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제는 처음 가보는 곳이다. 제주를 비롯해 국내도 비교적 가본 곳이 많지만 거제와 외도는 처음이었다. 남편 환갑으로 친구 세 부부와 6월에 미리 보홀 여행을 다녀왔고 얼마 전 남편 생일을 맞아 가족들과 조촐히 생일을 보내고 기념으로 거제에 다녀왔다. 이번 여행은 내가 남편에게 준 환갑 선물이다.
"여행의 시작은 어디든 좋으니 한번 떠나볼 것. 그곳에서 마주한 풍경을 빈틈없이 사랑해 볼 것. 내 마음이 어디에서 뜨거워졌는지 생각해 볼 것. 추억을 마음에 싣고 이제는 나의 삶을 여행해 볼 것"
이라는 말로 여행의 의미를 더한 작가님이 있다.
우리 부부도 여행을 참 좋아한다. 어디든 훌훌 떠나서 걷고 보고 쉬는 여유가 너무 좋다. 제주 두주살이도 동유럽. 터키. 이태리. 싱가포르. 동남아 등 바쁠 때도 여행을 위해 미리 수업을 조정해 보충 하고, 부담스럽지 않게 여기저기 모으는 여행비도 만만치 않을 만큼 여행을 좋아한다.
봄 가을은 여행하기 딱 좋은 계절이다. 긴 겨울이 지나고 파릇파릇한 생명들이 돋을 때면 절로 생동감이 느껴진다. 거기에 활짝 핀 봄꽃들을 만날 때면 살아 숨쉬고 있음에 가슴이 벅차온다. 마주하는 산. 바다. 숲. 강. 바람 등 자연이 주는 선물에 활력을 얻는 계절이 봄이다.
가을은 그야말로 수채화가 된 자연을 만난다. 화려하게 물든 나무와 숲은 긴 겨울을 보내기 전 절정을 선사한다. 살랑거리며 부는 바람은 신선하고 더 파랗고 높아진 가을 하늘은 반갑다. 이 시기를 놓칠세라 어디든 떠나 아쉽게 흘러가는 시간을 붙들며 쉼을 얻는 것이 가을 여행의 묘미이다.
이번엔 역장 투어라는 코레일 여행 상품을 예약해서 다녀왔다. 남편은 3박4일 정도로 차를 갖고 여기저기 돌고 싶어했지만 거제까지 너무 멀어 피곤하다는 핑계로 편하게 ktx를 타고 가자고 제안했다.
오래 전에 젊은이들에게 주어진 내일로 패스처럼 일반인에겐 다소니 패스라는 기차 자유 여행권이 있을 때 2박3일로 순천에 가서 순천만에 들렀다가 다음 날 여수로 가서 엑스포와 오동도에 다녀온 이후로 남편과 기차 여행은 두 번째이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 이제 막 더위를 물리치고 다가온 계절에 대한 설레임, 커피와 간단한 간식을 먹으며 나누는 대화, 시시각각 변하는 모습들에 지루한 줄 몰랐다. 남편도 운전 안 하니 편하다며 꽤 만족한 듯했다.
거제는 역사가 많은 곳이다.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이 첫 승리를 이끈 옥포해전이 일어난 곳, 1.4후퇴 때 흥남에서 만 사천 명의 피난민이 도착한 곳, 포로 수용소가 있던 곳, 조선소로 유명한 곳 등의 수식어가 많은 곳으로 제주에 이어 두 번째로 큰 섬이라니 기대가 컸다.
새벽 6시 반에 출발해 남원에 도착하니 버스가 대기하고 있었다. 거제로 가기 전에 잠깐 들른 함양 지안재는 오도재 아래에 있는 굽이진 S자 도로로 아름다운 길 100선에 들어가는 곳이다. S자 도로가 끝나는 전망대에서 내려다보니 독특했다.
