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한 것이 선한 것이다.

by 법칙전달자

강한 것이 선한 것이다.


두말할 것도 없이 강한 것은 무조건적으로 좋은 것입니다. 반면에 약함은 경우에 따라 악함이 됩니다. 지나치게 강하다는 말도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런 표현은 필요한 정도의 알맞은 힘 이상을 사용했다는 뜻으로 사용되는 것이며 강한 정도 자체를 부정적으로 보는 것은 아닙니다.


강한 사람은 필요에 따라 강약을 조정할 수 있지만 약한 사람은 그럴 수 없는 것입니다. 강함 그 자체는 나쁠 것이 전혀 없습니다.


자연계 즉 생물계에는 약육강식 현상을 볼 수 있죠. 그런데 강함에 대해 인간사회에 그런 식으로 잘못 적용시키는 우를 범하는 것은 특수한 경우가 아니라 일반적이고 주류적이고 정통적이라는 것이 문제입니다. 2차 대전 중에 독일군 장교들이 파티를 즐길 때 나체인 유대인 남녀에게 성관계를 갖게 했죠. 구경거리가 될만하게 하지 않으면 죽임을 당할 수 있죠. 폴란드와의 축구 경기에서 독일의 강함을 보여주기 위해 폴란드 팀에게 져달라고 했는데 폴란드가 이기자 폴란드 축구선수들을 총살시켰다고 하죠. 재미로 죽이거나 묻지 마 살인을 하고서도 강자의 약자에 대한 신성한 권리의 표현이라고 천연덕스럽게 말하는 그런 경우들만 강함을 남용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명나라 말 오삼계라는 장수가 있는데 그는 천명정도의 죄수들에게 폐쇄된 광장에서 칼을 주어 서로 싸우게 했습니다. 다 죽고 100 명 정도 남았을 때 그들로 부대를 만들어 상당한 전과를 거두었는데 비난도 받았지만 강한 부대를 만들어 승리에 기여했으므로 오히려 칭찬을 받게 됐죠.


강하고 거칠고 사납게 훈련시켜야 하지만 같은 부대원끼리는 돈독한 전우애를 갖도록 하는데 그게 전투력 강화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죠. 한국군가에도 "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어"라는 가사가 있죠. 약자가 죽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입니다. 자신이 강하다고 이길 수 있다고 공격을 하는 이유는 재물을 빼앗고 노예로 삼기 위해서이죠. 그러니 그런 식으로 치욕스럽게 사느니 싸우다가 죽겠다고 하는 것이죠.


어쨌든 나라들마다 군사력 강화에 역점을 두는 것입니다. 성서에도 무력의 신을 섬긴다는 말이 있죠.

지위가 더 높고 더 강한 자의 말이 생각할 필요도 없이 선이 되는 것입니다. 각 나라에서 권력은 지존자 한 사람에게 집중되어 있어 전시에는 우군의 최고 지휘자도 쉽게 죽일 수 있죠. 죽이면 죽일수록 권위가 높아진다고 하는 것이죠.


부하는 상관에게 목숨이라도 바칠 것 같은 절대 충성을 보여야 그에게 호의를 얻어 출세에 도움이 될 수 있어 그 명령의 선악을 따지지 않는 경우가 많죠. '옛서, 옛서' 하면서 명령을 충실히 이행하는데만 주력을 하죠.


강한 자의 말이 선이 되는 것이 현실이므로 강함을 추구할 수밖에 없습니다. 선하다는 것은 도덕적 개념인데 언제 죽을지 모르는데 도덕적임을 따질 겨를이 없는 것입니다. 1차 대전이 발발한 1914년부터 그런 식의 생각이 물밀듯이 들어오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군인들도 언제 죽을지 모르는데 도덕을 따질 여유가 없죠. 2차 대전에 전투에 참여한 군인의 85%는 파견지의 매춘부들들과 관계를 가졌다고 하죠. 그들의 연인들이나 아내들도 주로 군수공장 등에서 얼마 되지 않는 남자들과 그렇게 했다고 하죠. 죽지 않고 돌아와 만났을 때는 서로 찜찜할 수밖에 없지만 언제 죽을지 모르는 상황에서 추궁할 수는 없는 일이죠.


나라들끼리는 그렇게 큰 피해보지 않고 확실하게 상대나라를 정복할 수만 있다면 서슴없이 그렇게 하죠. 유럽열강들은 아프리카, 아시아 거의 전역에 쳐들어가 통치권을 행사했죠. 러시아도 우크라이나에 대해 그렇게 하려다가 뜻대로 되지 않아 낭패를 보고 있죠.


강한 자가 선한 자라고 할 때 물론 선하다는 것은 도덕적 선을 정확히 의미하는 것은 아니지만 현실적이고 결과적으로 그러하다는 것이죠. 일단 인정한다고 한다면 우주에서 누가 가장 강합니까? 물론 창조주이죠. 인간의 말도 그 강함으로 인해 따지지 않고 선으로 받아들인다면 창조주의 말에 대해서는 더욱 그래야 하지 않겠습니까?


물론 그분이 요구하는 선은 공격적이고 거칠고 싸나운 것은 아니지요. 하느님에 대해서는 순종과 충절을 지킨다는 면에서 강함을 요구하는 것이고 인간들 사이에서는 온유와 겸손, 친절과 사랑을 요구하죠. 따뜻함과 부드러움은 절대로 약함과는 상관없습니다. 차갑고 딱딱한 것이 강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강한 것이 오래 존재하죠. 중국에서 한 노인이 아들에게 유언을 하면서 입안을 보여주면서 "봐! 딱딱한 이는 하나도 없지, 그런데 부드러운 혀는 온전하잖아! 너도 이처럼 부드러운 사람이 되라는 것"이었습니다.


세상에서 강하다는 것은 물리적이고 자기중심적이고 공격적이고 사납고 완고한 것을 의미하죠. 그래야 상대가 얕보지 않는다는 것이죠.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넌 괴로울 수 있어"하며 은근히 위협하는 태도도 연상되는 그러한 것입니다. 그러한 세력끼리는 부딪힐 수밖에 없죠. 그러니 역사는 전쟁의 점철이며 한때 이긴 자도 이내 패배하게 되죠.


지금도 소위 강대국이라는 나라들이 있죠. 세계에 대한 주도권을 서로 가지려고 경쟁하죠. 그들의 강함이란 언제든지 부딪혀 깨질 수 있는 그런 것이며 성서의 표현대로 곧 산산조각으로 박살 날 것입니다. (계 2:27)


이 악한 강함에 굴복하는 약함은 죄이며 악함입니다. 그러나 창조주의 법에 겸손히 순종하는 사람들은 절대 악에 타협하지 않는 강함을 가지고 있죠. 그들은 매우 온유하고 진철하고 겸손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이 세상의 어느 누구보다도 강한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참으로 아름답게 강한 사람들이죠. 의에 절대적으로 강하게 고착하여 죽을지언정 불의에 타협하지 않죠.


스데반은 돌에 맞아 죽었지만 그는 결코 약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탁월하게 강한 사람이었죠.


전정한 강함이 진정한 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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