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납법
추리라는 것은 원칙을 근거로 해야 합니다. 이미 확립된 진리에 기초해야 하는 것이죠. 경험은 모두 합해도 원칙 하나만 못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원칙을 모를 때는 부득이하게 경험에 의존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만의 경험만으로도 관련 진리를 확정할 수 있는 경우가 있고 백의 경험을 했다 하더라도 그렇지 못한 경우가 있습니다.
우주인이 하나의 대상을 보고 그것이 인간이라고 할 때 인간이라는 것은 다리가 둘이구나 하는 판단을 내리는 경우 그것은 참이 됩니다. 뭔가가 인간이라고 할 때는 보지도 않고 그 존재는 다리가 둘이겠구나 하고 판단해도 틀리지 않죠. 정상적인 신체를 지닌 인간이라는 전제에서요.
그런데 무수한 사람의 죽음을 경험했다 해도 지금 존재하는 모든 사람이 반드시 죽을 것이라고 결론 내리는 것은 오류가 될 수 있습니다.
어떤 경우인지를 분별 못하여 속단을 하면 그릇된 결론에 이를 수 있고 이는 그릇된 선택이나 행동을 하게 할 수 있죠.
사람을 대할 때는 무조건적으로 존중과 사랑으로 대해야 하는 것이죠.
이런 원칙이 행동지침으로 확립되지 않은 사람은 사람을 접해 보고 즉 경험해 보고 그에 따른 판단에 따라 사람을 대하게 될 수 있습니다.
존대를 하거나 하대를 할 수 있고 경우에 따라 적대관계를 형성하게 되고 극단적으로는 살인을 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경험은 사람마다 다르고 같은 경험에 대해서도 그 추리와 판단은 주관적이고 자의적이어서 동일한 경험을 하고서도 그것에 대한 태도는 극단적으로 다를 수 있습니다.
또 경험들은 원칙과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태반인 것입니다. 원칙을 헷갈리게 하는 경험도 많은 것이죠. 잘 못 영향을 받으면 수렁에 빠질 수 있습니다.
현혹시키는 현상의 경험에 대해 단호하게 일축하는 대응력이 필요합니다. 원칙에 확고하게 고착하려는 결의가 갖추어져 있어야 하는 것이죠.
인간은 상황에 반응하여 영향을 받는 불안정한 상태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원칙으로 상황에 대응해야 합니다.
그러니 원칙을 알고 있어야 하죠. 인간이 알 수 없는 것입니다. 인간이 이점에 있어 주제넘어 그 필연적인 파멸에 이르지 않으려면 말씀에서 원칙을 배워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