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25일의 선, 마침표를 찍다

by 천팔백이십오일

밤 2시 14분. 방 안의 공기는 서늘하게 내려앉았고, 모니터에서 뿜어져 나오는 푸른 빛만이 내 얼굴의 굴곡을 창백하게 비춘다. 내 오른손에는 5년 전 거금을 들여 샀던 태블릿 펜이 쥐어져 있다. 한때는 매끄러웠던 고무 그립이 이제는 끈적하게 녹아 손가락에 달라붙는다. 펜촉은 이미 한쪽이 비스듬히 갈려 나가, 캔버스 위에 선을 그을 때마다 '사각'거리는 비명 대신 '찌익' 하는 불쾌한 마찰음을 낸다.



나는 오늘, 이 낡은 도구와 작별하기로 했다.




1,825일. 내가 '작가'라는 두 글자를 내 이름 앞에 붙이기 위해 지불한 시간의 총량이다.



낮에는 사무실에서 엑셀의 격자무늬 속에 숫자와 텍스트를 채워 넣는 기계로 살았다. 부장님의 꾸지람과 거래처의 독촉을 견디게 했던 유일한 버팀목은 '퇴근 후의 나'였다.



지하철 안에서 졸음을 참으며 스마트폰으로 구도를 잡고, 집에 돌아오자마자 씻지도 못한 채 책상 앞에 앉았다. 그렇게 5년을 살았다. 친구들의 결혼 소식과 승진 축하 파티가 이어지는 동안, 내 세계는 오직 10인치 태블릿 화면 속에만 존재했다.





하지만 그 좁은 화면은 나를 구원하는 대신 서서히 옥죄어 왔다. 5년의 세월은 내게 화려한 데뷔가 아닌, 만성적인 손목 터널 증후군과 퀭한 안색, 그리고 '재능이 없다'는 잔인한 확신만을 남겼다. 수천 장의 미완성 콘티는 내 열정의 증거가 아니라, 결코 넘을 수 없는 벽의 높이를 기록한 패배의 수치처럼 느껴졌다.



경제학에서는 이를 '매몰 비용'이라 부른다. 이미 지불하여 회수할 수 없는 비용. 나는 그 비용이 아까워 억지로 펜을 붙들고 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것은 희망이 아니라, 미련이라는 이름의 고문이었다. 이제 나는 이 지독한 짝사랑에 '완결'이라는 도장을 찍는다.




사람들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것이 미덕이라 말하지만, 때로는 정중히 물러나는 것이 가장 큰 용기임을 깨닫는다.





내 5년은 실패가 아니다. 적어도 나는 내가 무엇을 간절히 원했는지, 그리고 그 갈망의 끝에 무엇이 있는지 직접 확인했다.



캔버스 위에 그어진 마지막 선을 끝으로 전원을 끈다. 화면이 검게 변하자, 비로소 그 속에 비친 진짜 내 얼굴이 보인다.




5년 전보다 조금은 늙었지만, 비로소 편안해진 표정의 사내다.




부엌으로 걸어가 냉장고에서 시원한 물 한 잔을 꺼내 마신다. 목줄기를 타고 내려가는 물의 감각이 유난히 선명하다. 내일 아침, 나는 평소보다 조금 더 일찍 일어나 출근 준비를 할 것이다. 작가 지망생이 아닌, 그냥 나 자신으로 살아갈 첫 번째 아침을 맞이하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