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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j Sep 13. 2024

내가 사랑하는 사람


정호승 시인의 <내가 사랑하는 사람> 이란 시는 내가 참 좋아하는 시이다.


"나는 그늘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그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한 그루 나무의 그늘이 된

사람을 사랑한다

햇빛도 그늘이 있어야 맑고 눈이 부시다

나무 그늘에 앉아 나뭇잎 사이로

반짝이는 햇살을 바라보면

세상은 그 얼마나 아름다운가


나는 눈물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눈물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한 방을 눈물이 된 사람을 사랑한다

기쁨도 눈물도 없으면 기능이 아니다

사람도 눈물 없는 사람이 어디 있는가

나무 그늘에 앉아 다른 사람의 눈물을

닦아주는 사람의 모습은

그 얼마나 고요한 아름다움인가"


작가님은 그늘이 되어 품어주는 사람. 다른 사람의 눈물을 닦아주는 사람을 사랑하고 그 모습이 고요하고 아름답다고 말한다. 좋아하는 사람의 사람의 유형이나 기준이 누구에게나 있다.


난 일관성 있는 사람이 좋다. 감정 기복이 심하거나 자기 감정에 따라 변덕을 부리는 사람은 가까이 하기 싫다. 좋다고 했다가 싫다고 했다가 욱하다가 헤헤거리다가 어디에 장단을 맞춰야 할지 모르겠다. 주변 사람이 자신의 변덕으로 힘들어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전혀 안 한다.  


유쾌한 사람도 좋다. 분위기를 밝게 하고 호탕하게 웃는 사람. 웃으면서 인사하면 더 밝게 인사를 건네는 사람은 주변을 환하게 만들어 기분이 절로 좋아진다.


담백한 사람도 호감형이다. 간결하면서도 단순명료한 사람은 산만하지 않다. 옆에 있으면 지나치게 산만한 사람이 있다. 말도 빠르고 정신이 없고 대화도 장황해 요점이 없다. 한참 듣다보면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나름대로 정리를 해서 이해해야 한다. 듣다보면 지치기도 하고 다른 사람 말은 경청하지 않는다는 것도 문제이다. 대화가 이미 끝나고 나서는 무슨 말이냐며 되묻는다. 이미 다 했던 얘기인데 혼자만 귀기울여 듣지 않아 다시 묻는 사람이 꼭 있다.


자기 주장이 강하지 않고 유연성 있는 긍정적인 사람도 좋다. 자기 주장이 강한 사람은 의견을 수렴하지 않고 자신과 다른 상대방을 폄하하기도 한다. 반면 유연성 있는 사람은 누군가 제안하는 의견을 흔쾌히 받아드리고 좀 맞지 않아도 서로 조율 한다. 부딪히는 두 사람 사이의 갈등을 줄이는 역할도 한다. 안 좋은 상황보단 좋은 쪽으로 유도해 꽉 막히지 않고 유연한 사람 옆에 있으면 마음이 괜히 편해진다.


겸손한 사람도 좋다. 자신을 돋보이고 자랑하고 싶은 건 인간의 본성이다. 자기 만족에 큰 의미와 가치를 두는 사람들이 점점 늘고있다. 자기중심적 사고. 자기애가 강한 시대에서 겸손을 배우고 추구하는 일은 쉽지 않아 보인다. 사회적 지위가 높거나 권력이 있는 사람이 겸손하면 더 존경받는 이유도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여야 한다는 말에 공감하기 때문이다. 말과 행동이 가볍고 경거망동하는 사람도 점점 피하고 싶다.


그렇다고 사람을 싫어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사람들을 좋아한다. 서로 다른 거지 틀린 게 아니다. 성격. 성품. 환경의 영향으로 누구나 다른 게 당연하다. 사람들과 화합하고 공감하며 나누는 삶을 사랑한다. 단지 성향이 맞지 않거나 결이 비슷하지 않는 사람들과는 점점 거리를 두게 된다. 예전에는 되도록 맞추려고 했다면 나이가 들면서 '굳이' 라는 생각이 앞선다. 잘 맞는 사람과 만나도 부족한 시간이다.


