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산 강선마을에 일을 하러 나왔다. 강선이란 말은 신선이 내려온다는 뜻이다. 신시가지 개발 전 이곳의 경치가 뛰어나 신선이 내려올 만큼 아름다운 마을이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그 아름다운 풍경은 사라지고 지금은 마을 전체가 아파트 단지로 변하였으니 신선이 노닐던 발자취를 찾을 길이 없다. 공원에는 몇 송이 주황색 원추리꽃이 그의 꽃말 '기다리는 마음'처럼 신선의 강림을 기다리고 있는 듯 피어나 있을 뿐이다.
신선이 노닐던 마을의 넓은 평수의 아파트에 나이 지긋한 노부부가 단 둘이 살고 있다. 주방후드 교체 작업이 한창일 때 며느리가 방문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던 중 며느리가 시어머니에게 묻는다.
어머니는 어떻게 참고 지내셨어요?
자고로 참는 쪽은 시어머니가 아니라 며느리였을 진데, 무슨 연유로 며느리가 아닌 시어머니가 참고 사셨단 말인가? 요즘에는 MZ세대 며느리를 둔 시어머니들이 오히려 며느리 눈치를 보는 상황이 늘고 있는 것이 사실이기는 하지만, 베이비붐세대 며느리를 둔 나이 많은 시어머니가 참고 사셨다는 말은 낯설기만 하다.
최근 아들을 결혼시킨 며느리는 아들이 어찌 살고 있는지 궁금해서 아들 집에 가보고 싶은데 쉽지 않음을 하소연한다. 그러면서 과거 시어머니가 자신들의 집에 자주 오고 싶어도 그러지 못하였다는 사실을 이제야 깨닫게 되었음을 고백한다.
며느리의 질문에 시어머니는 그저 미소만 지을 뿐 말이 없다. 잠시 후 며느리는 더 이상 묻지 않고 말한다. "어머니, 이제라도 저의 집에 자주 놀러 오세요." 며느리는 마치 대중에게 연꽃을 들어 마음을 전하던 (拈華示衆, 염화시중) 부처님의 뜻을 알아차린 제자 '마하가섭'처럼 시어머니의 마음을 이심전심으로 알게 되었다. 30여 년 동안 모르고 지냈던 시어머니의 마음을 알아차린 지금 며느리는 시어머니의 인생 제자가 되었다.
고부간의 대화에 피식 웃음이 나면서도 진한 감동이 밀려온다. 나 또한 부모님의 그런 심정을 충분히 헤아리지 못하고 살아왔다. 부모님을 찾아뵙는 것만이 다가 아니었음을 뒤늦게서야 깨닫고 있다.