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방

라운드 3

by 진화정

골방

(라운드 3)


당분간 그녀는 어디에도 나가지 않고 그의 집에 머물렀다. 아침에 일어나서 이불을 개고 대충 세수를 하고 물 한 잔을 마신 후, 경치가 좋은 창가에 가만히 서서 밖을 내다보며 생각에 잠겼다. 아침부터 지저귀는 새소리와 바람에 파르르 떨리는 잎사귀 소리를 들을 수 있어서, 그녀는 정말 기뻤다. 정말 이 순간이 참을 수 없이 기쁜데, 그녀의 두 뺨 위로 뜨거운 눈물이 주르르 흐르기 시작했다. 그날의 공포와 상처가 그대로 그녀의 몸과 마음과 영혼에 각인된 것일까.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사람들의 횡포가 어쩌면 영영 지워지지 않을 멍든 자국에 고스란히 배어있었다. 그녀는 와르르 무너진 그 자리에 주저앉아서 한 동안 움직일 수 없었다.


'누가 그들에게 나를 때릴 권리를 주었나? 누가 이 숲 속에서 새 한 마리 죽었을 뿐이라며, 먼지를 툭툭 털어낼 그런 거친 마음을 허락했나? '


'그들에게도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을까, 그렇다면 그건 무엇일까?'


아무도 그럴 권리를 부여한 적이 없었고 누구도 그런 마음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저 그들은 스스로 자기가 살아온 대로 그렇게 하기를 선택했을 뿐이었다. 마치 심장 깊숙이 얼음이 박혀버린 눈의 아이처럼, 어쩌면 그들은 과거에 겪었던 극심한 공포와 절망적인 상처들을 오랫동안 꽁꽁 동여매고 살아왔는지 모른다. 그런 공포와 상처가 그 집단의 정체성으로 자리 잡아 오늘에까지 이르렀고, 그것과 동떨어진 것으로 보이는 어떤 존재도 결코 참을 수 없었던 것이다. 완전히 그것과 동일하지 않으면 그들은 절대로 용납할 수 없었고, 그 다름을 어떻게 해서든 꺾고 짓밟아 뭉개버려야만 그들의 정체성이 훼손되지 않고 유지될 수 있다고 믿었는지도 모른다. 애초에 거기엔 예외나 다른 길은 존재하지 않았다.






오랜 시간 헤어 나올 수 없는 뼛속까지 깊은 절망 속에서 몸부림쳤던 사람은 안다. 그 지독한 수렁에서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무언가에 모든 것을 걸고 매달리지 않으면 숨조차 쉴 수 없다는 것을. 그리고 벼랑 끝에 몰린 듯 더 이상 발 디딜 곳도 없어 움직일 수 조차 없기에, 필사적으로 매달린 무엇이 결코 실현될 수 없는 아득한 꿈같은 것이 되어버린다고 해도 계속 그렇게 끝까지 붙들고 있을 수밖에 없는 구조가 되어버린다는 것을. 그러나 그런 이루질 수 없는 꿈이라 할지라도 처음의 순수한 동기와 열정을 마지막까지 잃지 않는다면, 얼마나 아름다울까. 가시가 돋친 붉은 장미라도, 그 꿈은 그 자체로 그에게 의미가 있으리라. 장미를 꼭 쥔 그의 손이 가시에 찔려 붉은 핏방울이 맺힌다 하여도 기꺼이 그 손을 놓지 않을 텐데.


그녀는 그들이 장미를 향해 내민 두 손처럼 애절한 손길이었는지 더듬어 본다. 그녀의 머리채를 낚아채서 질질 끌어당기던, 쓰러진 그녀를 향해 마구 발길질을 해대던...... 그 행위들이 과연 어떻게 기억될는지. 아무리 그들 나름의 사정이 있다고 해도 그들의 폭력을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용납할 수 있는 걸까. 설령 서로가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해도, 이렇게 아픈 사랑을 사랑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일까. 아니, 그녀는 단호히 거부해야만 한다. 너덜너덜해진 그녀 자신을 더욱 비참하게 만드는, 그리고 그녀 존재 자체를 부정해버리고 마는 그런 부질없는 생각들을. 그녀는 분명 있는 그대로 사랑받을 자격이 있다. 굳이 누군가의 기준이나 의도에 부합하지 않더라도, 어떤 깊이나 경지에 이르지 못한다 하더라도, 누구라도 그저 사랑받을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한다.






그녀는 이미 출근하고 없는 그의 집에서 아직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않았다. 그가 방 여기저기에 던져놓은 옷과 수건들을 세탁기에 넣고 세제를 찾아 두리번거렸다. 구식 통돌이 세탁기 위에 있는 선반에 가루세제가 든 상자가 보였다. 세제도 이제 얼마 후면 바닥이 보일 것 같았다. 그녀는 상자 안에 든 계량스푼으로 세제를 한 스푼 떠서 무심히 세탁기에 털어 넣고 작동버튼을 눌렀다. 아니 제발 무심하고 싶었다. 지금 딱히 갈 곳도 뭣도 없는 그녀였기 때문에, 그의 다소 누추함도 그저 감사할 따름이었다. 거실 여기저기 굴러다니던 팸플릿이나 과자봉지, 일회용 컵 등을 비닐봉지에 주워 담고 물을 적신 걸레로 바닥을 닦기 시작했다. 이렇게라도 잠시 그에게 의탁한 그녀의 누추함을 닦아내고 싶었을까?