감사한 건 주변에 내가 좋아하는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 자매들은 모두 긍적적이고 유쾌하고 친구들은 배려심 많고 너그럽다. 20년지기로 만나고 있는 지인들도 대부분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일관성 있고 진중하다. 사람은 크게 변하지 않는데 인복이 많은 편이다.


내 성향도 크게 다르지는 않지만 결점도 많다. 지나치게 급하고 서두르고 마음 먹은 건 바로 해야 속이 시원하고 질질 끄는 건 딱 질색이다. 하지만 운전할 때는 절대 서둘지 않고 양보한다. 바쁠 땐 종종거리다가도 침대에서 하릴없이 보내거나 늘어질 때도 있다. 지나간 일에는 되도록 미련을 갖지 않고 상대방에게 되도록 맞추다가도 단호할 때가 있고

아니다 싶은 일은 정중하게 거절한다.


내 모습이 누군가에겐 안 좋게 보일 수도 있다는 걸 안다. 누구나 장단점이 있고 다르다는 걸 인정하기에 다른 사람들에게 나 역시도 선호하는 모습으로 비춰지기 위해 나름 애쓴다.


산만하고 교만하고 자만하지 않지만 억지로도 가식적으로도 아닌 진솔하고 자연스럽게 말이다. 중요한 건 서로 다른 것을 인정하고 존중하되 간극을 조금씩 좁혀나가면 될 듯하다.


드라마를 보는 내내 답답하기만 했다. 이스라엘 작품이 원작이며 '존경하는 재판장'이란 뜻이다. '유어 아너' 는 여러 나라에서 리메이크가 된 작품으로 화제성이나 아버지를 연기한 두 연기자들의 열연에 큰 호평을 받았다. 존경하는 재판장과는 맞지 않는 행보를 보이는 만큼 제목에는 반어적 뜻이 담겨있다. 물론 아들을 위해서라지만 말이다. 또다른 한 아버지도 마찬가지이다.


10회로 막을 내린 드라마의 끝은 한마디로 말하기 참 복잡했다. 두 아버지의 어긋난 부성이 부른 참극이라고 밖에 말할 수  없었다. 그 와중에 희생된 서로의 아들과 딸이 그저 안타까울 뿐이다. 어쩌면 가장 소중한 자녀들을 희생시킴으로써 평생 마음의 죄책감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고통을 안고 사는 것이 그들의 죄값이란 메세지를 남겼지만 참 허망했다.


아들을 죽인 자를 처벌하려는 아버지와 그 아들의 죄를 은폐하고 지켜내려는 아버지의 한판 승부는 양쪽 모두 너무 큰 피해를 입고  참혹하게 끝이 났다. 평소에 정직하게 살아온 강직한 신념을 가진 송 판사는 억울하게 아내도 잃고 불법을 저지르면서까지 지키려던 아들마저 잃었다.


근본적인 원인을 제공한 우원 그룹의 장남인 큰아들 상혁만이 법의 심판도 누구의 처벌도 받지 않은 채 무고하게 희생당한 피해자들만 남은 걸 보면서 법도 지켜주지 못한다면 과연 누가 약자들을 지켜줄 것인지 화가 났다.


재벌 기업을 등에 업고 죄없는 나약한 여인을 성폭행하고도 무혐의로 풀려나고 한 달 뒤에 자살하게 만든 파렴치한 상혁을 아무도 단죄하지 못했다. 그를 단죄하러 나선 사람이 소중한 엄마를 뺏기고 분노에 찬 아들 호영이었다. 하지만 그의 복수는 먼저 그의 동생으로 향했다. 그리고 다시 그와 마주해 총을 겨누지만 복수는 성공하지 못한다. 엄마의 복수를 위해 그의 동생을 철저한 계획하에 교통사고로 위장해 죽인 결과는 너무 큰 나비효과로 잔혹하게 돌아왔다.


