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보다

by 법칙전달자

실제보다


인간이 무엇 혹은 누구에 대해서 생각할 때 실제 그것이 혹은 그 사람이 어떠냐 하는 것보다 어떻게 생각하느냐가 더 큰 영향을 줄 때가 많습니다.

아니 그것의 실상을 알려고 할 필요도 없을지 모릅니다. 그러다 추한 면이나 불미스러운 이력이 드러나면 어떡합니까? 그에 대해 가지고 있는 좋은 인상으로 인한 행복감이 희생될 수 있는데요. 환멸감은 일종의 고통으로 작용할 수 있는데요.


상상력을 사용하여 그 사람이라는 단서에서 얻은 이미지에 자신의 꾸밈을 덧붙인 그런 대상을 음미하면서 행복해한다고 할 때 그 사람하고는 상관없는 별개의 것이 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 사람이 실제 어떤 사람이냐 하는데 관심이 없을 수도 있습니다. 만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유튜브를 통해 어떤 가수의 어떤 노래든지 원하는 때에 원하는 만큼 들을 수 있죠. 강의 같은 것도 그렇습니다.

그 실제의 당사자에게 전혀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습니다. 고맙다고 할 필요도 없고 신경 쓸 필요도 없죠. 그 노래를 통해 기쁨을 얻고 그 강의를 통해 유익을 얻을 수 있죠. 그 가수나 그 강사가 실제 어떤 사람이냐 하는 데 신경 쓸 필요가 없습니다. 직접 만나고 싶다는 생각이 조금도 들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인간에게는 타인이 어떤 사람이냐 하는 것보다 자신이 어떤 사람이냐 하는 것이 중요하죠. 타인의 어떤 좋은 특성과 본들에 대한 인식은 자신의 속사람을 형성하는 재료가 될 수 있죠. 그 사람 자신보다 그 사람에게서 취득한 좋은 이미지, 자신이 긍정적인 시각으로 보았기에 그렇게 인식하게 된 것이 그런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인간에게는 실제 어떠한가 보다 어떻게 여기느냐 하는 것이 훨씬 더 의미가 있습니다.


원칙에 따라 좋은 면만을 보고 천사와 같은 존재로 여긴다면 자신의 행복이 그만큼 더 커지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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