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몸의 복서

라운드 1

by 진화정

알몸의 복서

(라운드 1)


한 여자가 있었다. 다소 키가 작고 동글동글한, 그런데 성격은 왠지 다부진 데가 있는 그런 여자였다. 그녀의 삶은 단순했고 그것은 그녀를 둘러싼 상황도 한몫했지만, 사실 그녀는 그런 단순한 삶이 싫지 않았다. 때로는 그 단순함 속에서 지루함을 느끼기도 했지만, 그럴 때마다 가끔은 친구들을 만나 일탈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곧 그녀는 다시 평온한 일상으로 돌아오곤 했다.


문제는 언제부턴가 그런 그녀에게 과도하게 집착하며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고 도촬 하는 사람들이 생겨났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다지 특별할 것 없는 그녀의 삶에 대해 관심이 지나치다 못해, 그녀의 모든 외모와 말투, 행동, 그 밖의 그녀와 연관된 많은 일들까지 분석하고 비판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마치 실험실의 개구리 같이 잔인하게 해부당했지만,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녀는 아직 그런 사실을 정확히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녀는 조금 예민한 감각을 가지고 있었다. 분명 어떤 것이 부자연스럽거나 과하거나 이상한 상황을 그냥 직감적으로 느낄 수는 있었다. 하지만, 그런 것들이 왜 발생되었고, 과정은 어떠하며, 그래서 그것을 어떻게 증명해 낼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왜냐면 사람들이 작정하고 벌이는 일들이었기에 그녀가 알리가 만무했고, 그녀는 자신이 겪는 일들이 정상의 범주에서 도저히 납득되지 않는 것들이었기에 '설마'하는 생각이 강했기 때문이었다. 오히려 쓸데없는 부정적인 생각들이라고 치부하며, 가끔씩 밀려오곤 하는 생각의 조각들을 치우기 바빴다. 그래도 지울 수 없는 의구심들로 인하여 늘 불편하고 괴로웠다.


사람들은 그녀의 삶을 오징어처럼 안주거리 삼아 씹고 또 씹었다. 그러나 그녀는 그런 날에도 졸린 눈을 비비며 버스를 타고 출근을 하고 가득 쌓인 업무들을 조금씩 해나가기 바빴다. 때로는 상사에게 호되게 혼도 나고, 때로는 동료에게 예상치 못한 위로도 받고, 때로는 억울한 상황에 찔끔 눈물도 흘리면서 하루를 버티고 집으로 돌아가곤 했다. 사람들이 그런 그녀에 대해서 뭐라고 하는지 전혀 알지도 못한 채, 여러 날들이 지나고 있었다.






사람들은 조금 더 대담해졌다. 그녀를 그냥 가십거리 정도로 생각하지 않고 더 많은 의미를 부여하기 시작했다. 그녀를 겨냥한 티브이 프로그램이 생겼고, 그녀를 심층분석하는 다큐멘터리나 그녀의 미래의 삶을 예측하는 영화들까지 제작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그녀는 이 모든 것을 알지 못했다. 그저 그들과 함께 섞여서 하하 호호 웃으며 티브이를 보고, 엉엉 울면서 영화도 보고, 왠지 너무 공감되는 이야기에 미묘한 감정을 느끼기도 했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서, 사람들은 조금 더 과격해졌다. 이제는 그녀의 삶을 그대로 두고 지켜보는데서 만족할 수가 없게 된 것이다. 사람들은 그녀의 삶에 직접 개입해서 그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자신들이 원하는 모습으로 살게 하고 싶어졌다. 우선 그들은 그녀의 평범한 외모가 싫증이 났다. 그래서 강제로 수술대 위에 눕혀 하나씩 뜯어고치고 싶었지만, 그게 그들의 마음대로 잘 되지 않았다. 왜냐면 그녀가 이런 사실들을 알도록 하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그녀가 이 모든 사실을 알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그들은 그게 두려웠다.


그래서 은근히 그녀를 코너에 몰아세워서 압박하거나, 팀을 구성해서 그녀에게 그들이 원하는 생각들을 주입시키려고 애썼다. 그들은 이제 공통적 목적의식을 가지고 조직적으로 움직이는 유기체가 되었다. 그런데 그녀는 생각보다 완강하게 버텼다. 그녀는 비록 보잘것없는 실수투성이의 과거였지만, 그녀의 삶이 소중했고 반드시 지켜내고 싶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수차례 달려들어서 그녀를 개조하려고 노력했고, 일부는 그들이 원하는 목적을 달성했고, 일부는 수포로 돌아가기도 했다.