우원 사모님인 지영에 의해 가해자로 오해 받고 가족이란 이유만으로 가스 폭발로 죽은 죄없는 어머니와 어린 딸. 밀양하려다 붑잡혀 죽은 자. 목격자로 한몫 챙기려고 했던 이주민. 증거를 잡기 위해 고군분투하다 싸늘한 주검으로 돌아온 여형사. 결국 복수도 못하고 스러져간 판사의 아들 호영. 사건은 복잡했지만 결과적으론 그 많은 희생에도 두 아버지는 자식을 지켜내지 못했다.


아들을 지키기 위해 증거를 없애고 자신이 죄를 뒤집어 쓰고 청와대에 입성하려는 계획마저 모두 수포로 돌아간 송 판사는 결국 복수를 하려다 총에 맞은 아들을 부둥켜 안고 망연자실하게 우는 것밖에 할 수 있는 일이 아무 것도 없었다.


송판사의 무죄 판결과 여형사의 죽음에 분노하며 자기 목적이 어그러진 여검사가 지영에게 그때 진실만 밝히지 않았다면 호영의 복수는 성공하고 지영에 의해 비참히 죽어가진 않았을까. 그 모습을 옆에서 고스란히 지켜본 딸 은이의 충격은 약을 먹고 자살하는 또다른 비극으로 돌아온다.


사랑하는 오빠를 잃고, 그 눈물을 닦아준 호영이는 오빠를 죽인 사람이고, 사랑하는 호영이 엄마에 의해 죽어가는 걸 본 은이는 고통을 견뎌내기 힘들었을 것이다. 몸도 마음도 유약한 은이였기에 자살을 직감했다. 어른들의 잘못으로 인한 가장 큰 희생양이었다.


송 판사의 아들 호영을 죽인 가해자는 한 두 명이 아니다. 내 아들과 내 가정만 소중하고 남의 아들과 가정은 아무 상관없는 이기적인 모성, 어긋난 부성, 목적을 달성하지 못해 분노한 검사, 사건을 은폐한 아버지까지 모두 호영을 죽인 가해자이다.  


상혁의 죄의 결과는 자기 동생을 죽게 만들고, 동생을 죽인 가해자를 찾아내어 총으로 4명이나 죽이는 범죄를 저지르고, 호영의 목숨마저 잃게 만든다. 하지만 또다시 무죄 판결을 받고 유유히 빠져나갈 때 유전무죄 무전유죄. 권력 앞에서 힘없이 무너지는 법에 씁쓸했다.


조금의 동정도 양심의 가책도 없는 이들을 그저 가족이란 이유만으로 감싸고 있는 권력자 김강헌의 잘못이 가장 크다. 아들을 잘못 키운 죄. 권력으로 모든 일을 단죄하려고 한 죄. 부인의 끔찍한 범죄까지 덮어준 죄. 아무 잘못도 없는 무고한 자들을 희생시킨 죄. 법조차 자신의 발 아래 굴복시킨 죄 등 셀 수 없이 많다.


가장 힘없고 약하며 사랑하는 딸의 자살로 과연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며 평생 후회하며 살게 될까. 아니라고 본다.

자식을 사랑한다면 잘못한 일은 가르쳐서 바른 인간이 되게 만들어야 좋은 부모이다. 흉악한 아들을 감싼 결과는 결국  사회악으로 돌아온다.


아들을 떠나보내고 김강헌을 다시 만난 송판사는

"우리가 우리 죄를 뉘우치게 만들 가장 확실한 방법"

이라며 자조섞인 말을 되뇌었다. 다시 돌이킨다면 과연 다른 선택을 했을지 궁금하다. 아마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지킬 것이 많은 사람일수록 잃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크다. 하지만 그 선택이 정직하고 옳은 방향으로 가야 하고 최소한 남에게 피해는 주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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