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무월 Sep 11. 2024

노인을 위한 세상은 없다

죽기 싫으면 일해야 하는 세상

  젊을 적 편안하고 걱정 없는 노후를 꿈꾸며 끊임없이 노동한다. 자신의 몸값을 높이고 내 노동력을 더 비싸게 쳐주는 회사로 이직하고. 그렇게 열심히 번 돈에서 국민연금에서 가장 먼저 빠지고, 저축과 투자로 돈을 한 번 더 빼고, 주거비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대출을 받아 내 집 마련까지 한 후 다시 대출이자를 갚으며 원금을 갚기 위해 노동을 한다.

  하지만 대부분 젊은 시절부터 글을 쓰는 2024년 기준 정년인 59세까지 일을 하더라도 투자에서 성공하거나 부동산, 사업, 투자로 인한 배당 이자 등이 없다면 연금과 저축만으론 자연사까지 이전에 윤택한 삶을 유지하기 어렵다.

  믿을 구석을 만들어 놓았더라도 한 번쯤은 평생을 걸쳐 다져놓은 자산이 붕괴 혹은 괴멸에 가깝게 무너질 때는 오기 마련이다. 예상치 못했던 질병이나 투자의 위기, 살고 있던 지역 전체에 퍼진 재난 등. 우리가 살아갈 현실은 언제나 불확실하고 어디서든 재앙은 준비되지 않았을 때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찾아오기 마련이다.




  노년을 보내다가 어떤 식으로든 맞이한 경제적 위기 상황에 가장 의지하기 좋은 건 자식이다. 어느덧 훌쩍 자라 제 앞가림을 하며 살아가고 있는 자식쯤 되면 크게 잘못한 게 아닌 이상 자신의 부모가 그간 스스로를 키우기 위해 얼마나 많은 돈과, 그보다 압도적으로 큰 노력을 기울였는지 이미 깨닫기 마련이다. 굳이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아도 이미 도움을 받을 명분이 있는 대상인 셈이다. 게다가 만일의 경우 자식들의 도움이 끊겨버린다면 수입원도 변변치 않은 마당에 당장 남은 자산이 곧 남은 수명이 되어버린다. 자식의 도움이 있더라도, 노인이 아니더라도 이건 마찬가지겠지만 의지할 수 있는 대상은 물론 자기 자신마저 의지할 수 없는 때엔 돈이 곧 수명이라는 게 잔인하고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과거에는 한 쌍의 부모 아래에 정말 많은 자식이 있었다. 2명만 낳아도 잘 낳은 축에 속하는 지금 세상엔 상상도 못 할 정도로 4~6남매는 기본에 그 이상도 심심치 않게 보였을 정도다. 그런 상황이니 자식들이 매달 버는 돈에 조금씩만 모아도 노년에 필요한 생활비를 대부분 충당할 수 있었다. 자식이 많았으니 부모 두 명의 생활비 부담은 쪼개져서 훨씬 가볍게 느껴졌고 이런 자식들의 도움과 부모 자신이 젊을 적 저축하고 투자한 자산의 돈을 모으면 일을 하지 않고도 돈에 대한 큰 부담 없이 여생을 즐기고 자식에게 물려줄 자산까지 남겨놓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일자리 문제, 과거와 달라진 소득 증가율과 금리, 내 집 하나 구하기 힘든 부동산 가격 등 현실적인 문제들과 결혼과 자녀에 대한 가치관 변화, 삶에서 반드시 챙겨야 하는 것들의 우선순위 등 개인들의 형이상학적, 그리고 문화적 가치까지 바뀌며 출생아 수는 줄어들고 그로 인해 국가의 존속 문제부터 개인으로써 삶의 방식까지 모두 뒤바뀌어 버렸다.


  자기 노동력이 사라질 때 이를 대체할 자식과 후손은 턱없이 모자라졌고 그 덕분에 젊은 시절의 생계 부담은 낮아졌으나 노후에 은퇴하고 열심히 노동한 삶의 보상으로 여유롭게 삶을 즐기기는커녕 죽을 때까지 돈을 벌며 노동해야 하는 삶이 되었다. 아무리 체력이 떨어지고, 관절이 상하고, 눈이 침침해지더라도 말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