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과 실제와 현상
명왕성이 행성이냐 아니냐 하는 것과 그에 대한 의미부여는 단지 인간의 생각에 불과한 것입니다. 실제에 조금도 영향이 없는 것이죠. 경우에 따라 공허한 사변에 불과한 것일 수 있습니다.
중력의 존재와 중력 상수의 수치에 대한 인간의 인지도 실제 중력에 조금도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닙니다. 전혀 몰라도 사는데 별 지장이 없는 것이라는 것이죠. 그것과는 전혀 상관없이 중력은 인간의 생활에 필수적인 것으로 작용해 왔습니다.
또 인간의 어떤 생각들은 하지 않음만 못한 해로운 것들이 많습니다. 명왕성이 행성이냐 아니냐를 따지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고약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명왕성의 행성지위에 대한 인간의 생각이 변한 것은 그와 비슷한 많은 것들의 별견 즉 현상에 대한 인지 때문이죠. 원래부터 그것이 행성이냐 아니냐 하는 것은 단지 인간의 관념에 불과한 것이라 진리라는 것 하고는 상관이 없습니다. 그리고 현상에 대한 발견에 따라 가변적인 모든 규정들이 그러합니다. 정치, 경제를 비롯한 모든 면에서의 인간의 생각은 변해왔으며 그런 것을 바탕으로 뭘 한다는 것이 원래 어불성설입니다.
제9 행성이 정말 있느냐 따위에도 지대한 관심을 나타내면서 큰 비용을 들이기도 한다고 합니다. 그것을 찾아내는데요.
물론 그것이 있거나 없거나입니다. 인간의 발견과 그에 대한 의미부여와는 전혀 상관없죠.
인간의 심장은 인간의 그 존재에 대한 인식여부와 상관없이, 심장에 대해 알게 된 지식과 상관없이 그렇게 된 시점과도 전혀 상관없이 인간의 생존을 위해 필수적인 역할을 해왔습니다.
태양도요. 아마도 우주 전체가요. 9 행성도 그러한 것일 수 있습니다. 그것의 존재는 목성이나 달의 존재만큼이나 인간의 지금과 같은 삶에 필수적인 것일 수 있죠. 또 수메르 비문에도 그 점을 밝히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의 발견이나 그에 대한 인간의 관념적인, 사변적인 의미부여는 그러한 점에 조금도 영향을 미치지 못합니다.
말하고자 하는 것은
모든 것에는 정해진 때가 있으니, 하늘 아래 모든 일에는 때가 있는 법이다.
그러니 일하는 사람이 제아무리 노력한들 무엇을 얻을 수 있겠는가?(전도 3:1,9)
때를 분별하지 못하고 하는 활동은 헛되다는 것이죠.
물론 때와는 상관없이 그 자체가 헛된 일들이 많습니다. 그리고 자력으로 때를 제대로 분별하는 인간이란 없습니다.
인간의 모든 노력이 헛되다는 것이죠. 허가 되다 즉 무가 된다는 것이죠.
곧 죽는데 9 행성을 발견하는 것이 무슨 의미입니까?
지금은 모든 인간이 어떤 중요한 우주적 쟁점 때문에 멸망직전의 그러한 때입니다.
태양계의 행성구조와 관련된 지식들은 홍수 전부터 있었습니다. 9 행성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도요. 많은 유적들에 의하면 그 당시에도 놀라운 수준의 과학문명이 있었다고도 합니다.
그런데 그 모든 사람들은 곧 있을 홍수에 대해서는 조금도 실제적으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기울인 일체의 모든 노력과 추구들이 헛되게 되었죠.
인간에게 영향을 미쳐 행불행과 생사를 좌우하는 것은 인간의 생각이 아닙니다.
실제이죠. 그런데 그 실제를 보지 못하도록 세뇌되어 있습니다. 대신 헛된 것들에 관심을 갖게 만들죠. 본질상 해로운 것, 무가치한 것에요. 실제 가치가 있더라도 우선순위를 잘못 두면 그러한 것과 마찬가지가 됩니다.
현상은 실제의 구현입니다. 현상과 그에 대한 해석 즉 생각은 전혀 별개입니다.
지금 현상들은 곧 세상이 멸망한다는 명백한 증거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 점을 인식하지 못하거나 인정하지 않는 모든 생각들은 그 생각의 당사자들을 죽어 영원히 소멸되게 만들어 그의 모든 것이 헛되게 만들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