아직도 몸 구석구석 아프지 않은 데가 없었지만, 그녀는 계속 움직였다. 어디서 사은품으로 증정받은 듯한 주방세제를 수세미에 묻혀서 거품을 냈다. 주방세제도 이제 곧 새로 사야 할 것 같았다. 싱크대에 쌓인 조촐한 그의 그릇들을 하나 둘 씻어서 싱크대 왼쪽 쟁반에 엎어놓고 행주로 여기저기 튄 물기를 닦았다. 그러다 보니 가스레인지를 닦게 되었고, 냉장고도 닦게 되었다. 열심히 움직이다 보니 그녀의 이마엔 송골송골 땀방울이 맺혔다.


그녀는 욕실 앞에 티셔츠와 반바지를 훌러덩 벗어놓고 변기에 앉았다. 어제는 정신이 없어서 몰랐었는데, 변기에 앉아 쓰윽 훑어보니 벽에는 쫙쫙 금이 갔고, 사방에 물 때와 곰팡이가 있었으며, 하수구 쪽엔 오래되고 끈적끈적한 머리카락이 뭉쳐있었다. 그녀는 오줌을 싸고 물을 내렸다. 누런 변기 속으로 그녀의 오래되고 낡은 찌꺼기 같은 무언가도 함께 빨려 들어갔다. 그래도 다행히 그는 한때 욕실청소에 진심이었던 것처럼 보였다. 작은 분홍색 바구니에 락스와 청소도구들이 제법 들어있었다. 그녀는 충분히 거품을 내서 욕조와 세면대, 변기, 바닥과 천장을 닦아내기 시작했다. 쉽게 닦이지는 않았지만, 전보다 훨씬 깨끗해졌다. 샤워기를 틀어서 까매진 거품들 위로 쏴아 뿌려대자 오랫동안 감춰져 있던 아이보리색 욕실타일이 깨끗하게 드러났다. 그리고 시원한 물줄기가 그녀의 몸에 흩뿌려지자, 또다시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숨바꼭질하듯이 꾹꾹 참아온 그녀의 슬픔이 흘러내리는 물줄기와 함께 그렇게 흘러내리고 있었다. 이놈의 숨바꼭질은 언제쯤 끝이 날까?






어느덧 창 밖엔 홍시 같은 노을이 걸리고 점점 어스름이 깔려

다. 그녀는 그가 집에 들어오기 전에 김치찌개라도 끓여놓고 기다리고 싶었지만, 찬장엔 라면 쪼가리도 보이지 않았고, 냉장고는 텅텅 비어있었다. 정말 어제 그녀가 마신 맥주가 마지막이었다. 그러고 보니 그녀는 아침부터 지금까지 물만 마셔대고 있었다. 그녀는 한참을 망설이다가 핸드폰에 그의 번호를 천천히 눌렀다.


'제발, 전화받아. 너무 배가 고프다고.'


그녀는 신호음이 울릴 때마다 아이처럼 애가 탔다. 하루만 굶었을 뿐인데, 왜 이리 배가 고프다 못해서 쥐어짜듯이 아프고 눈물이 날까. 지구 반대편 적도 부근, 아프리카에 사는 가난한 아이들은 도대체 어떤 하루를 살아내고 있는 것일까. 조그만 몸이 비쩍 말라서 마치 뱃가죽이 등에 붙을 때까지 물배만 채우고 있는 것일까. 그나마 그들이 마시는 그 물은 마셔도 되는 물일까.






"여보세요? 미안해요. 회의 중이었어요. 방금 끝났네요. 무슨 일 있어요?"


"아뇨, 그게...... 집에 올 때, 라면이랑 김치 좀 사 와야 할 듯요. 그리고....... 세탁세제랑 주방세제도요. "


"아~, 진작 사놨어야 했는데. 사실 오늘도 깜박할 뻔했네요. 얘기해 줘서 고마워요. 집에서 뭐라도 좀 먹었어요?"


"아뇨...... 제가 돈이 하나도 없어서. 사실 지금 너무 배가 고파요."


"아...... 미안해요. 아침에 얼마라도 놓아두고 오는 건데. 제가 급하게 나오느라 그만. 지금 바로 들어갈게요."


"네에, 그럼 기다릴게요."


