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길 모습
인간의 현재의 모습은 선천적, 후천적 악영향들로 본연의 모습은 아닙니다. 노쇠한 모습은 더욱더 아니죠. 현재의 100년도 못 되는 삶의 경험으로는 인간의 모습이 정해져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죠.
외모지상주의라고 하지만 인간은 외모를 크게 잘못 관리하고 있죠. 껍데기에 치우쳐 그렇게 하고자 하죠. 내면의 상태가 껍데기에 반영되는 원리를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죠.
어렸을 때는 잘 모르지만 자아가 형성되는 사춘기 때부터 거울을 보며 외모에 민감해지지만 관련된 교육은 받지 않죠. 세속인간에게 관련 지식이라는 것이 없기 때문이죠.
외모와 관련해서도 유물론적 시각으로 바라보는 것이죠.
물론 현재 상태에서 파격적인 수술 같은 것이 아니면 외모를 현저하게 바꾸는 것은 어렵죠. 그렇게 한 것은 일종의 속임수로 간주하여 이혼의 정당한 사유가 되기도 하죠.
인간의 정신과 마음과 몸은 모두 이상적이지도 않고 정상적이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그런 인식이 없는 사람들은 그걸 현실로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런 현실에 반응하고 대응하면서 살고 있죠. 육적인 물질적인 방법으로 그렇게 하고 있죠.
현실에 순응하지 않으면 현실에서 도태된다는 말이 있죠. 현실이란 현재의 실제 사실을 의미하죠 진실이 현실인 것입니다. 그것을 현실이라고 인식하는 사람의 머릿수와는 상관없습니다. 인간에게 실제로 의미 있는 영향을 주는 것은 진실이며 그것은 영적인 것이죠. 가변적인 현상, 물리적인 물질적인 현상들은 참된 현실이 아닌 것입니다.
그러한 현실을 무시하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현실에서 도태되게 되죠.
'생길 모습'이라는 것이 없는 것입니다. 미래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죠. 현재의 비정상적인 상황은 곧 지나가게 됩니다. 현실에 대한 비정상적인 인식을 가진 사람들도 그렇게 되죠.
그러나 현실에 순응하여 즉 창조법칙, 도덕법칙, 영적 법칙에 순응하여 사는 사람들은 미래의 생길 모습에 초점을 맞추고 있죠. 내면을 가꾸면서 사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