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이라고 해서
피해자, 약자, 을이라고 해서 받는 동정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야 합니까? 그렇다는 것은 궁극적 평가나 판결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습니다.
노아의 홍수 이전의 강자는 네피림 즉 거인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사람을 압제하여 그들이 바치는 것으로 식욕을 채웠을 것입니다. 심지어 음식이 부족하면 인육을 먹기도 했다고 합니다.
세상의 약육강식은 당연한 것으로 인식되어 약자가 받는 고통이나 피해, 불공정, 불이익은 그다지 동정의 대상이 아닌 경우도 있습니다.
권선징악이라는 개념이 있죠. 이에 직접적으로 강약의 개념이 포함되어 있지 않습니다. 악 혹은 불의는 징벌의 대상이죠. 선 혹은 의는 호의적인 판결의 관건입니다.
노아는 여호와의 눈에 호의를 얻었다. 노아는 의로운 사람이었다. 그는 그 당시 사람들 가운데 흠 없는 사람이었다. 노아는 참하느님과 함께 걸었다. 그런데 땅은 참하느님께서 보시기에 타락해 있었으며, 폭력으로 가득 찼다. 하느님께서 땅을 보시니 땅이 타락해 있었다. 모든 육체가 땅에서 타락한 길을 걷고 있었다.(창세 6 : 8,9,11,12)
약자라고 해서, 갑질의 피해자라고 해서 동정을 받는다는 암시는 전혀 없습니다. 약하다든지 피해자라든지 하는 것은 도덕성이나 영성하고는 상관이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부당하게 큰 고통을 오랫동안 겪었다는 것도요.
인간은 그런 입장이라 해서 그것 때문에 호의를 기대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는 것은 그의 영성이나 도덕성에 대해 본질적으로 말해주는 것은 없습니다.
절대자로부터의 호의를 얻느냐의 관건은 의로우냐 불의하냐입니다.
‘의’라는 것은 “옳고 그른 것에 대한 하느님의 표준으로 보아 옳은 것”입니다.
그리고 사실 의로운 사람은 강한 사람입니다. 진정한 피해를 입지 않는 사람입니다.
진정한 피해와 고통은 약해서가 아니라 의롭지 않아서입니다.
본질적으로 동정의 대상이 되지 않습니다. 멸망의 불이익에서 벗어날 수 있는 조금의 참작사항도 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