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운드 2
그의 전부
(라운드 2)
말없이 아버지의 뒤를 따라 걷던 그녀는 생각했다. 아버지 집으로 다시 들어간다는 것이 그녀에게 어떤 의미인지를, 그리고 그녀가 정말 있어야 할 곳이 지금 어디인지를. 그렇지만 그녀의 선택지는 별로 없었다. 아니, 모 아니면 도였다.
"아빠, 그냥 장말동에 가서 쉴게요."
"괜찮으니 단초동에 가자. 당분간 네 엄마 곁에서 좀 쉬어."
그녀는 더 이상 부모님께 짐이 되고 싶지 않았다. 낳아주시고 길러주신 것만도 감사했는데, 그동안 너무 많은 누를 끼쳤다. 부모님은 모든 것을 알면서도 그녀의 가장 가까운 곳에서 그녀를 먹이고 입히고 재우고 돌봤다. 너무 오랜 시간 그녀는 부모님의 그늘에 머물렀고, 이제는 정말 떠나야 할 시간이었다.
"아뇨, 장말동이 낫겠어요."
사실 그녀에겐 단초동이나 장말동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혼자 조용히 시간을 보내며 몸과 마음을 추스르고 싶었다. 아버지는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그럼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언제든 집에 와서 쉬어라."
"네, 감사합니다. 그럼 살펴가세요."
그녀는 아버지가 가시는 모습을 보려고 아픈 몸을 버티고 있었고, 아버지는 여기저기 성한 데가 없는 딸이 괜찮을까 싶어서 쉽게 돌아서지 못했다.
"저 괜찮아요. 먼저 가세요."
아버지는 마지못해 떨어지지 않는 무거운 발걸음을 떼었다. 잠시 아버지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그녀도 뒤돌아서 걷기 시작했다. 그러나 걷는다고 하기엔 너무 느렸다. 욱신거리는 통증 때문에 비틀거렸고 부은 눈 때문에 앞이 잘 보이지 않아 주위를 더듬거리며 나아갔다. 이 속도로 어느 세월에 집으로 들어갈 수 있을까. 아니 집을 제대로 찾을 수는 있을까.
그녀는 문득 주머니 속에 든 휴대폰이 생각났다. 이 상태로는 쉽지 않을 것 같았다. 그녀는 휴대폰을 만지작 거리다 다시 주머니에 넣었다. 도움을 청할 사람은 이미 정해져 있었지만, 그에게 그러고 싶지가 않았다. 그렇게 한참을 끙끙대면서 걸어가고 있을 때, 그녀를 스쳐 지나가야 할 차가 갑자기 멈춰 섰다. 그리고 어떤 남자가 차에서 내려 그녀에게 다가왔다. 그녀는 인기척을 느끼고 발소리가 나는 쪽으로 얼굴을 돌렸다.
"어떻게.....?"
"아, 너희 아버지가 전화 주셨어."
그는 만신창이가 되어 벽 쪽에 기대어 웅크린 그녀에게 다가와 손을 내밀었다. 그녀는 왠지 왈칵 쏟아지려는 눈물을 꾹 참고 그의 손을 바라보았다. 이런 몰골로 차마 그의 눈을 바라볼 수가 없었다. 도움을 구하지 않고 어떻게든 혼자서 버텨보려고 했었지만, 절묘한 순간 그녀를 향한 손길을 거부할 수가 없었다. 그가 조심스럽게 그녀를 부축해서 차에 태웠고 이내 조용한 거리엔 시동을 켜고 유유히 사라지는 자동차 소리만이 바스락거리는 낙엽처럼 나뒹굴다 어디론가 증발해 버렸다.
아버지는 결연한 딸의 말에 따라주기는 했지만, 몹시 걱정이 되었다. 그리고 언급하지 않았지만, 그녀가 어딜 가리라는 것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래서 아버지는 가던 길을 멈추고 그에게 전화를 걸었던 것이다. 더 이상 한 지붕 아래서 부대끼며 살지 않아도 아버지는 늘 자식이 걱정스럽다. 자식이 태어나던 순간부터 어쩌면 자신이 눈을 감는 그 순간까지 이럴지도 모른다. 이것이 부모의 숙명인 것인가. 주차장을 향해 천천히 걸어가는 아버지 주위로 희뿌연 먼지가 폴폴 날리고 있었다.
그녀는 의자에 어설프게 걸터앉아 자꾸만 아득해지는 정신을 놓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여기저기 욱신거려서 의자 깊숙이 앉을 수가 없었다. 차라리 몸에 닿는 부분을 최소화하는 것이 낫겠다 싶어서 그녀는 그의 집에 도착하는 내내 몸을 앞으로 웅크리고 오른쪽 문에 있는 팔걸이에 살짝 무게를 실었다. 그는 운전하는 내내 옆자리에 편히 앉지도 못하는 그녀가 신경 쓰였지만, 당장 딱히 해줄 수 있는 것이 없다는 생각에 아무 말조차 하지 않았다. 차라리 그에게는 이것이 그녀를 위한 배려였다. 그가 갑자기 속도를 줄이고 천천히 그러나 매끄럽게 모퉁이를 돌았다. 지하 주차장에 진입하자 요란한 사이렌 소리가 울려 퍼졌다. 마침 눈에 띄는 곳에 자리가 비어있었고 그는 어렵지 않게 주차할 수 있었다.
