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이 스마트하지 못할 때
어느 자영업자의 웃픈 하루
한여름 열대야의 여운이 가시지 않은 이른 아침.
덥고 끈적한 공기가 잠을 설치게 하니, 스마트폰의 기상 시간 알림이 울리기도 전에 스스로 눈이 떠진다. 노후된 중고차가 주행하기 전에 예열이 필요하듯이, 선잠에 지친 몸을 일으켜 세우려면 에너지를 모아야 할 것 같다. 하여, 뇌에서 내린 지령이 손발 끝에 잘 전달될 때까지 눈을 감고 침대에 누워서 기다린다.
그렇게 예열 중, 누운 채로 손을 뻗어 충전기에 꽂힌 스마트폰을 낚아채 온다. 옆에 달린 화면 열기 버튼을 누르는데 반응이 없다. 응! 너마저 예열이 필요하니? 다시 한번 눌러보지만 화면은 잠에서 깨어나지 않는다. 그냥 깜깜하다. 이상하다? 설마! 순간, 나도 모르게 벌떡 일어나 앉는다. 내 몸이 예열이 되기까지 기다릴 수 없는 비상경보가 발령되었다.
사실, 전날 저녁에 전조 증상이 있었다. 갑자기 스마트폰 화면에 보이지 않던 세로의 긴 줄이 나타났다. 시간이 가도 없어지지 않았다. 액정에 이상이 있는 것 같아 불안하기는 했지만, 다음날 서비스센터에 가서 점검을 받아 보면 되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하룻밤을 견디지 못하고 스마트폰 액정이 요단강을 건너갈 줄이야!
한숨을 내쉬는 순간 폰은 뒤늦은 기상 시간 알림음을 토해낸다. 깜짝 놀라 어두운 화면의 여기저기를 손가락 끝으로 연신 눌러대지만 발악하는 알람은 멈추지 않는다. 한참을 그러다가 간신히 소발에 쥐 잡은 듯 소리를 멈춰 세웠다.
고장 난 듯 고장 나지 않은 스마트폰과의 첫 씨름은 판정승이었다.
내 눈앞도 스마트폰 화면처럼 깜깜하다. 당장 오늘 방문해야 할 고객의 집이 두 곳 있는데 폰 안에 저장된 주소를 꺼내볼 수 없으니 난감하다. 당연히 전화번호도 모르니 연락이 불가능하다. 오늘 일들을 접어야 하나? 그러나 내가 접는다고 될 일이 아니다. 고객은 기다리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비상사태에서는 빠른 의사결정이 필요하다. 서비스센터의 영업 개시 시간부터 확인하니 9시이다. 왜 이리 늦게 연담? 새삼 서비스센터의 영업시간에 불평을 늘어놓는다. 10시까지는 해결되어야 오늘 일에 차질이 없을 텐데. 그때까지 수리를 할 수 없다면? 안돼! 혼잣말로 뇌까린다.
부지런히 서비스센터로 달려갔다. 아직 서비스 시간이 안된 사무실에서는 번호표를 나누어 준다. 11번을 받았다. 서비스 창구가 많은 것을 보니 이 정도 순서이면 첫 번째 라운드로 콜을 받을 것으로 기대하며 대기석에서 기다린다. 드디어 9시가 되자 전광판에 불이 켜지고 번호표의 순번이 표시된다. 여유 있게 기다리는데 나를 부르지 않는다. 이상하다. 다시 대기번호를 주던 곳으로 가보니, 이런, 젠장! 벌써 30번대 고객이 서비스 창구로 불려 나가고 있다. 그런데 나는 왜? 알고 보니 대기표를 내고 접수를 다시 해야 서비스 순번이 부여되고 있었다. 황급히 대기표를 보여주고 32번의 접수자가 되었다. 11번이 32번으로 바뀌는 어처구니없는 순간, 갑자기 화가 난다. 이럴 거면 왜 대기표를 주었담? 처음부터 접수하게 할 것이지. 제대로 알려주지 않은 직원에게 짜증이 났지만, 어쩌랴. 되돌릴 수 없는 것을. 불행한 일은 한꺼번에 온다고 하더니. 이럴 때일수록 침착해야지.
결국 9시 30분경이 되어 불려 나간다. 문제가 된 액정을 교체 수리하고 나니 10시가 조금 넘었다. 그나마 오늘 영업 일정에 큰 지장은 없을 것 같으니 다행이었다.
그러나 신규 주문을 놓쳤다. 대기하는 동안 들고 있던 폰에 전화가 걸려 왔었다. 벨소리는 나는데 화면을 클릭할 수 없으니 난감하다. 이번에는 소발에 쥐 잡기 식 아무 데나의 손찌검도 소용이 없다. 전화를 받지 못하여 당황하는데 끊어졌다가 다시 울린다. 3번을 그렇게 하더니 결국 포기한 듯 조용해진다.
스마트폰과의 씨름 2라운드는 그렇게 패배로 끝났다.
환장하겠는데 웃기다. 완전 코미디다. 오늘 같은 날이 있을 줄이야. 머피의 법칙은 왜 이리 잘 들어맞는지. 나중에 안 일이지만 우리 동네의 '동네횟집' 사장님의 설비 의뢰 전화였었다. 전화를 안 받으니 내가 여름휴가를 간 것으로 생각하여 다른 업체에 의뢰했단다. 요즘 경기가 안 좋아 가뜩이나 줄어든 일을 하나 놓쳤다. 그리고 지체된 일정으로 저녁 같은 점심을 먹어야 했다.
스마트폰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통감한 하루였다. 더욱이 나처럼 외부에서 일하는 자영업자에게는 치명적이다. 주문도 못 받고, 이동하지도 못하고, 광고비 충전도 못 한다. 심지어 놀지도 못한다. 미래에 인간이 기계의 노예가 될지도 모른다는 이야기가 허튼소리가 아니었다. 이미 나는 스마트폰의 노예가 되어 있었다.
스마트폰이 멍청이폰이 되면, 나는 식물 자영업자가 되는구나. 스마트폰을 신주단지처럼 소중히 모셔야 하는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