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언어 중에서

by 법칙전달자

신의 언어 중에서


모든, 조금이라도 동일하지 않은 면이 있는 대상을 나타내는 단어가 각기 따로 있다면 어휘의 수는 무한이 될 것입니다. 인간이 '언어'라고 칭하는 것들도 그러합니다. 창조주는 말씀(Word)으로 만물을 창조하였다고도 되어 있는데 (시 33:6; 창 1:3) 말(word)은 여러 의미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으며 각기 다른 단어가 사용되어야 적합하지만 인간의 언어 능력의 한계를 고려하여 한정된 어휘 내에서 의미를 전달하다 보니 하나의 어휘로 다양한 의미를 나타내는 방법으로 사용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의식이 복잡해지고 지식이 증가함에 따라 용어의 필요성이 생겨 기존의 어휘만으로는 많은 양으로 나타내야 할 것들을 하나의 어휘가 나타내게 할 필요가 있었을 것입니다. 밀집도의 수준이 높은 어휘들이 많아지고 그런 수준의 어휘로 만들어진 문장들은 또 하나의 어휘로 표현되어 밀집도가 더 높은 어휘가 생기고 이런 과정이 반복되다 보면 하나의 용어를 풀이하기 위해 하나의 책이 필요한 경우가 생길 수 있습니다. 명사(名辭)와 빈사(賓辭) 모두에 그러한 것이죠.


질량은 같은데 그 안에 많은 영양분이 밀집되어 있는 음식과 같다고 할 수 있죠. 젖, 미음, 죽, 밥...... 이론적으로 1g 안에 얼마나 많은 칼로리를 밀집시킬 수 있는 알약을 만들 수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히브리서 5장 11~14절에는 다음과 같은 말씀이 있습니다.

그에 관해서는 우리가 할 말이 많지만, 여러분이 듣는 일에 둔해졌기 때문에 설명하기가 어렵습니다. 지금쯤은 여러분이 가르치는 사람이 되었어야 하는데, 하느님의 신성한 선언에 관한 초보적인 것들을 누군가에게 처음부터 다시 배울 필요가 있습니다. 여러분은 단단한 음식이 아니라 다시 젖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계속 젖을 먹는 사람은 누구나 의의 말씀에 익숙하지 않습니다. 그는 어린아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단단한 음식은 장성한 사람들 곧 분별력을 사용하여 훈련함으로 옳고 그른 것을 구별할 줄 아는 이들의 것입니다.


장성된 사람들이나 밀집도가 높은 영적 양식을 섭취할 수 있다고 하고 있죠.


이론적으로 언어의 밀집도의 한계는 무한합니다. 방정식도 1차 방정식, 2차 방정식, 3차 방정식...... 과 같이 무한한 것이나 마찬가지이죠. 함수도 그러하죠. 함수를 적분하면 한 차원 높은 함수가 되죠. 적분에서의 적(積)이란 쌓아 밀집시킨다는 의미가 있죠.


그런데 현실적으로는 인간의 수명이 한계가 있어서 가장 높은 밀집도의 어휘로 구사된 논문 같은 것도 5차 함수정도의 수준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일상적인 대화에서는 높아야 3차 함수정도의 수준이죠.


그러나 인간의 수명이 무한하며 지식이 계속 발전한다고 할 때 계속 새로운 용어가 생기면서 그 차원은 계속 높아질 것입니다.


지금 인간은 언어의 밀집도가 7차원 정도만 되더라도 이해 불가이지만 지식이 누적될수록 그 차원은 필연적으로 높아지게 되므로 그런 어휘로 표현된 사상은 지금의 인간이 보면 신의 언어와 같이 되는 것이죠.


우주와 그에 속한 만물은 인간을 위해 만들어졌고 그 이전에 영적 존재들이 있었다면 그들도 어떤 언어를 사용하하고 있었겠죠. 흥미롭게도 성서에는 '천사들의 언어'가 언급되어 있죠. (고전 13:1) 인간의 말로 표현이 안 되는 언어에 대해서도요.(고후 12:4) 초고대문명이라고 추정되는 유적에서 발견되는 어떤 언어는 해독이 불가한 것이 있다고 합니다.


에덴어는 창조주가 직접 만들어 준 것이죠. 그러나 언어는 고정적인 것이 아닙니다.


끊임없이 여러 가지 이유로 발전하고 확장되게 되어 있죠. 인간의 의식이 장성되는 정도에 따라 언어도 질적으로 양적으로 발전하게 되어 있죠. 어휘의 수도 지금은 수십만 정도의 원시적인 정도이지만 수억, 수조를 향하여 계속 늘어나겠죠.


언사가 만사라는 말도 있죠. 언어는 말 그 자체 이상의 여러 의미가 있습니다. 인간이 언어를 한다는 것에는 그 자체에 영원성이 내재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만물에 깃들어 있는 지혜는 신의 언어의 표현이라고 하기도 합니다. 세포 하나에도 잔뜩 반영되어 있죠.


인간의 감정의 영역도 무한한데 이를 정확히 표현하는 어휘의 양은 태부족이죠. 감정 자체를 신의 언어라고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신비의 영역이죠.


말하고자 하는 것은 죽지 않고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잠깐 살다 죽는 것이 당연하며 자연의 섭리라고 언어를 잘못 사용하는 경우가 지배적이어서 해 보는 말입니다. 창조에 대해서뿐 아니라 언어 자체에 대한 모독인 것입니다. 신비인 것에 대해서 뭔가 아는 것처럼 주장하는 주제넘음이기도 한 것이죠. 그는 곧 언어를 구사하지 못하게 됩니다. 영원히요.


언어를 그 존재 목적에 따라 사랑과 진리를 표현하는 일에 사용해야 합니다. 그래야 언어를 구사하는 그 신비스럽고 과분하기 짝이 없는 축복을 영원히 누릴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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