거제로 가서 구조라항에서 배를 타고 해금강으로 가니 넘실거리는 파도 한 가운데 우뚝 서 있는 커다란 바위는 그야말로 비경이었다. 한려해상국립공원의 명승지로 지정되어 사자 바위, 촛대 바위, 십자 동굴 세 개의 바위가 맞닿아 있어 바다의 금강산이라고 불릴 만큼 화려한 절경에 탄성이 절로 나왔다. 옥색 바다가 너무 아름답지만 너무 쎈 파도에 잠시도 머물지 못하고 배를 돌린다고 해서 아쉬운 마음에 잔뜩 눈에만 담고갔다.
외도 보타니아는 개인 소유의 섬으로 40년을 가꾼 정성이 돋보인 아름다운 정원이었다. 열대 식물과 나무, 정원이 이국적이라서 마치 외국에 온 느낌이었다. 앞으로는 산, 뒤로는 바다가 조화를 이루어 두 시간 산책길은 그야말로 힐링의 연속이었다.
점심으로 먹은 연잎밥도 저녁으로 먹은 광어와 도다리, 물회 등도 모두 만족한 식사였다. 숙소인 거제 라마다 호텔은 넓고 깨끗해서 편안한 첫날 여행을 마쳤다.
둘째 날은 매생이 굴국밥으로 아침을 든든히 먹고 몽돌 해수욕장으로 향했다. 아침햇살을 받아 윤슬이 반짝거리는 바다와 동글동글하고 검은 몽돌로 가득한 해변이 마치 한폭의 그림 같았다.
도장포에 위치한 신선대는 세 신선이 놀던 곳이라고 불릴 만큼 멋진 해안 경관을 자랑한다. 해금강이 바라보이는 푸른 바다는 가슴을 탁 트이게 했다. 갓처럼 생긴 바위와 크고 작은 바위 단층이 조화를 이루고 기암괴석 아래로 흰 파도가 넘실거렸다. 청량한 바람을 맞으며 자연이 선사한 푸른 바다와 수평선을 바라보며 한참을 거니는 동안 행복이 이런 거구나 싶었다.
맞은 편에는 바람의 언덕이 있다. 상징인 풍차는 2009년에 지어졌다고 한다. 바람이 부는 언덕위에 서서 바라본 바다와 산책로는 마치 제주의 올레길과 소설 폭풍의 언덕을 연상시켰다.아직은 쌀쌀하기 보단 적당히 상쾌한 바람에 가슴까지 시원해졌다. 마을 아래로 내려갔다가 올라가는 길은 도자기로 그려진 벽화들과 아기자게 꾸며진 집들이 많아 바닷가 마을이라기 보단 마치 잘 조성된 타운 하우스 같았다.
점심을 먹은 후 케이블카를 타고 전망대로 올랐다. 바다 위에 우뚝우뚝 서 있는 다도해는 바다 위의 산처럼 특출한 경관을 자아냈다. 오른쪽으로 가면 노자산 정상으로 가는 숲길이 있어 가볍게 산책로를 걷고 내려와서 거제의 아쉬움을 뒤고 하고 다시 남원으로 향했다.
마지막 코스인 남원의 신생마을은 핑크뮬리와 코스모스, 백일홍, 갈대까지 한꺼번에 볼 수 있게 잘 가꾸어져 있었다. 가을꽃을 한번에 감상하니 얼굴도 마음도 꽃이 된 것처럼 화사해졌다.
1박2일이지만 꽉찬 일정에 2박3일 같은 코스와 맛집까지 처음 가본 역장 투어가 너무 만족스러웠다. 운전이 부담스러운 여자 동창들의 모임, 동호회 어르신들, 우리 같은 부부나 지인들 등 다양한 팀들이 모여 가이드의 인솔에 따라 너무 편하게 다녀온 여행이었다.
매번 여행 때마다 차량, 숙소, 장소, 일정 등을 짜느라 고심할 필요도 없고 특히 남쪽 멀리에 있는 여행지에 가고 싶을 때 이용하면 좋을 듯하다. 가볍게 당일 여행도 계획해 봐야겠다.
처음 가본 거제도, 꽤 큰 도시란 사실에 놀라고 해금강과 외도, 신선대와 바람의 언덕이 기대보다 더 아름다운 풍경에 또한번 놀랐다. 가을을 만끽하기 좋은 날씨까지 오래 기억에 남을 흡족한 가을 여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