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적인 원칙
일반적이라고 함은 예외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이죠. 예외 없는 규칙은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사람은 믿어서는 안 된다는 말이 있죠. 그런데 그 원칙 자체는 믿을 만합니까? 예외가 있을 수 있습니다. 오늘날 사람을 돈으로 보는 추세가 그 이전 어느때 보다 강하죠. 자신의 지인들도 그렇게 이용하죠. 번뜩이는 눈으로 두리번거리면서 보험이나 다단계 혹은 구매나 투자를 이끌어 낼 만한 사람이 없나 하고 살피는 사람이 한 둘이 아니죠.
친절하게 접근하거나 선물을 주는 사람들이 결국 자신을 그렇게 이용하려고 하는구나 하는 많은 경험을 한 사람들은 대인기피증에 걸리기도 하는 것입니다. 모처럼 연락이 와서 반갑게 안부를 묻는 사람도 그러하죠. 동아리나 종교단체를 그런 식으로 이용하는 경우도 많고 또 그렇게 이용하려고 단체에 가입하는 경우도 많죠.
그래서 세상에는 순 등쳐 먹으려고 하는 사람들로 득시글하다는 한탄이 나오기도 하는 것입니다.
겉포장을 믿을만하게 하여 결국 속이는 경우가 많고 어이없이 당했다고 하는 것이죠. 정치인들의 매끄러운 속이는 말도 이골이 나있죠. 긍정적인 면만 과장하여 홍보하는 사업가들, 자신을 통해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주장하는 종교지도자들 등등 세상에는 신뢰할 수 없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는 것입니다.
한편 어떤 사람을 오래 교재 하여 그 진면목을 알게 되면 "그 사람은 절대 그런 행동을 할 사람이 아니야 목숨걸 수 있어."라고 할 정도로 확신을 할 수 있는 경우도 있는 것입니다. 또한 "그 정도의 일은 헤맬 수 있는 능력이 있지." 하는 신뢰를 나타내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리고 "사랑은 믿는 것"이라고도 하므로 원칙에 따라 믿어줘야 하는 경우도 있죠. 이런 경우도 그의 말에 따라 행동을 해준다는 의미라기보다 거짓이라고 단정해버리지는 않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죠. 원천적으로 긴 장래를 내다본다는 의미일 수 있습니다. (고전 13:7)
창조주는 그의 아들 예수와 하늘에서 오랜 기간 같이 있었기 때문에 이 땅에서 그가 그의 임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할 것이라는 확신을 할 수 있었죠. 예수는 베드로가 그를 부인하지 않을 것이라는 다짐을 믿지 않았지만 베드로 자신에 대해서는 신뢰를 나타내었습니다. 베드로는 그의 말과는 다르게 세 번이나 예수를 부인하였지만 예수는 그에게 신뢰를 나타내었습니다.
사람은 자기 자신에게도 기만적이라 원칙적으로는 믿을 수 없습니다. 모두 이기적이고 그 길이 삐뚤어져 있는 것이죠. 자아제일주의, 자기중심적이고 돈과 쾌락을 탐하고 그걸 이루기 위해 어떻게든 주변을 이용하려 하죠.
그러나 이면에서 자신을 예외로 만들 수 있습니다. 일반적인 원칙이 아니라 절대적인 법칙이나 표준을 먼저 알고 그 가치를 확인한 후에 자신을 그와 일치하게 조정함으로써 가능합니다. 머리에는 올바른 생각이 들어 있어야 하고 가슴의 동기, 욕망, 감정 등을 그와 일치시킴으로써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영원한 생명이며 이는 절대적으로 믿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