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악한 것에 대한 경험이
어렸을 때는 10대 후반의 삼촌이라도 대단한 어른처럼 느끼지만 60이 되었어도 자신을 스스로 철부지라고 느낄 수 있죠.
타인의 인격에 대한 열악함과 결함을 구체적으로 인식하게 되면 경멸적인 감정을 갖게 될 수 있습니다. 존경이나 존중심을 갖지 못하게 될 수 있죠.
인간의 인식이라는 것이 태도나 감정에 큰 영향을 주죠,
그런 것들은 얼마나 정당할 수 있습니까? 세상의 도덕적이고 영적으로 열악함에 대한 경험이 세상을 혐오하게 만든다면 그것은 긍정적이고 유익한 작용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개인에 대한 그러한 경험이 그에 대한 태도의 존중성의 결여를 가져온다면 그것은 바람직하지 못한 영향을 끼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세상을 혐오하는 것과 사람을 존중하는 것이 원칙이라면 전자와 후자는 각각 원칙과 조화를 이루는 것과 그에 반하는 것이 될 수 있죠.
또 자신을 철부지라고 평가하는 것은 겸허하고 겸손하게 되는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실제로는 철부지 없는 어린 삼촌에 대한 존경심을 갖는 것도 바람직할 수 있죠.
그런데 문제는 태도나 감정은 경험이 아니라 원칙에 지배를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원칙으로 대응하고 능동적으로 적용하는 것이 되어야 하는 것이죠.
원칙과 대립되는 것은 사견, 경험, 감정입니다.
그런데 정신과 마음에 원칙이라는 것이 확립되어 있지 않으면 그러한 것들에 영향을 받아 그것에 반응하고 그에 따라 틀 잡힐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그 원칙이라는 것을 가르치는 곳이 없죠. 원칙이란 인간이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고 일방적인 구속력을 행사하는 것이므로 임의성이 전혀 없는 것입니다.
원칙이 없는 사람은 발전하는 것이 아니라 흔들리고 방황하고 헤매게 되죠. 생각을 한다는 것이 단지 편견의 재배치에 불과한 그러한 것이 되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사랑도 큰 원칙 중 하나입니다. 이 원칙을 알고 어떤 상황에서든 모든 생각과 감정과 언행에 적용하여야죠.
사람들은 그렇지 않기 때문에 나이가 들수록 더 고약해질 수 있죠. 나쁜 것에 굳어지는 것입니다.
세상은 나이가 든 사람이 지배하지만 사실상 미친 사람들입니다. 광기로 가득 차 있죠. 그 기록이 역사이고요,
기본 원칙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원칙이 준엄하게 적용되는 세상에서 삭제될 수밖에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