그녀는 아직도 여전히 이런 상황을 인식하지 못했지만, 자신에게 닥친 삶의 난관을 어떻게든 극복해내고 싶었다. 그래서 그런 고통도 자기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긍정적인 관점으로 살려고 발버둥 쳤다. 너무 힘들고 고통스러워서 죽고 싶은 생각도 들었지만, 그녀는 그렇게 허무하게 죽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어릴 때부터 믿고 의지해왔던 하나님께 기도했다. 부디 죽음의 그늘에서 자신을 지켜달라고.






한편 하나의 유기체와 같았던 사람들은 언제부턴가 분열되기 시작했다. 생활수준도 높아지고 학력 수준도 높아지니, 저마다 지적욕구나 자기주장이 강해졌고 서로의 가치관이나 생각도 다양해졌다. 그러다 보니 그녀에 대한 그들의 생각과 욕구도 크게 달라졌고, 그들은 서로 분열되어 다른 조직이 되어버렸다. 한쪽은 그녀의 옛 모습을 그대로 박제하길 원했고, 다른 한쪽은 그녀의 지금 있는 그대로 놔두길 원했고, 또 다른 한쪽은 그녀가 이젠 너무 식상하기 때문에 제거해 버리길 원했다. 그 외에는 그러든지 말든지 신경도 쓰지 않았다.


결국 그들은 그들의 싸움에 그녀를 끌어들였다. 살벌한 정치판에 아무것도 모르는 그녀를 끼워 넣었다. 그녀는 마치 밝은 조명이 비추는 거대한 링 위에서 홀로 영문도 모르는 채, 두리번거리고 있는 알몸의 복서 같았다. 그들은 지금까지 그들이 쌓아온 욕구불만을 그녀에게 풀기 위해서, 링 주변으로 우르르 몰려들었다. 그리고 한 사람씩 링 위로 올라가서 다짜고짜 그녀의 얼굴로 주먹을 휘둘렀다. 그녀는 무방비 상태에서 마구 얻어맞기 시작했다. 그녀는 너무 당황해서 상대방의 얼굴조차 기억나지 않았다. 도대체 나에게 왜 이러는 걸까? 잠깐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다른 사람이 올라와 쓰러진 그녀의 머리채를 잡아 질질 끌었다. 그녀가 아파서 신음소리를 내며 일어서자, 다리를 걸어서 다시 넘어뜨렸다. 주변에서는 킥킥대며 환호하는 소리가 들렸다.


"일어나, 일어나, 일어나!"


사람들이 쓰러진 그녀를 향해 외치기 시작했다. 계속 당하고만 있는 그녀가 안쓰러워서라기보다는 모처럼의 구경거리가 싱겁게 끝날 것만 같아서 아쉽고 짜증 났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그들의 욕구를 충족해 줄 대단한 재미와 대가를 원했다. 그것이 돈이든 목숨이든 뭐든지. 그녀는 여전히 자신의 머리카락을 쥐어뜯고 넘어뜨리는 사람의 얼굴을 볼 수가 없었다. '여긴 어디지? 그리고 도대체 내가 누구길래, 이런 일을 겪고 있는 거지? 내가 무슨 잘못을 한 거지?' 그녀의 머릿속에는 이런 생각들만 계속 맴돌았다.


그녀의 머리카락을 두 손에 한 움큼씩 뽑아 든 사람이 의기양양하게 링을 내려왔다. 그러자, 다른 여러 사람이 이번에 자기가 하겠다며 링 위로 올라왔다.


"그깟 개미 새끼, 발로 밟아서 죽여버려야지."


"내가 먼저 죽여야지."


"일본노므쓰끼, 시발노무쓰끼."


그녀는 눈이 퉁퉁 부어서 제대로 앞을 볼 수는 없었지만, 아직 성인이 되지 않은 아이들의 목소리라는 것쯤은 귀로 분간할 수 있었다. 그것도 잠시, 거센 발길질이 시작됐다. 그녀는 이대로 맞다가는 정말 죽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몸을 최대한 웅크리고 두 팔로 얼굴을 감쌌다. 한참 동안, 여기저기 발길질은 계속됐다.