그녀는 이미 어두워진 거실바닥에 누워서 천장을 바라보았다. 어릴 때 그녀는 그녀의 방 천장에 반짝이는 야광별 스티커를 붙여놓았었다. 귀신이 나올까 무서운 날에도 야광스티커를 바라보면 좀 괜찮아졌었다. 여기 그의 천장엔 아무것도 없다. 그러고 보니 사방이 온통 하얀 벽지뿐. 마치 병실에 홀로 남겨진 기분. 아니, 하얀 감옥에서 홀로 값을 치르고 있는 걸까. 그럴 리가. 감옥은 누군가를 죽였거나, 때렸거나, 뭔가를 훔쳤거나, 사기를 친 놈들이나 들어가는 곳이 아니던가. 난 아무것도 해당되는 게 없는데. 오히려 무참히 얻어맞기만 했는걸. 하루 종일 청소를 하느라 피곤했는지, 그녀는 딱딱한 바닥에서 어느새 잠이 들어버렸다.






얼마나 잠을 잤을까? 그녀의 코 끝에 익숙하고 맛있는 냄새가 솔솔 흘러들어왔다. 온몸이 욱신거리고 잠이 덜 깨서 몽롱했지만, 그녀는 본능적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눈을 비비고 앞을 보니, 그가 가스레인지와 냉장고 사이를 왔다 갔다 하고 있었었다. 그녀가 깼다는 것을 알아차린 그가 웃으며 반갑게 말했다.


" 여어, 일어났어요? 집에 오는 길에 마트 들러서 장 보느라 좀 늦었어요. 오늘은 계란이랑 파도 넣어서 먹을 수 있다고요. 흐흣."


그는 보글보글 끓고 있던 라면에 달걀을 톡 깨서 넣었다. 그리고 가위로 가볍게 씻은 파의 뿌리는 잘라서 버리고 나머지는 라면에 송송송 잘라서 넣었다.


"아, 그리고, 밥도 해놨어요. 나중에 말아먹자구요."


그녀는 한쪽에 모아둔 잡지랑 팸플릿 뭉치를 쟁반 바닥에 깔아놓고 무심코 냉장고를 열어보았다.


"우어~~~~"


그녀는 나름 가득 찬 냉장고를 바라보며 깜짝 놀랐다. 냉장고에는 계란 한 판, 맥주 한 팩, 생수 한 병, 대파 한 단, 김치 한 팩, 그리고 사과 한 봉지가 들어있었다. 그녀는 혹시나 이어서 찬장도 열어 보았다. 라면 두 팩과 참치 한 묶음이 보였다. 그리고 싱크대 옆엔 레몬이 그려진 새 주방세제도 있었다. 분명 베란다 선반에 그가 새로 사 온 세탁세제도 놓여있겠지.


"훌륭해요. 이제 있을 건 다 있네요. "


그를 바라보는 그녀의 얼굴이 오랜만에 활짝 피었다. 그는 그런 그녀의 태도에 왠지 자존감이 높아진 느낌이었다. 별일이 아닐 수도 있겠지만, 누군가를 이렇게 기쁘게 할 수 있는 능력이 아직 그에게도 남아있다는 것이 그를 뿌듯하게 만들었다.


"뭐, 이 정도 가지고. 후훗. 어서 먹자고요."






그는 뜨거운 냄비를 놓은 쟁반을 들고 거실로 향했다. 그녀는 수저와 젓가락을 들고 그런 그의 뒤를 기분 좋게 졸졸 쫓아갔다.


"냉장고가 채워지니까 왠지 부자가 된 기분이에요."


"좋네요, 부자라니."


그는 라면을 크게 한 젓가락 집어 들어 기분 좋게 후루룩 면치기를 하며 먹었다. 그녀도 이에 뒤질 새라 먹는 데 집중했다. 둘은 아무 말 없이 바쁘게 젓가락질을 했지만, 공기는 가볍고 밝고 따뜻했다. 아무 말 없이도 이렇게 전혀 어색하지 않게 지낼 수 있구나.


"저기, 여기서 좀 더 있어도 되나요?"


"물론이죠, 내 집이다 생각하고 편히 지내요."


"고마워요, 나중에 딴소리하면 안 돼요."


"한 입으로 두 말 안 합니다. 걱정 말아요."


"예쓰~!!"


"저기, 밥솥에서 밥 좀 퍼올래요?"


"예썰~!!"


그녀는 기분 좋게 일어나서 귀여운 밥솥을 열고 주걱으로 그릇에 밥을 펐다. 그리고 냄비 속에 밥을 넣고 수저로 잘 섞었다. 둘은 약속이나 한 듯이 머리를 맞대고 또다시 말없이 먹기 시작했다. 그러다 문득 그가 그녀에게 말했다.


"실은 내가 고마워요. 오랜만에 너무 깨끗해졌네요. 청소하느라 고생했겠어요."


"뭐, 이 정도 가지고. 훗~"


이번엔 그녀가 그에게 으쓱하면서 말했다. 그냥 뭐라도 해야 덜 미안할 것 같았고, 청소하는 동안 오히려 스스로에게 더 좋았다. 아프고 힘든 기억들을 나름대로 정리할 수 있어서 그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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