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이라면
태속에서 혹은 영유아기나 소년시절에 사망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젊은 시절에 군인으로 전사하지도 않았다는 것을 의미하고 아직 사고로 비명횡사하거나 이른 나이에 병사하지도 않았음을 의미하죠.
당연한 얘기죠. 그러나 그렇게 죽은 사람도 많습니다. 사람으로 존재한 적이 있다고 하는 약 300억 정도의 사람들의 반이 훨씬 넘는 사람들이 그렇게 되었죠. 장수했다는 사람의 대부분도 이미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 모든 사람들은 정해진 운명에 따라 그렇게 죽은 것입니까? 알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말하지 말라는 말도 있죠. 인간으로서는 알 수 없습니다.
인간은 어떤 의미로 사는 것입니까? 지금 살아있다는 사람들은 진정으로 살아 있는 것입니까? 이미 죽은 사람들은 그 존재가 영원히 소멸되는 것입니까?
무한한 공간의 영원한 침묵이 나를 두렵게 한다는 말이 있고 그렇게 말한 사람도 오래전에 죽었죠.
나름의 답이라는 것을 종교적 혹은 철학적으로 고안해 낸 사람들이 있고 근래에는 뉴에이지류의 답이라는 것도 있습니다.
생각해 봐야 답을 알 수 없으니 그런 방향의 생각을 포기하고 사는 사람들도 많이 있죠. 삶의 의미를 모르고 돈이나 벌고 정치판이나 나라들끼리 싸움하는 거에나 관심을 가지면서 술 마시고 담배나 피우면서 저급한 오락물에 히죽히죽 소일하다가 죽게 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인생의 목적을 알 수 있는 것입니까? 유일한 방법은 “생명의 원천”에게 물어보는 것입니다.(시 36:9) 어떻게 물어볼 수 있습니까? 다행히도 그분은 우리에게 성서를 통해 말씀하십니다. 그분은 믿음의 사람들로 하여금 그분의 생각을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방법으로 기록하게 하셨습니다. 사실상, 인생의 목적은 단지 몇 마디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즉 우리는 하느님에 관해 배워 알고 그분의 뜻을 행하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입니다. 성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모든 것을 들려주었으니, 결론은 이러하다. 참하느님을 두려워하고 그분의 계명을 지켜라.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다.”—전도 12:13.
개인적으로는 생소하거나 어색하게 느껴지거나 공감이 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창조법칙과 창조주를 알아가는 것 자체가 행복입니다. 그에서 알게 되는 바에 따라 사는 것이 참된 의미와 보람을 누리는 유일한 선택입니다.
6,000년간 인간사에 일어났던 모든 일 그리고 개개인의 삶과 관련된 모든 현상에 대한 만족스러운 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는 개인은 웅대한 창조의 목적이 자신에게 실현되면서 영원한 행복을 누릴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