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속되는 현재인가?
인간은 시간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죠. 시간이 무엇인가에 대한 관심도 커서 과학자들도 다양한 의견들을 제시합니다. 영어로는 다른 의미를 갖는 time과 hour를 한국에서는 시간이라는 같은 단어를 사용하죠. 그리고 인간이 시계를 볼 때의 관심은 시간(time)이란 무엇인가 보다 어떤 일을 끝낼 때까지 남아 있는 시간(hour)이 얼마나 되는가를 아는 데 더 크죠.
시간이 무엇인지 정확히 아는 것보다는 자신의 남은 수명이 얼마나 되는지를 더 알고 싶어 할 것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 칸트, 뉴턴과 이인슈타인은 시간에 대해 각기 다른 해석을 내어 놓았으므로 우리가 쉽게 알기는 어렵고. 시간을 설명하는 말이 더 어려울 수 있습니다.
인간이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의식한다는 것이 동물과 인간을 구별시켜 준다고 합니다. 동물은 연속되는 현재에만 살지만, 인간은 현재에 사는 동안 미래의 필요들을 예상하기 위해 과거의 경험에 의존할 줄 안다는 것이죠. 그리고 여러 해를 지나면서 우리가 인생의 경험을 더 많이 쌓아감에 따라, 우리는 시간이 보다 빨리 지나가는 것같이 느낍니다. 그러므로, 나이를 먹어가고 우리 자신이 멸성임을 고통스럽게 의식함에 따라, 인생과 인생을 살아가는 방법에 대해 더욱 생각을 기울이게 되지 않습니까?—시 90:10.
시인 ‘헨리 오스틴 돕슨’이 시간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읊은 것은 진정 공감이 될 것입니다.
“그대는 말하는가? 시간은 가는 거라고.
아, 아니야! 시간은 아니야!
오호라, 가는 건 우리 인간이야.”
어떤 과학자들은 시간이라는 것이 생긴 이래 138억 년이 지나갔다고 합니다. 또 우주를 이루고 있는 물질은 그대로인데 점점 팽창하니 시간이 몇 조년 지나면 썰렁한 우주가 될 것이라는 주장도 있죠. 또 어떤 과학자는 시간은 지나갔다고 말할 수 있는 그런 성격의 것이 아니라고도 하죠.
그들은 일부 주어진 시간을 사용해 시간과 관련된 소설을 쓰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시간이 무엇인지 알려면 인간에게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입니다.
아무튼 우리 인간은 시간가운데 태어나서 시간이 뭔지 잘 알지도 못한 채 지나가 버리는 존재이죠. 시간을 계산할 수 있고, 시간에 대한 이론을 세울 수 있고, 시간을 정확하게 측정할 수 있으면 뭐 합니까? 인간중심원리에 따라 시간도 인간을 위해서 있다고 할 수 있고 인간이 시간을 규명하고 다룰 수 있어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인간이 누리는 시간은 상대적으로 찰나에 불과하죠. 인간을 위해서 있는 지구나 태양의 수명도 100억 년 정도라고 추산하는데 100년 살기도 힘든 것이 인간이죠. 우주에서 가장 큰 오류, 모순, 부조리라고 하는 것이죠.
요즘은 시간과 공간을 통합하여 시공이라는 개념으로 파악하죠. 인간이 파악하는 공간의 크기에 비해 인간의 누리는 공간의 크기와 관련해서도 대오류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법칙의 절대적인 안정성과 영원성에 비추어볼 때 그에는 만족스러운 대답이 주어지는 것이 마땅하죠. 그래서 창조주가 한 대답이 영생입니다. 이를 보증하는 것이 생명나무였고 앞으로도 곧 다시 있게 되죠. (계 22:2)
그런데 법칙 중에는 자유의 법칙과 멸망의 법칙이 있습니다. 인간이 그 자유를 사용하여 법칙을 인정하지 않으면 멸망된다는 것이죠. 자유는 불확정성과 밀접히 관련되어 있죠. 인간은 예정되어 있는 대로, 운명인 것처럼 죽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그렇게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그렇게 선택하는 것이죠.(신 30:19) 인간에게 생명이란 영생을 의미합니다. 그것이 법칙이나 밝혀진 원리와 조화를 이루죠. 지금도 99% 이상의 인간들은 사상적으로나 행위적으로 죽을 생각을 하고 죽을 행동을 합니다. 시간이 뭔지도 모른 채 지나가 없어지는 것이죠.
시간을 포함한 만물의 영장으로 태어나 지금처럼 시간에 철저히 노예처럼 지배되어 산다는 것은 말이 안 되죠. 시간의 주인이 되어 살아야 되지 않겠습니까? 지금은 노예이므로 시간이 뭔지도 모르고 살다가 죽지만요. 그렇게 될 수 있는 선택을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