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존재하는 것은 반드시 어떻게 존재해야 하죠. ‘어떻게’란 성상(性狀 : 성질과 상태)을 의미하죠.
바둑알은 어떻게 존재합니까? 그 크기, 색, 모양, 재질, 용도 등등이 있을 것입니다. 장기알은요? 장기알은 플라스틱이나 나무로 만들죠. 바둑알은 돌이나 플라스틱, 조개껍데기 등으로 만듭니다. 장기알로 바둑을 두기는 불편해도 장기알 중 졸 같은 것이 없어지면 바둑알로 대치하는 경우는 있습니다. 바둑알을 밀가루나 천으로 만드는 것은 적합하지 않죠.
인공물은 그 ‘어떻게’의 대부분을 인간이 정합니다. 상태가 안 좋아지거나 성질이 변하면 폐기되거나 교체되죠.
그 목적에 맞은 조건을 유지하고 있어야죠.
인간의 ‘어떻게’에 대해 어떤 인간들은 ‘우연히’, ‘맹목적으로’를 집어넣지만 어불성설이죠.
어떤 성질이나 상태를 갖추는 것이 싫어서 그러한 것입니까?
병들고 죽는 상태를 자연스러운 정상적인 상태라고 주장하고 싶어서입니까? 부도덕하다고 하는 것에 대하여 그 정당성을 훼손시키고 싶어서입니까?
인간으로서 일시적으로 존재하는 존재들이 있긴 합니다. 일시적 존재라는 것은 진정한 존재는 아니죠.
그 일시적인 동안이나마 ‘어떤 성질로’, ‘어떤 상태로’를 벗어날 수 없죠. ‘어떻게’를 벗어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어떻게’가 존재의 의의인 것이죠.
냄새가 나거나 구겨지거나 더럽혀지거나 찢어진 상태의 옷을 입으려 하지 않죠. 그런데 인간들의 상태는 그 정도 이하입니다. 바람직한 특성을 지닌 사람도 없습니다.
인식하지 못하고 모두가 그러하니 그런 존재로 사는 것입니다. 모두가 기형적인 존재들이죠.
자신을 규정된 ‘어떻게’에 부합시키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인간들의 악함에 대한 분노는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매우 슬프기도 한 것입니다.
어떻게 인간들이 그렇게까지 될 수 있단 말입니까?
당신의 법을 버리는 악한 자로 인해 내가 분노로 타오릅니다.(시 119:53)
사람들이 당신의 법을 지키지 않으므로 내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립니다.(시 119:136)
인간으로서의 고귀한 생명을 선물로 받고 지구 거주세를 한 푼도 내지 않으면서 인간들은 인간을 망치고 세상을 망치죠.
창조의식이나 창조의 법에 대한 개념이 전혀 없습니다. 사람들은 이기적으로 돈, 정치, 쾌락의 수렁에서 이전투구를 벌이고 있죠. 참혹하기 짝이 없습니다. 인간의 모습들이요. 스스로 그렇게 만든 것이죠.
서글프기 짝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