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구

by 법칙전달자

추구


사람들은 삶의 의미와 행복을 찾는데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추구합니다. 동양이나 서양이나 지혜가 그렇게 해줄 것이라고 생각하고 기원전 6~4세기 사이에 그리스, 중국, 인도에서 집중적으로 지를 추구하였습니다. 그때 집대성된 것들이 아직 연구되고 있죠. 사서삼경이나 도경, 불경, 그리스 철학자들의 저서들의 내용이 그때 구성되었습니다.


대체로 신을 배제하고 인간의 지혜에 전적으로 의지하여 그렇게 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초인간적인 능력을 행하는 신의 대리자를 통해 삶의 인도를 받고자 하는 경향도 있었습니다.


1세기 역시 두 가지 경향이 공존하고 있었죠.


유대인은 표징을 구하고 그리스인은 지혜를 찾지만 우리는 기둥에 달려 처형되신 그리스도를 전파합니다. 그분은 유대인에게는 걸림돌이고 이방 사람에게는 어리석음입니다. 그러나 유대인이든 그리스인이든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에게는 그리스도가 하느님의 능력이며 하느님의 지혜입니다. 하느님의 어리석은 것이 사람보다 더 지혜롭고 하느님의 약한 것이 사람보다 더 강하기 때문입니다.(고전 1:22~25)


다른 모든 것으로부터는 답이 없습니다. 인간이 살기 위해서는, 행복하기 위해서는 그리스도의 대속이 반드시 필요하였죠.


누군가를 영원한 행복을 누리게 해 준다는 것은 형언할 수 없는 큰 능력입니다. 예수를 통해 창조주가 그렇게 하는 것이므로 예수는 하느님의 능력이면서 지혜인 것입니다.


이러한 마련은 오늘날 동일하게 유용합니다. 물론 사람들은 종교적 철학적 추구대신에 경제적 정치적 추구를 통해 대안을 얻으려 하는데 종교적 철학적 추구는 현실적으로, 원리적으로 실패라고 결론 내렸기 때문이죠.


어리석은 것으로 여기거나 거부하려는 것은 그 당시보다 더 보편적이겠지만 사실은 더욱 현실적이 되었습니다. 현실로 받아들이는 사람도 이전 어느 때보다 많죠.


물론 대다수의 사람들이 그것이 현실이라는 것을 확인하는 것은 죽어가면서일 것입니다.


그리스도가 하늘 정부의 통치자로 즉위하여 지금도 통치를 행사하고 있다는 것을요. 이미 영적 낙원을 이루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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