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수 디지털
수직선상의 0.1mm의 길이라도 그 안에 무한한 지점이 있습니다. 0이 아닌 모든 수직선상의 길이는 이론적으로 무한히 나눌 수 있죠. 허수가 아닌 모든 실수가 수직선상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개체들은 자연수로 셀 수 있죠. 1/2인 사람 즉 칼로 쪼개어 반 토막이 된 사람은 사람이 아니죠. 사람의 수를 분수로 표현하여야 할 경우는 생각하기 힘듭니다.
사과 반 조각은 가능하죠. 1/8조각도 가능합니다.
이론적으로는 더 이상 나눌 수 없는 것은 존재하지 않을 수 있죠. 실제로 그렇게 나누려면 기술적 한계에 봉착한다 해도 이론적으로는 무한소라는 것이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모순이 없어 보이지만 무한소라는 것은 실제적으로 0과 같아서 공허한 개념이 됩니다. 0이 아니라면 다시 무한히 나눌 수 있게 되죠. 아무튼 소수점 이하 0이 1억 개가 붙고 마지막 수가 1인 수치의 단위가 g인 어떤 질량이 있다고 하죠. 그렇다 하더라도 0은 아니죠. 다시 0이 1억 개가 붙은 수만큼 이론적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질량은 에너지화할 수 있죠. 그런 식으로 나누어진 한 부분이 질량이 0이 아니라면 그리고 무한히 나눌 수 있다면 0이 아닌 수에 무한을 곱하면 이론적으로는 무한이 되죠. 적어도 무한에 근접한 값이 되죠. 무한의 모순이라는 것이 생기는 것입니다.
이런 모순을 해결한 사람이 플랑크라고 하죠. 실제적으로 더 이상 나누어지지 않은 기본단위가 모든 면에서 존재한다는 것이죠. 플랑크 길이, 시간, 온도, 질량 등의 개념이 나온 것이죠. 플랑크 상수를 p라고 할 때 p/2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죠. 그러면 모순이 해결됩니다.
매우 작은 수이기는 하지만 무한소는 아니죠. 이론적으로 무한이 나눌 수 있지만 해당하는 실체가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죠.
아인슈타인은 이 플랑크 상수를 잽싸게 이용하여 광전효과를 발표하여 노벨상을 받았죠.
그러나 인간의 어떤 사변적 사고는 딜레마에 처하게 됩니다.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이론적으로 그럴듯하지만 인간의 생각이 얼마나 허황될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만물은 본질적으로 실제적으로 자연수만으로 나타낼 수 있게 되었죠. 풀랑크 상수의 정수배로만 되어 있으니까요.
물리계의 실제적 진실은 이와 같이 인간이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걸 이용해 엄청난 문명의 이기를 이루었죠.
물질계는 역사상 최고도로 발전한 상태이지만 영적으로 가장 처참한 상태라고 합니다.
철학이라는 것이 실용성이 전혀 없는 몽상적인 것이 되었을 뿐 아니라 삶에, 현실에 억지로 적용하려 한 결과 현실을 망치고 삶을 고통스럽게 한 결과를 초래한 것이죠.
과학적 발견의 결과도 그것으로 인해 이기(利器)가 된 것이 아니라 흉기로도 사용되고 있죠.
인간은 이성으로는 지성처럼 진실을 발견하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허황된 생각을 산출할 뿐입니다. 종교에서도 이성을 그렇게 사용하여 내세니 윤회니 천당이니 지옥이니 하는 무한대나 무한소 같은 비실제적인 망상만을 산출해 왔습니다.
이성계(理性界)의 플랑크 상수, 디지털 자연수는 ‘자연’의 어원이 원래는 ‘신성’이듯이 창조주만이 알려 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