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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의식의 흐름 Feb 16. 2024

엄마와 딸(3)

엄마와 딸 가장 멀고도 가까운 그 이름에 대해서..

나는 그즈음 첫째를 출산했고 엄마는 시장 안에 있는 자그마한 국숫집에서 일을 하기 시작했다고 했다.

빚을 갚아 나가야 했기 때문에 곧바로 쉴 틈 없이 일하셔야 했다. 주부로써 평생 살림만 했던 터라 엄마가 일 할 수 있는 곳도 한정적이었다

나는 휴가 때 시간을 내어 신랑과 아이를 데리고 고향에 계시는 엄마에게 갔다.

남들은 친정에 가면 친정부모님이 아이도 봐주시고 편히 호사를 누린다고 이야기들 하는데 그런 것까진 바라지 않았어도 갈 때마다 엄마의 힘없이 지쳐버린 초라한 모습을 바라보는 것이 너무 마음 아팠다.

한 번은 일을 하다 뜨거운 물에 손이 데어 꽤 깊게 화상을 입고도 제대로 치료받지 않고 대충 처치해 놓은 것을 보고 너무 속상했다. 신랑은 밤중에 얼른 뛰어나가 화상연고와 화상밴드를 사 왔다.

"장모님, 이거 이렇게 놔두시면 큰일 나요~!! 치료 잘하셔야 흉 안 지지요...! 우리 장모님 너무 많이 고생하시나 보네 아휴 참..." 신랑도 속상한 듯 미간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사위대접 제대로 받지도 못하는 친정에 그래도 언제나 살갑고 진심인 신랑에게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마지막 남은 유일한 거처인 집까지 날려버린 상황이셨기에 나는 신랑과 함께 엄마의 거처에 대해서 고민했다. 사실 우리가 먹고사는 것도 막막한 상황이었지만 엄마의 거처까지 고민해야 하는 것이 여간 부담스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딸인 나보다 더 적극적으로 고민해 주는 신랑 덕분에 나는 심적으로 큰 위로가 되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엄마는 고생고생해서 어렵게 빚을 다 청산하자마자 장남인 오빠의 sos로 맞벌이하는 오빠네 부부 집으로 들어갔고, 힘겨운 손자 독박육아를 시작했다. 손자는 너무 귀여웠겠으나 연세는 드셨지 아기를 안았다 내렸다 몸은 더 힘들었을 테고 잠을 제대로 못 자니 컨디션은 당연히 엉망이 되셨다. 손자육아 2년 만에 안 아프던 허리까지 결국 고장 났다. 우리 집에 가끔 놀러 오시면 항상 침대에 누워 부족한 잠을 충당하셨고 약을 달고 사는 엄마를 위해 삼시 세끼를 나름 빼지 않고 열심히 차려댔다.그럴 때면 내가 친정엄마가 된 기분이었다. 우리 집이 오빠 위주로 돌아가는 집인 줄은 진즉에 알고 있었지만 오빠의 부름에 기꺼이 응답하고 고향을 정리하고 올라온 엄마의 그 아들 사랑도 아들 가진 내가 뭔지 조금은 알지만... 맘고생 몸고생으로 범벅된 엄마의 노후에 짐을 하나 더 안겨준 오빠가 야속하기도 차라리 잘됐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내 입술에는 '나는 셋도 누구의 도움 없이 혼자서 길렀는데..' 하는 한숨 섞인 푸념이 흘러나온다. 엄마를 끝까지 책임질 생각도 아니면서 자기 필요에 의해 데려왔다가 병들고 쓸모가 없어지면 돌보고 싶어 하지 않겠지. 특별히 나쁜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자식들이란 그런 이기적인 존재이니까…

나도 예외일리는 없다. 평생 아르바이트 한번 해 본 적 없는 오빠에게 모든 것을 맞추고 희생하며 살아온 부모의 노년을 맨땅에서부터 힘겹게 혼자 살아내 온 내가 떠안고 싶지는 않으니까..


예전에 이모가 말씀하셨다.

"네가 부모 복이 없는 걸 어쩌겠니… 그래도 김서방 착하고 성실하니 좋은 남편 만난 걸로 만족해야지."

그래... 좋은 남편을 만난 건 나에게 참 큰 행운이었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남편과도 결혼 초반에는 다툴 때가 많았다. 그럴 때마다 '나는 엄마처럼 살고 싶지 않아. 나는 이 가정을 정말 아름답게 지켜나가고 싶어. 꼭 그렇게 할 거야...!' 하며 스스로 다짐했다.

나는 엄마의 삶을 딸이 답습한다는 말이 가장 두렵고 듣기 싫었다. 보란 듯이 그 당연스레 여겨져 온 그 법칙을 내가 깨어보리라 결심하고 또 결심해 왔다.


엄마라는 그 이름은 참 나에게는 아픔이다. 누군가는 엄마를 생각하면 마음이 따뜻해지고 나의 어떤 부족함도 용납해 줄 것 같은 하나님 같은 존재라고도 이야기하지만 나에게는 그렇지만은 않다.

엄마는 특별히 큰 병이 있지는 않았지만 화병 때문이었는지 항상 아프고 피곤해했다. 그런 엄마가 짠하게 느껴지면서도 화가 나기도 한다. 나에게 엄마란 그런 존재.

딸은 엄마의 감정과 가장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엄마의 모습에서 내 모습을 보았다가 엄마는 딸을 본인처럼 느꼈다가 하며 이성적이지도 못하고, 배려하지도 못하는… 연민과 원망이 그 어디쯤의 정체 모를 복잡한 감정이 뒤엉켜 상대방을 향해 상처 주는 말을 쏟아내기도 한다. 엄마를 가장 잘 이해하는 것이 딸이기도 하지만 엄마가 가장 이해되지 않기도 하는... 한마디로 정의하기는 참으로 어려운 그 이름... 엄마.

엄마가 하늘나라에 가실 그날 아마도 나는 많이 울고 후회하기도 하겠지, 그러니 내 곁에 살아계실 때 잘해드려야지... 하면서도 여전히 엄마와 통화하며 또 싸우고 만다. 나와 엄마는 늘 끝이 보이지 않는 팽팽한 줄과 같은 사이... 감정의 조율이 필요한 현악기처럼 섬세하고 예민한 그런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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