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인이 더
'결과는 원인의 부분'이라는 법칙이 있죠. 또한 결과는 원인에서 발생하지만 원인은 결과를 산출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본질과 현상이라고 할 때 원인은 본질에 해당하죠. 그리고 원인은 보이지 않는 것, 감각되지 않은 것일 수 있습니다.
결과적인 것, 현상적인 것은 일시적이고 가변적이지만 본질적인 것, 원리적인 것은 영원하고 불변이죠.
상식적인 것 같지만 실제적으로 아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원인이 항상 우선이며 더 중요하다는 것을요. 그러나 그런 원인이 있다는 것조차 인식하지 못합니다. 영안이 없기 때문이죠.
결과로서의 현상, 증세에만 집중되어 있습니다. 눈이 없는 인간의 의식이라는 것이요. 물론 이 말 자체도 이해하지 못합니다.
일체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등에 관한 정책과 제도도 결과의 영역에 관한 것뿐입니다.
모든 의료, 과학적 연구라는 것도 그러합니다. 원인의 영역에 관한 것이 전혀 아닙니다. 인간 개개인의 모든 삶의 방식도 현상의 세계에만 집착되어 있습니다.
이상의 말들을 이해하면 그는 이 세상의 인간이 아닌 것입니다. 희망이 조금이라도 있는 인간이 되는 것이죠.
‘영’이란 ‘감각되는 현상을 낳는 감각되지 않은 원인’으로 정의됩니다.
그러나 이 영에 대해 인정을 하지 못하겠다는 완고한 회의주의적인 영에 인류는 노예처럼 지배되어 있죠. 물론 이 말도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러한 회의주의 적인 영에 기조를 두고 정치나 과학이 서 있는 것이죠. 개인들의 삶도 그러합니다.
근시안적인 시각으로 중력이라는 것을 많은 보이는 물리적인 현상의 보이지 않은 원인으로, 영적인 것으로 생각할 수 있지만 그 자체가 일종의 현상적 것입니다. 물리적인 것이죠. 중력도 원인이 있는 것이죠. 인간들이 알기가 불가능해서 철저히 외면해 버리고 의도적으로 무시해 버리는 그러한 원인이 있는 것이죠.
인간사회의 모든 문명과 문화가, 모든 개인의 문화와 삶이 소멸되는 가장 기본적인 원인입니다.
원인의 세계를 전혀 보지 못하는 까막눈인 것이요.
자신이 그렇다는 것을 인정이라도 하면 그나마 조금이라도 희망이 있습니다.
이상의 말들을 조금이라도 이해한다면 그나마 실낱같은 희망이라도 있습니다. 사람이 될 수 있는 희망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