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를 그리워
그리워할만한 진정한 가치를 지니고 있는 과거를 가진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또 미래에 그리워할만한 현재를 누리고 있는 사람도요. 평가는 개인의 경험적인 것이고 자의적인 것이죠. 개인의 경험과 주관과는 전혀 상관없는 절대적인 가치가 있는 것이라면 사모하고 동경하고 그리워할 만한 것이죠.
겪은 사람, 사물, 장소, 시간, 사건 등등에 대해 그리워하는 경우들이 있는데 그만한 가치가 있는지는 의문인 경우도 있죠. 그리워지는 것이 아니라 완전 그 반대인 경우도 있죠. 치가 떨릴 정도로 후회스러운 과거나 오직 벗어나고 싶기만 한 현재도 있죠. 악몽과 같은요.
어떤 완벽주의자에게는 모든 과거나 현재가 후회스럽거나 혐오스럽기 짝이 없는 것일 수 있습니다.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데 경험도 하지 않은 미래를 그리워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습니까?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뇌는 상상과 현실을 구분 못하므로 되기를 원하는 미래의 모습, 처하기를 원하는 미래의 이상적인 조건과 환경을 생생하게 그리면 그 일이 마치 과거에 있었던 일인 것처럼 그리움의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미래를 그리워하면서 현재를 사는 것이죠. 그리고 현재는 미래의 꿈에서의 과거가 될 수 있습니다. 1,500년쯤 후의 미래에 초원에서 낮잠을 자다 꿈을 꾸었는데 그것이 바로 지금의 삶인 것이죠. 과거의 그 끔찍한 세상에서의 삶에 대한 꿈인데 그 꿈 가운데 있는 것이죠. 어떤 끔찍함에도 악영향을 받지 않을 수 있습니다.
깨자마자 맞이하는 현실은 1,500년 후의 미래인데 현실이 결코 되돌아보고 싶지 않은 불우한 것이라서 그래서 결코 꿈에서라도 나타나지 않았으면 하고 바라는 것이지만 꿈이란 자신이 통제할 수 있는 것은 아니죠.
지금의 현실이 미래의 어떤 시점에서 꾸는 꿈일 수 있죠. 그리고 자각몽인 것입니다. 깨어나면 그 이상적인 아름다운 낙원이라는 현실로 돌아간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입니다.
현재가 힘들 때 아름다운 추억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것을 회상하며 그리움에 젖어 시름을 잊는 경우가 있겠지만 미래를 그리워하며 기쁨 가운데 환난 같은 현실을 인내할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