠난 친구이다. 이름만큼 화사하고 선한 친구.
투병 중이긴 했지만 작별인사도 못한 것이 가슴에 사무친다. 잘 가라고 그동안 애썼다고 꼭 안아주고 싶었는데 너무 갑작스럽게 가버린 친구. 봄꽃처럼 여리고 예쁜 친구였는데 50살도 안 된 어느 날 갑작스럽게 떠났다. 벌써 8주기가 되어간다.
이별은 늘 가슴 아프다. 다만 아름답게 기억할 뿐이다. 슬펐던 때보다는 행복했던 때를 아팠던 때보단 건강했던 때를 기억하며 이별 한 후에도 마음속에선 잊지 않는 것이다.
유방암이 발병 되었다가 회복된 친구였다. 몇 년 후 나도 같은 암을 진단 받고 수술을 앞둔 병실로 한달음에 달려와주어 지인이었던 사이에서 절친이 되었다. 동병상련의 아픔을 서로 위로하며 좋은 곳을 찾아다니고 좋은 음식을 먹고 즐겁게 살자며 서로 보듬어주는 친구 사이가 됐다. 안타깝게도 재발되어 투병 중에도 밝은 웃음 잃지 않고 잘 견뎌낸 친구였는데 앙상하게 야윈 친구의 모습을 마지막으로 전화기 너머로 들린 비보는 나를 주저앉아 통곡하게 만들었다.
그 날 왠지 목소리가 듣고 싶어 전화했을 때 딸이 엄마 하늘로 갔다며 전해준 소식 앞에서 오열했다. 장례식장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친구의 영정사진을 보자마자 친구의 딸을 부둥켜안고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고3이던 쌍둥이 아들딸을 두고 어떻게 눈을 감았을까. 함께 보낸 시간이 눈에 선한데 이젠 만날 수 없다는 사실이 믿기지가 않았다. 아직도 환하게 웃으며 내 이름을 부를 것만 같은 친구. 친구를 떠나보내는 건 그렇게 그렇게 견디기 힘든 고통이다.
몇년 전 방영했던 '지금 헤어지는 중입니다' 라는 드라마는 보는 내내 먼저 떠난 친구가 생각나서 가슴 아팠다. 남녀 주인공의 사랑과 이별 과정도 안타깝지만 세 친구의 우정과 친구와의 헤어짐에 더 몰입 되었다. 어린 딸을 두고 시한부를 선고 받아 떠나야 하는 엄마의 마음. 애써 절망과 두려움을 참으며 강한 척 하는 마지막 모습. 친구를 떠나보내야 하는 이별의 아픔까지 가슴이 먹먹했다. 이젠 혼자 남을 어린 딸에게 스스로 머리를 감고 묶으며 옷을 챙기는 방법을 알려주고 남편에게는 딸의 양육과 집안일에 적응하는 방법을 하나씩 가르칠 때마다 그 마음이 어떠했을까.
절친들과 가장 예쁜 모습으로 스튜디오에서 함께 웃으며 마지막 사진을 찍을 땐 얼마나 간절히 살고 싶었을까. 통증이 심한데도 답답한 병원이 싫다며 남은 시간을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 보내며 주변을 정리했다. 어쩔 수 없는 이별 앞에서 마지막을 준비하는 친구의 모습은 마치 먼저 떠난 친구를 보는 것처럼 가슴 시리도록 아팠다. 영정 사진이 화면에 비칠 땐 내 눈에서 어느 새 눈물이 흥건했다. 드라마를 보고 운적이 없었던 나로서는 몹시 당황스러운 감정이었다. 떠나보내기 싫다며 혼잣말을 내뱉는 허탈한 여주의 목소리가 메아리처럼 다가와 내 가슴에 꽂혔다.
그 후 방영된 '서른아홉' 이란 드라마나 '인생은 아름다워' 라는 영화에서도 자신의 죽음을 알게 된 주인공들이 죽어서가 아닌 살아 있을 때 보고 싶은 이들에게 감사와 사랑을 전하고 싶다고 초대해서 마지막을 함께 했다. 그 장면을 보면서 마지막 인사도 나누지 못한 그리운 친구가 떠올라서 또다시 울컥했다.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은 헤어짐.
인생의 갈림길에 선 그 두려움은 아무도 알지 못한다. 누구도 대신 할 수 없는 오롯이 혼자 감당해야 할 몫이기에 지켜보는 이도 고통스럽고 애처롭기만 하다. 나이가 들면서 아픈 이들에 대한 소식으로 자주 가슴을 쓸어내린다. 얼마나 더 많은 이별을 해야 할까.
가까운 이들을 떠나보내면서 아등바등 살지도 말고 너무 잘 하려고 애쓰지도 말고 평온하게 주어진 일상을 묵묵히 감당하며 감사와 행복으로 살겠다고 마음먹었다.
헤어짐의 끝은 견뎌내고 회상하고 추억하며 그 만남을 잊지 않고 마음속으로 기억하는 것 밖에는 없다. 우리 영역은 아니지만 이별의 아픔과 헤어짐의 빈자리가 너무 크다. 가슴 한 쪽이 뻥뚫린 것처럼 말이다.
결혼식 날 친구 이름으로 들어온 축의금에 화들짝 놀랐다. 친구 딸과 계속 만남을 이어오기에 딸이 보낸 거라고 생각했는데 딸도 하고 아빠가 엄마 이름으로 따로 보냈다고 했다. 전화를 했더니 엄마가 있었다면 반드시 갔을 거라는 그 말에 또 한 번 마음이 뭉클했다.
친구 딸은 상담 심리를 전공해 이번에 숙대 대학원에 합격했다는 소식을 듣고 연말에 함께 만나 축하 자리를 가졌다. 그 때 청첩장을 주면서 꼭 오겠다고 했는데 친구 이름까지 보게 될 줄은 몰랐다. 아빠께 감사 인사 대신 전해달라고 하고 전화를 끊었는데 친구 이름 앞에서 한참 시선을 뗄 수가 없었다.
가끔씩 친구가 보고 싶고 함께 했던 시간들이 떠올라 그리움에 울컥하며 우울한 날도 있지만 그럼에도 친구는 아직 내 마음속에 살아있다.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