"오늘은 운이 좋군."
그가 시동을 끄고 안전벨트를 풀며 그녀에게 말했다. 아마도 그는 매일 주차전쟁을 치르는 이곳에서의 일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일 테지만, 그녀는 아직도 인정사정 볼 것 없이 두드려 맞았던 차가운 링 위를 서성이고 있었다.
"맞아, 오늘 운이 더럽게 좋았어."
그녀가 통증으로 미간을 찡그리며 그에게 말했다. 만약 그때 아버지가 나서지 않았다면, 그녀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단칼에 베어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 아프고 비참할까, 아니면 이놈 저놈에게 두드려 맞다가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 아프고 비참할까. 그녀는 괜히 피식 헛웃음이 새어 나왔다. 자꾸만 누군가 그녀의 머리를 쥐고 흔들어 대는 것 같았다. 운이 좋았으면 좋았지, 더럽게 좋을 이유는 무엇일까. 그는 또 그 나름대로 속으로 의문을 던지며 차 밖으로 나왔다.
두 사람은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따금 아파트 공용현관문이 열렸다 닫힐 때마다 시원한 바람이 공간을 파고들었다. 15층까지 올라가서 한참 머물러 있던 엘리베이터가 드디어 내려오기 시작했다. 갑자기 그녀를 부축하고 있던 그의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계속 들려왔다.
"집에 들어가자마자 뭘 좀 챙겨 먹어야겠는데요. 같이 라면 먹을래요?"
그의 말에 그녀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양손에 불룩한 쓰레기봉투와 분리수거할 것들이 담긴 작은 상자를 든 아주머니와 중학생으로 보이는 남자아이가 내렸다. 두 사람을 지나치는 짧은 순간, 그녀의 몰골을 보고 깜짝 놀란 표정이 역력했다. 그들의 반응에 아랑곳하지 않고 엘리베이터 안으로 천천히 들어갔는데, 아주머니가 다시 몸을 살짝 돌려서 그들을 힐끔 쳐다보았다. 서서히 닫히는 엘리베이터 문틈 사이로 그가 아주머니를 향해 싱긋 웃었다.
엘리베이터 안이 좀 덥게 느껴졌다. 그녀를 부축하고 서있는 그에게 시큼하고 비릿한 그녀의 땀냄새가 풍겨왔다. 아니 이건 단순한 땀냄새가 아니라 좁은 이 공간에 가득 퍼지는 그녀의 피냄새였다.
"문이 열립니다"
엘리베이터는 4층에서 멈췄고 자동안내멘트에 따라 문이 스르륵 열렸다. 엘리베이터를 벗어난 그는 현관도어록을 서둘러 풀고 문을 열었다. 그녀가 현관문을 들어서며 그에게 물었다.
"먼저 씻어도 되나요?"
"아, 그럼요. 저는 그동안 라면을 끓이고 있을게요."
"저기, 티셔츠랑 반바지 좀 빌려줘요. 갈아입을 옷이 없네요."
"물론이죠, 욕실 문 앞에 놓아둘게요."
그녀는 이미 욕실로 들어가서 변기 위에 털썩 주저앉으며 나지막이 말했다.
"고마워요...... "
그는 벌써 그녀가 갈아입을 옷을 가지러 욕실을 지나치고 없었다. 그녀는 여전히 변기에 앉아 땀과 피가 범벅된 옷을 하나하나 벗어 내렸다. 불과 두 시간 전까지 그녀는 사람들에 둘러싸여 집단린치를 당했고 겨우 그곳을 빠져나왔다. 그들의 얼굴을 모두 기억할 수는 없지만, 자꾸만 그들의 얼굴이 떠오를 것만 같았다. 천천히 일어나 세면대 양쪽을 잡고 서서 정면의 거울을 바라보았다. 거울 속의 그녀는 참 아프고 슬퍼 보였다. 퉁퉁 부은 눈가에 다시 쓰린 눈물이 흘렀다. 수도꼭지를 틀어서 일단 세수를 했다. 빨간 핏물이 하수구를 향해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그는 옷방 선반에 아무렇게나 놓인 옷들 중에서 그나마 그녀가 입어도 좋을만한 옷을 찾았다. 그래봤자 하나같이 우중충한 색깔의 옷들이었지만, 어쨌든 그는 흰색 티셔츠와 검은색 반바지를 챙겨서 욕실문 앞에서 놓았다. 욕실에서는 샤워기에서 시원하게 그러나 왠지 애달프게 쏟아지는 물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리고 이따금씩 그녀의 낮은 신음소리도 들려왔다. 그는 잠시 욕실문 앞에 멈춰 섰다가 서둘러 주방으로 향했다.
