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지만

by 법칙전달자

알지만


인간은 어떤 생각이나 감정에 단지 지배되어 있을 수 있죠. 그러나 그것이 어떤 생각이나 감정인지 초월적으로 인지할 수도 있습니다. 무의식조차도요.


자신의 지식, 기술, 습관, 태도, 성격, 가치관, 인성, 동기나 욕망 등등에 대해 마치 그런 존재가 제삼자나 되는 것처럼 객관적으로 살필 수 있습니다. 신의 눈을 가진 것처럼요.


자신의 신체의 상태도 기기들을 사용하여 촬영하여 자세히 볼 수 있죠. 심지어 뇌도요.


또 그렇게 하고 있는 자신도요.


이처럼 볼 수 있어야 통제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원칙을 가지고 그래야 하죠. 창조의 법을 알고 그것으로 그렇게 해야 하죠.


바로 위의 문장과 같이 생각한다는 것도 인식할 수 있습니다.


인간은 이처럼 마치 신이나 된 것처럼 초월적으로 인식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실제 초월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공중부양이나 유체이탈이 가능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죠.


아무리 해탈을 하려 해도 그 자체가 또 하나의 욕망입니다. 욕망이라는 것에서 벗어나는 것이 아닌 것이죠. 비정성적인 욕망을 가진 것에 불과한 것입니다. 인간은 이런 면에서 올바른 욕망을 가져야 할 뿐입니다.


실제로는 그 반대가 되어야 합니다. 정확하게 속박되어야 하는 것이죠. 뜬 구름 잡는 것처럼 허황된 망상이나 신비주의에 빠져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스스로 창조의 법의 종이 되어야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것으로 자신을 통치하는 것을 의미하죠. 자유와 행복과 생명을 얻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인간은 앎으로서 오히려 종이 되어야 합니다. 자유의 종인 것이죠.


압도적인 대다수는 무지로 인한 외부의 통제를 받는 노예상태이지만 참된 지식은 자발적인 노예가 되게 합니다. 그것이 인간의 행복과 자유의 본질입니다.


섬기는 것이죠. 창조주를 섬기고 동료인간을 섬기는 것이요.


이 글의 이상의 모든 생각은 제가 동시에 초월적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초월적인 인식과 그 내용이 서로 조화를 이루죠.


그 내용에서 초월하여 “섬기는 자가 되지 말아야지.” 하는 인식을 갖게 되는 것이 조금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사랑으로 자원해서 섬기는 것은 그지없는 행복을 가져다줍니다. 삶의 목적이죠.


이러한 생각에 대한 초월적인 인식은 그 생각에서 실제로 초월하게 해주는 것이 아니라 그 생각을 오히려 더 강화시켜 주죠. 진리가 갖는 특성입니다. 그 자신과 전혀 충돌이나 모순을 일으키지 않죠.


주제넘고 무모하게 해주는 것이 아니라, 어떤 종교적 의식 같은 비정상적인 행동을 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겸허와 겸손을 더 굳게 해주는 것입니다.


인간이 되게 해 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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