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사상학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법칙전달자 Jun 29. 2024

본질과 현상

본질과 현상


체스에서의 룩과 장기에서의 차(車)는 그 기물의 모양과 명칭은 달라도 즉 현상은 현저히 달라도 본질은 정확히 같습니다. 직진한다는 것이죠. 장기에서의 마와 체스에서의 나이트는 좀 다른데 멱이라는 것이 있고 없고의 차이가 있습니다. 장기에서의 마는 이동하지 못하게 막는 위치가 있지만 체스는 그러한 위치가 없습니다.


장기에서의 마(馬)라는 글자는 한(漢)은 붉은색 정자로, 초楚(는) 파란색 흘림체로 되어 있지만 그 본질은 정확히 같죠. 기물의 재료가 나무이든 플라스틱이든 그러한 현상적인 것은 본질과는 전혀 상관없죠. 


장기는 교차점에 기물을 놓고 체스는 칸에 두지만 그것은 본질에 영향을 주는 것은 아니지요. 


'본질과 현상'이라는 표현도 한국어로 표현된 현상적인 것이라 할 수 있죠. 본질은 그것의 보이지 않는 의미 혹은 개념이죠. 


장기나 바둑과 같은 게임의 본질적인 것은 머릿속에 보이지 않게 있는 것이며 그 현상적인 것은 우주 가운데 하나도 없을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만들지 않는다면요. 그 본질은 영원한 것이죠. 본질이 정신에 있는 한 재료가 있다면 만들어서 게임을 즐길 수 있는 것이죠. 신적인 존재가 있다면 바둑판이나 알이 없이 k7, e5처럼 착점위치를 주고받으며 말로 둘 수 있죠. 심지어 말이라는 현상적인 것도 필요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텔레파시로 주고받으면 되니까요. 


한국어에서 '은, 는'은 본질은 갖지만 현상만 다르죠. '이, 가'도 그러한데 '은, 는'과 '이, 가'는 본질이 다르게 쓰일 경우가 있죠. "내가 바보다."와 "나는 바보다."는 그 의미의 차이 즉 본질의 차이가 있는 것이죠. 


본질은 보이지 않은 영원한 것이지만 현상적인 것은 변할 수밖에 없습니다. 본질을 소유한 사람은 현상적인 것이 필요 없고 오히려 거추장스러울 수 있죠. 머리에 AI급 체스 실력이 있는 사람에게는 체스라는 기물이 필요도 없고 관심도 없을 수 있죠. 일파고라는 AI도 바둑계를 은퇴한 상태라 본질적으로도 최고의 경지이지만 현상적으로는 지금은 도무지 나타나는 바가 없죠. 


뭐든 본질이 온전히 파악되면 현상적인 것은 가치가 없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본질적 파악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현상적인데 집착하게 되고 메이게 되죠. 


성서의 관련 표현들 몇 가지를 옮겨봅니다. 


당신의 말씀의 본질은 진리입니다. —시 119:160. 


그러나 너희가 그때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여 본질상 하나님이 아닌 자들에게 종노릇 하였더니 —갈라디아서 1:1-6:18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에베소서 1:1-6:24 


“[그는] 보이지 않는 분을 보고 있는 것처럼 계속 확고하게 행하였습니다.”—히브리 11:27.


환난은 순간적이고 가벼운 것이지만, 그것은 우리에게 점점 더 커져 가는 영원한 영광을 가져다줍니다. 우리는 보이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을 계속 바라보고 있습니다. 보이는 것은 일시적이지만,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하기 때문입니다. —고린도 후서 1:1-13:14


창조주의 말씀 자체는 현상적으로는 여러 언어로 여러 변역으로 표현되지만 그 본질은 동일한 진리이지요.


 '본질'이라는 표현 자체와 이글도 한국어로 표현된 현상적인 것이지만 그에 내포된 본질은 영속적이고 보편적인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인간에게는 본질을 파악하는 통찰력과 가치 있는 본질에 대한 추구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런 사람들은 모든 얽매임으로부터 영원한 자유를 누릴 수 있습니다. —요한 8:32.


매거진의 이전글 어떤 주제넘은 초월적인 생각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