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만장

by 법칙전달자

기고만장


성서는 역사나 과학에 철저를 기하는 것을 염두에 두고 기록된 것은 아닙니다. 그 주제가 하느님의 왕국에 의한 낙원의 완성이므로 이와 관련된 메시지를 분명히 하는데 초점이 밎추어져 있죠. 그렇다하더라도 역사적 과학적 진실성은 유효합니다.


창세기 역시 모세가 여러 종류의 문서를 편집한 것이라고도 하고 또 사건 순으로 기록된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그러한 점들이 창세기의 기록이 영감받았음을 조금도 약화시키는 것은 아닙니다.


가인은 동생 아벨을 죽였을 때 자신도 죽임을 당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을 느꼈고 이점을 호소하여 하느님으로부터 그런 일이 없을 것이라는 보장을 받죠. 아벨이 죽임을 당했을 때는 100살 쯤 되었다고 합니다. 남자형제는 가인 뿐이었겠지만 누이들은 여렷이었을 수 있습니다. 유대전승에 따르면 아담은 딸 23명 아들 33명을 낳았다고 합니다. 그 아들들은 누이와 결혼 하여야 하였죠. 그런데 가인이 좋아하는 한 누이가 이벨을 사랑했다고 하는 것이죠. 아벨을 죽인 것도 이로 인한 질투심에 의해서라는 소설같은 추측도 있죠. 그 누이로부터의 보복을 두려워 했던 것일까요? 아니면 그의 부모로부터의 징벌이 두려웠던 것일까요? 단지 본능적인 것일까요? 살인으로 인한 그의 심리적인 충격은 컷을 것으로 짐작할수 있습니다. 그 때에 알려진 법으로는 선악과에 대한 것밖에 없었죠. 그의 부모들은 이로 인해 사형을 선고 받았고 900년쯤 후에 집행되었다고 할 수 있죠. 이 가족살인에 대해서는 추방되고 방랑자가 되는 정도의 제제를 받았죠.


그는 누이와 결혼하여 자녀를 낳았습니다. 그의 5대손 중에는 라맥이 있었고 그에게는 아다와 실라는 두 아내가 있었죠. 그 당시에 땅들은 상당히 개척되었고 인구도 상당수였다고 추정할 수 있습니다. 내피림이 정확하게 어느 시점에 있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아무튼 땅은 저주를 받았으므로 인간들은 힘든 노동으로, 주로 농업과 목축으로 삶을 꾸려 갔을 것이죠. 힘이 센 자들은 타인을 착취하려 했을 것입니다. 그 당시에 이미 철기를 이용한 도구들이 사용되었으며 악기도 있어 음악적 생활을 즐기기도 하였죠. 이미 문명과 문화가 상당수준이었을 수 있습니다. 라멕이 가인의 5대손이었으니 그 당시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촌수로 따지면 10촌 이내였겠죠.


어떤 문제로 라멕은 어떤 젊은이와 다툼이 있었고 그 젊은이는 라멕을 때려 상처를 입혔고 라멕은 이에 대응하여 그를 죽였죠. 살인은 살 떨리는 행위이죠. 라멕은 흥분되고 분개하고 격앙되었을 것입니다. 그 아내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였습니다. 성서에 의하면 글로 그렇게 썼다고 하죠. 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라멕의 아내들이여, 내 목소리를 들으시오. 내 말에 귀를 기울이시오. 내게 상처를 입힌 사람을 내가 죽였소. 나를 친 젊은이를 죽였소. 카인을 죽이는 사람이 일곱 배로 보복을 당한다면, 라멕을 죽이는 사람은 일흔일곱 배로 보복을 당할 것이오.”


물론 가인도 그 당시에 살아있었고 가인과 관련된 일들을 그의 후손들이 알고 있었죠. 아직도 살인죄에 대한 규정은 없었나 봅니다. 라멕은 가인을 해치는 자는 일곱배나 보복을 당할 것이라는 하느님의 선언을 알고 있었고 살인을 하고 나서 그 언명이 생각났을 것입니다. 그래서 스스로 위와 같이 선언을 하는데 어떤 학자는 그의 그러한 심리상태를 기고만장이라고 표현하였습니다. 아마 라멕은 그 당시 사회에서 유력한 사람일 수 있었습니다. 그의 의식에서 그런 구절이 자연발생적으로 흘러나왔고 이는 예언과 같은 권위를 띈 것일 수 있습니다.


창세기의 얼마 안되는 구절들에서도 그 당시의 상황이나 사람들의 의식구조 등등에 대해 많은 것을 알 수는 있습니다. 정확한 점들은 1,000년 통치때 거의 마지막 순서이긴 하지만 그 당시 사람들이 부활되면 그 때 회견을 통해 알 수 있겠죠. 지금으로부터 늦어도 300년쯤 후가 될 것입니다. 라맥의 이 사건은 한 5,500년쯤 전에 일어난 것으로 추정할 수 있습니다. 영감받은 성경에 이 사건이 기록된 것은 오늘날에도 뭔가 교훈을 얻을 수 있음을 의미하죠.


현재 100년도 채 못사는 인간이지만 정신은 그렇지 않죠. 수억년, 수십억년도 익숙한 것입니다. 수십억년 후에 지구는 어떻게 될 것이라고 하면서 꼭 가까운 미래에 있을 것처럼 생생하게 묘사하죠. 발굴되는 어떤 화석들은 수억년 전의 것이라고 하죠. 이런 주장들이 얼마나 신빙성 있는 것인지는 모르지만 인간 역사 6,000년은 그에 비하면 찰나인 것입니다. 인간도 그처럼 익숙해질 수 있다면 천년이 밤의 한 경점 같다고 한 창조주의 시각으로는 더 어떻겠습니까? (주의 목전에는 천년이 ·⁠·⁠· 어제 같으며 밤의 한 경점 같을 뿐임이니이다.”—시 90:4)


겨우 2,000년전에 기록 완료된 성서는 심지어 어떤 교수의 표현에 의하면 오늘 아침 조간 신문보다 더 현실적이라고 할만큼 생생한 것입니다. 우리시대의 사람들에게 가장 집중적이고 중요하게 적용되는 그 기록들을 결코 잘못 판단하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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