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
사람은 본능적으로 무의식적으로 호의를 얻고 싶어 하고 인정, 존경, 사랑을 받고 싶어하죠. 주목을 받고 싶어 하고 인기를 얻으려 하죠.
외면, 무시, 경멸, 조롱, 질책, 비난, 지탄, 미움을 받기 싫어하죠.
그런데 실제의 모습이나 행동은 전자에 해당되지 않는 것이죠. 행동은 이득이나 쾌락을 위해 부정, 부도덕, 불법적인 일들을 서슴없이 하는 것이죠. 알려지게 되면 후자에 언급된 대상이 되는 것이죠. 그것은 원하는 바가 아니죠. 거의 자동적으로 거짓말이 나오는 것입니다. 거의 모든 정치인들이 그렇게 하고 있죠. 거의 모든 사람들도 그러하죠.
말이나 글만 그런 것이 아니죠. 행동도 그러한 것입니다. 결함을 가리기 위해서 어떻게든 위장을 하죠. 화장을 하고 성형을 하여 진실된 모습을 감추죠. 드러나면 실망시키니까요. 행동도 위선적이거나 가식적으로 하는 것입니다. 남에 대해서 뿐만 아니라 자기기만도 하는 것이죠.
어쩔 수 없는 것입니까?
동기 자체는 비난받지 않을 만한 것도 많을 것입니다. "너 무슨 걱정거리가 있니?"하고 물었을 때 정색을 하면서 즉각적으로 아니라고 거짓말을 할 때는 상대에게 걱정을 끼치지 않겠다는 동기에서죠.
성서에는 90세 된 사라가 천사에게 아이를 가질 것이라는 얘기를 들었을 때 웃었는데 천사가 하느님의 말씀인데 왜 웃느냐는 식으로 질책했을 때 정색을 하면서 웃지 않았다고 부인했죠. (창 18:15)
누구에게 구체적으로 피해를 끼치는 거짓마ᇐ은 전혀 아니지만 사형을 받은 심각성을 지닌 경우도 있죠. 사도시대에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가 그러하였습니다. 그들은 강요받은 것도 아닌데 자신의 땅을 팔아서 헌금을 하였는데 그중 반을 헌금하면서 전부를 헌금하는 것처럼 했죠. 그 자리에서 죽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그럴 만했는데 그런 거짓말을 하는 것으로 보아서 마음에 하느님에 대한 진정한 믿음은 없었고 다만 그리스도인 조직에서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으려는 욕망으로 크게 지배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그냥 땅 판 값의 반이라고 했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었을 텐데 자신들이 그렇게 통크고 후한 기부정신이 있음을 과시하고 싶었던 것이죠.(사도 5:1-11)
행동에 있어서는 다윗은 도망 다니면서 불레셋의 한 족장에게 몸을 의탁하였는데 생명을 잃을 위험을 피하고자 침을 질질 흘리면 미친 사람인 척한 적이 있습니다. (삼상 21:13)
가장 심각한 것은 누구를 의도적으로 해롭게 하거나 혹은 해을 끼칠 것이 뻔한데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이득을 위하여 하는 거짓이죠.
일상적으로 정치인들이 하는 행위이죠.
사람들은 거짓말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취약성을 지니고 있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죠. 현실이나 진실이 그만큼 열악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의 정신과 마음에 실제 사랑받을 만한 아름다음이 없는 것이죠. 외모는 화장이나 성형으로 가리지만 그런 것들은 말이나 행동으로 가리는 것이죠.
물건도 고급스럽게 보이게 광고나 포장에 심혈을 기울이죠. 진실에 상응하는 값으로는 결코 만족이 안되니까요.
세상이나 인간들의 참된 진실은 열악하고 비루하기 짝이 없어 거짓의 세상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더구나 세상의 배후의 영은 거짓의 아비로 불리죠.(요한 8:44.)
거짓된 모든 사람들은 그의 자녀인 것입니다.
내면의 참, 착함, 아름다움을 진정으로 추구하는 사람들은 타인의 호의를 얻기 위해 의도적으로 위장하는 일을 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하는 것은 역겨운 것이죠. 전혀 그럴 필요를 느끼지 않는 것입니다. 이는 존경이나 예의가 없는 것과는 전혀 다릅니다. 인간의 눈을 비합리적으로 의식하지 않는다는 것이죠. 그들이 의식하는 것은 창조주의 눈입니다. 그들의 보이지 않는 정신과 마음 가운데 드러나면 부끄럽거나 어리석다고 비난받을 만한 것들이 없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올바른 안목을 가진 동료인간에게 있는 그대로의 상태로 존경과 사랑을 자연스럽게 받게 됩니다. 말이나 물질로 꾸며서 그렇게 되고자 하는 사람들과는 정반대이죠.
그런 식으로 거짓에서 벗어난 사람들만 살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