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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사상학

사용

by 법칙전달자

사용


법규들이 불편을 주는 것은 감수해야 합니다. 신호등에 따라 가다가 멈추어야 하지만 상해나 사망을 피할 수 있죠.


법칙이란 보호하기 위한 목적으로 있기 때문에 준수해야 합니다. 또 그것을 알지 못하면 지킬 수 없습니다. 빨간 신호등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아야 하는 것이죠.


사용의 법칙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어떻게 사용하라고 주어진 것을 사용하지 않거나 오남용을 하면 탈이 난다는 것입니다. 선행을 할 수 있는데 하지 않으면 죄라는 것입니다.


발과 다리 역시 용도가 있는데 걷지 않고 방에만 틀어박혀 있으면 결국은 못쓰게 됩니다. 그런 극단적인 경우는 거의 발생하지 않죠.


양심에 화인 맞았다는 표현이 있습니다. (디모데 전 4:2) 양심이 못쓰게 된 것이죠.


인간에게 원래 있는 기관인데 사용하지 않다 보니 그렇게 된 것입니다.


사람들은 지신에게 이득이 되거나 쾌락을 가져다주면 그것의 도덕성이나 불법성 같은 것은 민감하게 고려하지 않습니다. 금전적으로 성적으로 부도덕하거나 범죄적인 행위를 서슴지 않죠. 심지어 자신이 능력이 있어 그렇게 하는 것처럼 자랑하기도 합니다. 수치를 영광으로 여기는 것이죠.


나중에라도 그것이 드러나 감당하기 힘든 수치나 고통이 예상되면 극단적 선택을 하기도 합니다.


이 경우에라도 양심기능이 제대로 작동을 한다면 기꺼이 잘못을 시인하고 응당의 처벌을 받고자 해야 하죠. 그러고 나서도 두고두고 괴로울 것입니다.


벌보다 죄를 무서워 해야 하는데 대개 그렇지 않습니다. 양심이 있는 사람은 죄를 무서워하고 벌은 기꺼이 받고자 하죠. 그것이 법칙을 준수하는 것입니다.


죄라는 것은 표준에 빗나가거나 미달하는 것이죠. 그런데 사람에게는 그 표준이라는 것 자체가 없습니다. 있다면 이득이 표준이고 쾌락이 표준이죠.


신호등의 불빛에 대한 지식이 없어 무시하고 계속 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빨리 가는 것만이 목적인 것이죠. 큰 혼란과 고통을 발생시킬 수밖에 없죠.


세상이 그렇죠. 부당하게 이득을 취하고 쌍욕을 해도 죄가 아니라고 주장하면서 극구 벌을 피하려고 하죠. 대다수가 그러하기 때문에 그러한 사람을 옹호하고 지지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자신도 그러하기 때문이죠. 그런 것으로 비난이나 벌을 받고 싶어 하지 않죠.


반드시 민감하고 작동하도록 유지해야 할 기능을 사용하지 않아 기능이 마비가 된 것이죠.


신체에서도 어떤 부위든 하나만 그렇게 되면 뭄 전체가 못쓰게 되죠. 죽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이 영원히 죽게 되는 이유입니다.


양심이라는 것이 제대로 작동을 하면 제동을 걸기 때문에 불편함을 느낄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생명과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준수하라고 하는 신호나 소리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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