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중받는 자의성
결정성과 임의성을 구분 못하는 것은 심지어 삶의 자격과도 관련됩니다.
선악은 결정적인 것이죠. 인간이 임의로 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을 임의로 하겠다는 것은 선악과를 따 먹겠다고 하는 것이나 다를 바 없습니다.
운명은 결정되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전적으로 자신이 정하는 것입니다. 선악이 임의적이라고 선택하는 사람은 죽을 운명인 것이죠. 그러한 선택으로 인한 것입니다.
인간이 만물의 척도라는 말이 있는데 그 말이 옳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 말이 적용되는 부면이 있는 것이죠.
어떤 사람은 한 날을 다른 날보다 낫다고 판단하고, 또 어떤 사람은 한 날을 다른 모든 날과 같다고 판단합니다. 각자 자기 생각에 대해 온전한 확신을 갖도록 하십시오.(로마 14:5)
선악을 따질 성격이 아닌 주관적이고 임의적인 성격의 것이 있는 것이죠. 어떤 특정한 날에 임의적인 의미를 부여하여 이러저러해서 나는 어떤 날이 특별히 소중하다고 한다면 그것의 논리적인 타당성의 여부를 따질 성격의 것이 아닐 수 있습니다.
인간이 자의적으로 의미를 부여해도 존중받을 수 있는 부면들이 있는 것이죠. 또 그러한 의미부여가 삶에서 가치 있는 것이 될 수 있죠.
강가에서 주운 돌 하나에도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고 애착을 갖는다면 그것은 부도덕한 것도, 불법적인 것도, 비논리적인 것도 전혀 아닐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그것이 지닌 객관적인 가치와 일치한 지도 따질 필요가 없는 것이죠.
그가 그것을 만지작거리며 뭔가를 상상하면서 행복해하거나 깊은 상념에 젖더라도 조금의 비난의 여지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표를 수집하면서 즐거워한다 해도 “뭘 그런 것으로” 하면서 하찮게 여겨서는 안 된다는 것이죠.
가변적인 것이라 할지라도 그렇습니다. 그런 영역은 불면의 진리나 법이나 도덕적 표준이 적용되는 영역이 전혀 아니죠. 그야말로 인간의 임의적 영역입니다.
그런 성격의 영역에 있는 것이라면 마음껏 자의적이 될 수 있죠.
어떤 노래를 좋아하다가 다른 노래를 더 좋아하게 되는 것은 비난의 여지가 조금이라도 있는 그런 변덕이라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원래 자의성이란 변화성이나 다양성의 지배를 받는 것입니다. 그런 것은 영적, 도덕적, 논리적 지배를 받는 영역이 아닌 것이죠.
인간이 자의성을 존중받는 그런 무한한 세계가 축복으로 주어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임의성이 전혀 허용되지 않는 영역에서 부리는 일종의 광기는 용납될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