그는 냄비에 적당히 물을 붓고 가스레인지에 올려놓았다. 요즘 인덕션레인지도 많이 쓰던데, 그는 모든 게 처음 이사 올 때 옵션 그대로였다. 그에게 집은 밤에 누워서 눈을 붙이고 쉴 수 있는, 딱 그 정도의 의미였다. 그에게 청소할 시간도 많지 않았지만, 인테리어에 돈과 에너지를 쏟을 여유도 없었다. 그의 집엔 그래도 냉장고, 세탁기, 에어컨, 전기밥솥, 청소기, 그리고 누군가 쓰다가 버리려던 텔레비전이 있었다. 모두 오래되어 낡은 구식제품들이었지만, 생활하는데 꼭 있어야 할 것들은 있으니까 그는 불편하다는 생각은 별로 없었다. 그런데 막상 이렇게 집에 손님이 오니 식탁이 없는 것이 좀 송구스러울 뿐이었다. 보글보글 물이 끓어오르자, 그는 건더기와 수프를 넣고 반으로 빠갠 라면을 뜨거운 국물에 넣고 젓가락으로 휘저었다. 그리고 식탁 대신 쟁반 위에 바닥 한쪽에 있던 작은 잡지 한 권을 놓았다. 마침 그녀가 젖은 머리에 수건을 두른 채 욕실을 나왔다. 익숙한 라면냄새가 집 안 구석구석으로 퍼지고 있었다.
"맛있어야 할 텐데."
거실로 들어서는 그녀를 겸연쩍게 바라보며 그는 뒤늦게 냉장고에서 김치통을 꺼냈다. 그녀는 신밧드의 터번처럼 수건으로 머리카락을 감싸매고 작은 접시에 김치를 덜어놓는 그를 향해 걸어왔다.
"벌써 맛있는 냄새로 가득 찼는걸요."
그녀는 잠시 주방을 훑어보더니 설거지통에 들어있던 작은 그릇 두 개를 꺼내어 수세미로 쓱쓱 닦아서 깨끗하게 물로 헹궜다. 그리고 한 손에 씻은 그릇과 다른 한 손에 국자를 들고 그와 함께 거실 바닥에 앉았다. 휑한 거실 창가 구석에 에어컨이랑 복도 입구 쪽 벽면 바닥에 작은 텔레비전이 놓여있었다. 넓은 거실 한가운데 쟁반 위 작은 냄비에서 김이 모락모락 나고 있었다.
"불기 전에 어서 먹죠."
그녀는 가지고 온 그릇에 라면을 덜고 국자로 국물을 몇 차례 떠서 그에게 내밀었다. 그는 배가 고프다 못해서 이제는 슬슬 아파오던 참이었다. 이 순간이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괜찮아질 테지만. 배가 너무 고픈 그는 마음이 급해서 그릇을 받아 들고 뜨거운 국물부터 후루룩 들이켰다.
"헛! 뜨거...... "
그는 생각보다 라면국물이 너무 뜨거워서 깜짝 놀랐다. 이러다 입천장이 다 까지는 건 아닌가 생각하며 입으로 들숨 날숨을 계속하고 있는데, 그녀가 얼른 물이 든 컵을 그에게 내밀었다.
"냉장고에 따로 물이 없길래, 그냥 수돗물 받아왔어요."
"아, 네..... 괜찮아요."
당혹스러운 기색을 감출 수 없어 안절부절못하던 그를 보며 그녀가 피식 웃었다. 그녀의 입꼬리가 왼쪽 오른쪽 자꾸 씰룩씰룩 대더니 이윽고 크게 한 방 터졌다.
"푸하핫..... 흐흐흑, 크크큭...... 못 참겠어요."
"뭐, 뭐가요?"
그는 눈을 동그랗고 크게 뜨며 웃음을 그칠 줄 모르는 그녀에게 물었다. 그는 이 여자가 갑자기 실성했나 싶어 한참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아뇨, 귀엽다고욧. 흐흐흣"
그는 막 다 불어 터진 면발을 한가득 입에 물고 오물오물하다가 너무 어이가 없어서 그녀에게 뿜어버리고 말았다.
"앗, 이런..... 어쩌죠, 일부러 그런 건 아닌데......"
그녀의 퉁퉁 부은 발그레한 얼굴 위로 라면사리가 문어다리처럼 다닥다닥 붙었다. 잠시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이던 그녀가 다시 밝아진 얼굴로 말했다.
" 그럼, 쌤쌤하죠? 제가 먼저 미친 듯 웃은 건 맞으니까."
"미안해요, 진짜 실수로 저는..... "
그가 무슨 말로 미안함을 표현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사이, 그녀는 냉장고에 있던 맥주를 가져와서 꿀꺽 삼키며 말했다.
"여기, 뷰가 참 좋네요. 앞에 한강도 보이고."
거실창을 조심스럽게 열어젖힌 그녀가 어느새 노을이 지는 바깥 풍경에 취한 듯, 한쪽 팔은 난간에 걸치고 그를 돌아보며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는 무척 억울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딱 하나 남은 맥주였어요. 그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