"그만. 순서를 기다리자고요. 다음에 링 위에 올라갈 사람은 여기로 오세요."


이제 그들은 체계적으로 그녀를 폭행하기 위해 링 주위를 교통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녀는 잠시 숨을 고르며 사람들의 목소리를 듣기 시작했다. 너무 맞아서 멍하고 욱신거렸지만, 이대로 여기서 죽을 수는 없었다. '살아서 나가야겠다. ' 그녀의 마음이 중얼거리고 있었다. 그러려면 눈을 떠야 하는데, 왠지 눈이 잘 떠지지 않았다. 아프고 무거운 이놈의 눈꺼풀을 어쩌면 좋을까. 눈을 뜨기 힘들다 보니 몸을 제대로 가누기가 더 힘들었다. 어느 방향에서 주먹이 날아오는지 알 길도 없었다.






"하나님, 눈이 안 보여요. 흑흑..... "


그녀는 다시 어둠 속에서 하나님을 찾으며 눈물을 흘렸다. 그러자, 웃으며 제비 뽑기로 순번을 정하던 사람들의 얼굴이 심하게 일그러졌다.


"니 방금 뭐라했노?"


어떤 연세가 꽤 있으신듯한 아저씨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굉장히 화가 많이 나있었다.


"니 같은 무당년들 때문에 우리가 욕을 먹는기야. 내 살다 살다 사이코 이단 옆차기 같은 소릴 다 듣는구마. "


그녀는 아직 눈도 제대로 뜨지 못했고, 너무 맞아서 온몸이 시큰거리고 후들거렸지만, 이대로 당하지만은 않겠다고 마음먹었다.


"아저씨가 누구라고, 저한테 욕하세요?"


"우어어~~~"


링 주변에서 놀라서 웅성거리는 사람들의 소리가 들렸다.


"니가 아직 덜 처맞았제? 주둥이는 살아있네?"


"아니, 저를 왜 자꾸 괴롭히는..... "


그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아저씨는 크고 억신 손으로 그녀의 머리를 한 방 내리쳤다.


"예끼, 찬물도 윗물이 있고 아랫물이 있는디, 어디서 그 주둥이를 함부로 놀리는기야? 니는 애비 애미도 없드나? 예의도 없는 고얀 년 같으니라구. 그라고 니 입에서 하나님 찾지 말으래이. 번개 맞아 뒤지기 전에. 알긋냐? "


아무리 생각해도 괘씸하다고 생각했는지, 아저씨는 링을 내려가기 전에 그녀를 발로 툭툭 쳤다.






그녀는 아픈 머리를 감싸 쥐고 생각했다. 지금까지 어르신들에게 예의 없이 말하고 행동해 왔던가. 저 아저씨는 도대체 그녀를 언제 봤다고 마치 그녀를 오랫동안 지켜봐 온 사람처럼 행동하는 것일까. 그리고 지금 이 자리에서 폭행장면을 지켜보고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열광하는 사람들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마치 안갯속을 헤매는 것 같았지만, 그녀는 하나의 실마리라도 놓치지 않으려고 생각하고 생각했다. 분명 그녀만 모르는 뭔가가 있었다. 하아......


이윽고 그녀의 뒤에서 누군가 뚜벅뚜벅 걸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그녀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뒤돌아있는 그녀를 돌려세웠다.


"약 먹을 시간이다. 어서 집으로 가자."


그건 바로 그녀의 아버지였다. 아버지는 그녀의 손을 잡아끌어 당겼다.


"아버지가 어떻게 여길...... "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약 먹으러 가야지."


그녀는 너무나 놀랐지만, 우선 아버지를 따라 링 위를 내려왔다. 사람들의 야유와 고함소리를 뒤로 하고, 그녀는 아버지를 따라 그 자리를 벗어날 수 있었다. 아버지께 물어보고 싶은 것들이 많았지만, 그녀는 아무것도 물어볼 수가 없었다. 아버지는 그녀의 손을 꼭 쥐고 말없이 계속 걸어 나갔다.



그날, 그녀가 잃어버린 것은 무엇일까. 그리고 그녀가 얻은 것은 무엇일까. 앞으로 어떤 일들이 펼쳐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